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신돈

[스크랩] 원질

똥하 2006. 11. 28. 22:26

 왕은 슬잔을 들고 공주를 쳐다보았다. 공주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공주 나는 이제 어쩌면 좋소" 그 넉넉한 안식처였던 공주도 가고, 돌아보니 그의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이젠 힘도 없는 허수아비였다. 차갑고 허허로운 벌판에 무었 하나 바람막이 되어 줄 것 없는 외로운 허수아비였다. 공주가 더없이 그립고 야속했다. 정세운이 보고 싶고 조일신의 그 웃음소리가 그립고 김용의 속삭이는 것 같은 낮은 목소리가 귓전에 맴돌았다. 측근들이 하나 둘 사라질 때는 가슴은 아팠어도 등이 시리지는 않았다. 이제는 자신을 막아줄 측근은 고사하고 그의 마지막 힘이었고 자랑이었고 안식처였던 공주도 갔다. 눈물어린 취한 눈으로 공주를 다시 건너다 보았다. 공주가 웃으면서 손을 흔둘었다. 왕은 눈을 꿈쩍여 눈물을 떨어 뜨리고 다시 보았다. 공주는 쓸쓸히 웃고 만 있었다. 술병에 술이 떨어졌다. 왕은 술병을 문쪽으로 힘껏 던졌다. 문이 열리면서 최만생이 달려 들어 왔다. 사태를 보고 '전하 옥체를' '이놈 한번만 더 술 떨어져 내눈에 너가 보이면 죽이고야 말겠다" 

 

 왕은 대답없는 공주와 주거니 마시거니 하다 술에 취했다. 옛날 연경시절이 그리웠다. 호방한 정세운,조일신과 곰살스럽던 김용과 같이 술을 마시던 때가 그리웠다.누가 옆에 있어 같이 마시면 얼마나 좋으랴. 유숙이 생각났다. 더할 수없이 충성스런 신하, 그러나 항상 입만 열면 공맹타령에 잔소리, 살아 있는 가슴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목인길을 떠 올렸다. 그래 목인길을 "여봐라 목인길을 불러 오너라" 목인길은 연경수종공신으로 오늘 왕의 기분이 별로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퇴청도 않고 궁내에서 대기중인 몇 안되는 왕의 측근이였다. 목인길이 황황히 달려왔다. 무릎걸음의 인길을 꾸짖어 바로 앉히고 대작을 하는데 목인길은 죽을 지경이였다. 목인길은 무인 출신으로 배움이 짧아 왕의 넉두리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인길은 다른 대신들을 부르고 싶었다.그러나 왕이 허락할 지도 의문이고 다른 대신들이 이런 자리에 오려고 할 것 같지 않았다.

 

 고심 끝에 인길은 한사람을 생각해 냈다. 원질,그래 그사람을 부르자. 기인풍으로 도대체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는 사람이였다. 경서는 물론이거니와 천문 병법에 능통하고 귀신까지 부린다는 소문이 있는 자였다. 세상의 격식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아무리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도 그에게 맞지 않으면 바로 쓴소리를 쏟아 놓는 자로 그와 대거리하여 낭패 당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대신들은 그를 만나면  머리부터 외로 꼬았다. 그러나 그를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높은 식견에다 지난 덕흥군의 위관 제수시 절의를 지킨 몇 안되는 절의파중 한명으로 왕의 총애를 받고 있는 터였다. 그의 기행에다 높은 식견이 삼국지의 서서와 비슷하고 서서의 호인 원직과 그의 호인 원질이 비슷한 바람에 사람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원질이라 불렀다.

 

 "전하! 이 자리에 원질을 부르는 것이 어떠 하올지" 왕은 들었던 술잔을 내러 놓으며 인길을 멀건히 쳐다보더니 원직이라하고 되뇌니더니 "그래 원직을 불러라"하고 지시한다. 그러고는 공주를 한참이나 쳐다보면서 고개를 끄득이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한식경이 지나자 임박이 왔다. 자다가 온 모양으로 옷 매무새가 엉망이다. 급하게 쓴 양관 밑으로 머리가 어지러히 삐져 나와 있고 예의 상(裳)을 질질 끌고 있었다. 절을 하려는 임박을 보고 "됐네 그냥 앉어, 여기는 정사를 보는 곳이 아니지 않는가. 자! 술부터 한잔허게" 임박은 냉큼 상머리에 다가가 앉는다. 그 당당한 자신감에 인길은 기기 죽는다. 왕은 인길을 건너다 보며 "인길이는 그만 가보게" 한다. 혼전에서 물러 나오면서 인길은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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