[스크랩] 원질 왕은 슬잔을 들고 공주를 쳐다보았다. 공주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공주 나는 이제 어쩌면 좋소" 그 넉넉한 안식처였던 공주도 가고, 돌아보니 그의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이젠 힘도 없는 허수아비였다. 차갑고 허허로운 벌판에 무었 하나 바람막이 되어 줄 것 없는 외로운 허.. 습작신돈 2006.11.28
[스크랩] 공민14년(1365년)을사 (원지정25년) 을사년의 아침도 덕흥군문제와 함께 시작되었다. 덕흥군은 언제 터질 지 모르는 화약이였다. 원에 김유를 보내 덕흥군의 송환을 청하였다. 원에서는 덕흥군이 등창이 났으니 낫는대로 곤장쳐서 보내겠다는 거였다. 요사히는 왕은 그의 매일 밤 신돈의 거처를 찾았다. 이제 곧 태여날 원자를 생각만 해.. 습작신돈 2006.11.28
[스크랩] 개혁 신돈은 정치의 전면에 나서자 마자 전광석화와 같이 권문들,특히 무장들을 제거했다. 그 당시 무장들은 5년부터 고토회복을 위해 시작된 동북면(쌍성총관부 수복)과 서북면(압록강 너머 파사부와 8참공격)의 전쟁에 이어 8년부터의 홍적의 침입과 흥왕사 내란 그리고 12년 5월부터 고려를 긴장시키다 10.. 습작신돈 2006.11.28
[스크랩] 개혁의 날은 밝고 그러면 신돈에 대한 왕의 태도나 자세는 어떠했는가. 일단 사료상 고려사절요에 보면 -왕은 신돈을 공경하여 버선 한켤레를 보내더라도 머리에 올려 공경의 예를 표한 다음 보냈다. -신돈이 서서 연화문을 주자 왕은 공경하는 자세로 두손으로 받았다. -왕과 같이 호상에 기대여 있었다. -왕이 신돈의 .. 습작신돈 2006.11.28
[스크랩] 출사표 2)신돈의 출사 왕은 이러한 피폐한 심신으로 정무에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아들을 쳐다보는 대비(명덕태후)의 마음 또한 이루말할 수없이 아팠을 것이고 그에 대해 여러 사람들의 자문과 부처님의 원력에의 의탁도 해 보았을 것이다. 명덕태후는 그 당시 고려 최대 권문세가인 남.. 습작신돈 2006.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