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자료

[스크랩] 벼슬아치의 여섯가지 유형 - 1

똥하 2009. 4. 7. 14:03
 

여섯 유형의 벼슬아치 1




한(漢) 나라 유향(劉向: BC 77~BC 6 기원전인 중국 전한(前漢) 말기의 학자)이 지은 '설원(說苑)'의 1권은 임금에 대한 군도(君道)이고 2권은 신하들에 대한 신술(臣術)이다.

 

그는 바른 벼슬아치를 여섯 유형으로 나누어 육정(六正), 그른 벼슬아치를 육사(六邪)로 분류했다.

 

서기전 1세기 때의 분류지만 군주(君主)만 국민으로 바꾸면 지금 만든 듯 생생하다.

 

▲ 신하들의 조회를 받는 임금의 집무실인 근정전의 모습

 

육정 중 첫째는 어떤 조짐이 나타나기 전에 미리 알아채고 예방하는 벼슬아치로서 군주를 편안하게 하는 성신(聖臣)이다.

 

성신이 한둘만 있었어도 촛불시위 같은 것이 다 예방되었을 것인데, 유교사회의 성인(聖人)인 주공(周公) 같은 인물을 뜻하니 지금 정치가로서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둘째는 사심 없이(虛心) 군주에게 장기적인 대책을 진언하고 성사시켜 군주를 착한 길로 이끄는 어진 양신(良臣)이다.

 

셋째는 새벽부터 밤까지 몸을 돌보지 않고 일하면서 현인(賢人)을 추천하고 옛날의 덕스런 정사(德行)를 군주에게 권하는 충신(忠臣)이다.


넷째는 성공할 일과 실패할 일을 일찍 간파해 잘못될 일을 예방하고 구제함으로써 화를 복으로 전환시켜 군주가 아무런 걱정이 없도록 하는 지신(智臣)이다.

 

다섯째는 법을 받들면서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되 봉록(俸祿)과 하사품은 사양하고 의복과 음식을 절검(節儉)하는 정신(貞臣)이다.

 

봉급도 반납하고 절검하면서도 국가 예산은 아껴 나라를 부유하게 하는 벼슬아치란 뜻이다.

 

여섯째가 국가가 혼란에 빠졌을 때 아첨하지 않고 면전에서 군주의 잘못을 간언해 죽기를 사양하지 않아서 비록 몸은 죽어도 나라가 편안해질 수 있다면 후회하지 않는 직신(直臣)이다.

 

6정(六正),

1. 성신(聖臣)

미리 위기에 대처하고 상사[主君]의 안전을 을 지키는 부하.

2. 양신(良臣)

좋은 계획을 진언하고, 상사의 장점과 단점을 알게 하여 바로 잡도록 돕는 부하.

3. 충신(忠臣)

좋은 인재를 추천하고, 옛 성인의 행적을 예로 들어 상사의 마음을 격려하는 부하.

4. 지신(智臣)

일의 과정을 미리 알아서, 상사가 걱정하는 일이 없도록 미리 대처하는 부하.

5. 정신(貞臣)

원칙을 존중하며, 허례허식을 멀리하여 검소한 생활을 하는 부하.

6. 직신(直臣)

아첨을 하지 않고, 상사의 잘못을 직접 간하는 부하.



현 공직자 중에 이 여섯 유형에 하나라도 속하는 인물이 몇 명이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조선의 성종은 재위 6년(1475) 야간 경연(經筵)에서 '고려사(高麗史)'를 강독하다가 김심언(金審言:?~1018)이 고려 성종에게 육정(六正)·육사(六邪)의 내용을 담은 봉사(封事:밀봉한 상소문)를 올렸다는 사실을 알고 정부 각 관사의 청사 벽에 이를 써 붙이라고 지시했다.


김심언(金審言:?~1018 현종 9년 고려 중기의 문신)

본관은 영광. 상시(常侍) 최섬(崔暹)의 사위이며 제자이다. 성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우보궐 겸 기거주(右補闕兼起居注)가 되었다. 990년(성종 9)에 봉사(封事)를 올려 성종 때 본격화되는 유교적 정치이념 실현에 큰 지침을 제공했다. 봉사의 첫째는 육정육사(六正六邪)의 글과 자사육조(刺史六條)에 관한 것이다. 육정육사에서는 신하의 도리를 언급하면서, 성신(聖臣)·양신(良臣)·충신(忠臣)·지신(智臣)·정신(貞臣)·직신(直臣)의 육정을 행하면 번영하고, 구신(具臣)·유신(諛臣)·간신(姦臣)·참신(讒臣)·적신(賊臣) 및 망국의 신의 육사를 범하면 욕이 된다고 했다. 자사육조에서는 지방관이 해야 할 일 6가지를 기록했다. 둘째로 올린 봉사에서는 서경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서경에 사헌(司憲) 한 사람을 파견해서 관리의 행실을 살피자고 건의했다. 성종은 그의 건의를 받아들여 개경과 서경의 모든 관아와 지방 각 관청의 당벽(堂壁)에 붙여 귀감으로 삼고 그대로 시행하게 했다. 현종 즉위 뒤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가 되고, 예부상서·내사시랑평장사를 거쳐 서경유수(西京留守)가 되었다. 시호는 문안(文安)이다.


봉사(封事) 조선시대 돈녕부와 각 시(寺)·사(司)·서(署)·원(院)·감(監)·창(倉)·고(庫)·궁(宮)에 있던 종8품직. 1392년(태조 1) 처음 관제를 제정할 때는 없었으나, 1466년(세조 12) 관제개혁 때 부봉사와 함께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이때의 기록을 보면, 봉상시·선공감·훈련원의 녹사(錄事), 관상감의 시일(視日), 사역원의 부직장(副直長), 풍저창의 부승(副丞)을 각각 봉사로 이름을 바꾸고, 내섬시와 내자시에는 새로 봉사를 설치했다. 그이후 〈경국대전〉 반포 때까지 다른 관서의 경우 새롭게 만들어졌거나, 기존에 있던 관직을 봉사로 바꾼 듯하다. 대체로 세조의 관제개혁 때는 관직을 올리고 하위관직을 많이 만들었는데, 실무를 담당하던 녹사와 시일 등의 이름을 봉사로 바꾸고 종8품의 관직으로 올린 것이 그 실례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다시 써 붙여야 할 필요가 있다.[이덕일·역사평론가]

출처 : 석굴암
글쓴이 : 어둠속의 별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