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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불교강의-<13> 윤회

똥하 2009. 3. 30. 23:09

보르헤스의 불교강의 - <13>윤회

 

크리스마스 험프리는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가 죄인에게 그 죄를 묻는 것이 아니다. 그 죄 자체가 그를 벌하는 것이다. 따라서 용서란 있을 수 없고, 또 누구도 대신 벌 받을 수 없다”

업은 동사가 아니고 명사이기 때문에 스스로가 주어가 되지 따로 그 행위와 주체를 필요치 않는다. 업의 본질은 행위이기 때문에, 그 결과는 고통스럽거나 행복한 다른 행위로만 나타나는 것이다. 업은 우주의 법칙이지만 그 법을 제정한 입법자(立法者)나 그 법에 따라 심판할 재판관은 존재치 않는다. 업의 작용에는 인정사정이 없다. 담마파다 경전에 이런 말이 있다. “하늘에도, 바다 속에도, 깊은 골짜기에도 인간이 자신이 저지른 악행으로부터 벗어날 공간은 없다”

업에 대한 믿음은 불행에 대해 체념하고 참고 견디게 만든다. 파울 도이센은 인도 자이푸르에서 만난 어느 장님 거지에게 어쩌다 시력을 잃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장님은 “전생에 어떤 죄를 지었기 때문이지요”하고 대답했다. 그저 받는 고통이나 그저 얻는 행복은 없다는 것이다. 인도인들은 자선을 허식이거나 공연한 짓으로 본다. 고통받는 사람은 그 고통으로 인해 오히려 전생의 죄를 보상받기 때문이다. 그 고통을 덜어 주려고 도와주는 것은 빚을 갚을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그래서 간디는 보호소나 병원 짓는 일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인도에서 윤회에 대한 믿음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어느 누구도 그것을 증명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것은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수많은 시도가 끊이지 않은 기독교 사회와 분명히 대조된다. 한편 조용히 수도하는 것 외에 거의 모든 선업(善業)은 이웃을 도와주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만일 자선이 무의미하다면, 대체 어떤 것이 선업이 될 수 있을까.

 

업은 보편적인 법칙을 의미하지만, 넓은 의미로 업보(業報)를 뜻하기도 한다. 사람은 현세(現世)에서 행하는 악행과 선행에 따라 내세(來世)의 몸과 환경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불교신자는 윤회와 업이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어쩌면 같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서구인들은 윤회에 대해선 대개 수긍하지만 대부분 업이라는 개념에 대해선 생소해 하고 고개를 갸우뚱 한다. 플라톤이나 피타고라스가 보는 윤회의 논리는 불멸하는 순수 영혼을 먼저 상정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 영혼이 이 몸에서 저 몸으로 옮겨 다닌다는 것이다. 반면에 불교는 자아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전생(轉生)과 윤회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업의 개념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한 개인이 평생에 걸쳐 쌓아 올린다는 복잡한 업의 논리에 바탕을 둔 윤회관은 한 사람의 영혼이 육체를 바꾸어 간다는 단순한 윤회관보다 이해하기 어렵다.

일본의 불교학자 나까무라 하지메(中村元)도, 교리와 현실(민간신앙)사이의 괴리현상의 대표적인 예가 무아설과 윤회설 사이의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불교는 무아설에 기초를 두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영혼과 같은 실체적 존재는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윤회는 무엇인가 실체적인 영혼같은 존재가 업을 짊어진 채 한 생(生), 또 한생, 그 거주처를 바꿔가는 것이다. 즉 윤회에는 마땅히 그 주체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불교는 윤회설을 수용했는데, 그렇다면 무아설과 윤회의 주체와는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 것인가.

 

석존에게는 이 문제가 별로 심각하게 인식되고 있지 않다. 석존은 어디까지나 현생에서의 바른 생활방식과 그로부터 도출되는 안심(安心)을 가르친 사람이다. 한편, 석존은 무아(an-atman)설을 가르쳤지만 당시 힌두교 철학자들이 벌이고 있던 아트만(我) 논쟁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즉, 석존의 무아설은 형이상학적으로 아트만의 존재 여부를 검토하여, 그 존재를 부정했다는 의미의 무아설이 아니었다.

 

정말로 아트만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영원히 존속하고 또 스스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어야 할텐데 사실상 진정한 아트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의미에서의 무아설이 석존의 무아설이었다. 그것은 동시에 아집도 없애고 산다는 실천적인 의미에서의 무아설이었던 것이다.

 

한편으로 불교는 윤회를 실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에 윤회의 주체와 무아설과는 특별히 모순되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석존의 입멸 후 약 백여년이 지나 부파불교의 시대로 접어들면 무아설은 그대로 무영혼설로 통용되어 곧 형이상학적인 문제로 변해간다. 그와함께 불교도 사이에서 물리적 의미로 수용된 윤회관은 마땅히 업을 짊어지고 윤회하는 주체를 묻게 되고, 따라서 그것과 무아설과의 관계도 역시 의문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상 이것은 힌두교 계통의 철학자들과 벌인 토론에서 비판을 받은 문제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고대 인도의 불교지도자들은 무아설과 윤회의 주체라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심혈을 기울이게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인도 불교 교리발달사의 커다란 주제가 바로 이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에 대한 연구는 결국에 가서 유식학파의 아뢰야식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교리적인 입장에서 말한다면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불교에서는 다른 종교가 표방하는 것과 같은 그러한 상주하는 실체로서의 영혼을 인정하지 않지만, 인격적 주체로서의 업을 유지하고 있는 영혼은 3세를 통해서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즉, 그것은 불생불멸하는 것이 아니라 윤회의 주체로서 업이나 경험에 따라서 계속 변화해 가면서 이어지는 유위법(有爲法)인 것이다. 유식(唯識), 법상(法相) 학설에서 말하는 아뢰야식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이것에 지나지 않는다’

<불타의 세계 PP·434~435>

편역:김홍근 <외대강사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