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신돈

[스크랩] 개혁의 날은 밝고

똥하 2006. 11. 28. 22:23

그러면 신돈에 대한 왕의 태도나 자세는 어떠했는가. 일단 사료상 고려사절요에 보면

-왕은 신돈을 공경하여 버선 한켤레를 보내더라도 머리에 올려 공경의 예를 표한 다음 보냈다.

-신돈이 서서 연화문을 주자 왕은 공경하는 자세로 두손으로 받았다.

-왕과 같이 호상에 기대여 있었다.

-왕이 신돈의 집을 방문하여 담소를 나누는데 도데체 군신의 모습이 아니라 동료와 같은 모습이였다.

-왕의 장막앞을 지나는데도 말위에서 내리지 않고 말을 타고 지나는데 태연했다.

-거행할 때의 모습이 왕과 같았다.

-16년 월에 문화부에서 덕령공주가 태후를 위하여 연회를 베풀시 신돈의 좌석이 준비되지 않음에 대하여 태후에게 "첨의는 나라의 기둥인데 어찌 박대하십니까"라고 항의했다.

 14년12월에 신돈에게 공신호와 직함을 내릴때 그의 직함은 전 국병을 함빡 몰아서 그에게 내린, 고려의 국가경영을 그에게 맡겼다. 이러한 여러정황으로 보아서 신돈에 대한 왕의 태도는 이전의 왕사나 국사에 대한 예와는 다른 완전히 파격적인 극례로 대우하고 있다. 이것은 신돈을 사부로 대함에 왕을 구원해줄 구원자로 여기고 그에게서 왕 자신의 보호는 물론 나라의 미래비젼을 같이 기대하고 있었다.

 

 이러한 왕의 극례에 대하여 신돈의 마음가짐과 자세는 무엇이었을까? 외형적으로는 신돈의 왕의 극례에 대하여 당연한 대우로 받아 들이고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거만하고 왕을 무시하는 것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 15년 이존오의 상소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신하의 태도가 아닌 왕과 동일한 행동를 보이고 있거니와 왕 또한 이러한 신돈의 태도에 대하여 너무나 당연한, 어떤 면에서는 신돈의 심사를 거스릴 까  걱정하는 모습으로 바로 그 상소문을 불 태워 버릴 것을 지시하고 상소문을 쓴 이존오와 이에 동조한 정추에게 형벌을 내리려다 이색의 간언으로 좌천시키는 것으로 징계하고 있다.

 

 일단 외형적으로는 그는 왕과 동일한 모습으로 대등한 권력을 집행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그의 내면은 어떠 했을까? 과연 위에서 평하고 있듯이 군신의 관계를 망각하고 자신이 왕이라도 된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을까? 절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모든 집행은 법제상의 체계를 밟고 있었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더라도 독단적인 처리가 아닌 품의형식으로 왕의 제가를 받았으며 다만, 왕이 신돈의 뜻이라면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받아 들여 주었다는 것이다. 전면에서 신돈이 정치를 하고 왕은 배후에서 신돈의 결정을 추인해 주는 방식으로 업무진행이 이루어 지고 있었다고 본다.

 신돈의 무례하기 그지없는 행동은 어쩌면 다른 대신들이 그에 대하여 가질지도 모르는 경시를 사전에 방지하고 신돈에 대한 도전과 그에 따른 대응 사이에 있을 분란을 미연에 제거하기 위한 신돈의 나름데로의 고육책일 수도 있다. 왕은 이러한 신돈의 노력을 알고 협조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신돈과 왕과의 관계를 너무 호의적으로 보는 시각이고 왕은 이러한 신돈의 태도에 마음이 상해 점차 두사람사이에 균열이 갔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것 보다는 왕의 신돈에 대한 존경으로 인한 진심어린 태도고 당연한 신돈의 태도로 왕이 받아 들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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