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의 불교강의 - <14>윤회
윤회의 문제는 동시에 개인의 정체성(正體性, identity)의 문제와 연결된다. <순수의 길(Visuddhimagga)>이란 책에 이런 말이 있다. “난 어디에서도 누구를 위한 무엇이 되어 본 일이 없고, 어느 누구도 나를 위한 무엇이 된적이 없다.” 석존과 동시대인이었던 헤라클리토스도 비슷한 의미의 이런 말을 했다. “어느 누구도 동일한 강물에 몸을 두번 적실 수 없다.” 또 플루타르크는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 안에서 죽고,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 속에서 죽는다”고 말했다. <순수의 길>에 이런 말도 나온다. “미래에 살 인간은 과거에서 살지 않았고 현재 살지도 않는다. 현재 사는 사람은 과거에 살지 않았고, 미래에 살지도 않을 것이다.”헤라클리토스가 말한 인간의 무상성(無常性)을 피타고라스 학파의 에피카르무스는 그의 희곡에서 이렇게 풍자했다. 친구에게 돈을 빌려쓴 사람이 어느날 친구를 만나자, 인간은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자기는 이제 그때 돈을 빌린 그 사람이 아니라고 우겼다. 친구는 그 변명을 받아들이고 대신 저녁식사에 그를 초대했다. 그가 만찬장에 도착했을 때, 하인들이 그를 도로 내쫓았다. 친구는 이미 그를 초대했던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기원전 2세기경 서북인도를 지배한 그리스왕 메난드로스(인도명 미린다)와 불교 경전에 정통한 학승 나가세나(那先) 사이에 오고 간 대론서 <미린다 팡하(미린다 王問經)>에도 이와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개인은 영속하지 않지만 윤회하는 주체는 일정하다는 것이다. 왕이 묻는다. “윤회가 사실이라면, 다시 태어난 자와 죽어 없어진 자는 동일합니까. 혹은 다릅니까?” 나가세나 존자가 대답한다. “동일하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습니다” “비유를 들어 주십시요” “대왕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릴 때의 그대와 지금의 그대는 같습니까?” “아닙니다. 어릴 적 나와 지금의 나는 다릅니다.” “만일 그대가 그 어린애가 아니라면 그대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또 선생도 없었다는 것이 됩니다. 죄를 지은 자와 그 죄로 손발이 잘린 자가 다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비유를 들어 주십시요.” “여기 어떤 사람이 등불을 켠다고 합시다. 그 등불은 밤새도록 탈 것입니다. 대왕이여, 초저녁에 타는 불꽃과 밤중에 타는 불꽃이 같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초저녁의 불꽃과 밤중의 불꽃이 각각 다릅니까?” “그렇지도 않습니다. 불꽃은 똑같은 등불에서 밤새도록 탈 것입니다.” “대왕이여, 인간이나 사물의 연속은 꼭 이와 같이 지속됩니다. 생겨나는 것(生)과 없어지는 것(滅)은 별개의 것으로 보이지만 지속되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존재는 동일하지도 않고 상이(相異)하지도 않으면서, 최종 단계의 의식으로 포섭되는 것입니다.” 동양과 서양의 두 현자(賢者)는 여러 날에 걸쳐 대화를 이어나갔으며, 마침내 그리스의 왕은 불교에 귀의하였다.
불교에서는 인간이 사후에 태어날 수 있는 조건이 여섯가지라고 말한다. 이것은 육도윤회(六道輪廻)라고 하는데, 다음과 같다.
1)천계도(天界道). 인도사회에서 상식화되어 있던 신화의 영향을 받아 대개 33천(天)이 있다고 한다. 살아 있을 때의 공덕에 의해 사후에 좋은 세계에 태어난다는 민간신앙적 요소의 영향을 받은 생천사상(生天思想)은 천계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불교문학에서는 천계에 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한다.
2)인간도(人間道). 인간으로 태어나기가 가장 어렵다고 한다. 그 어려움을 비유하기를, 심해(深海)에 사는 거북이가 백년에 한번 수면위로 고개를 내미는데 망망대해에 떠있는 나무조각과 우연히 머리를 부딪칠 확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 비유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이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우리에게 일깨운다.
3)아수라도(阿修羅道). 아수라는 데바(神)의 적으로서 그리스 신화의 타이탄이나 스칸디나비아 신화의 거인(巨人)과 비슷하다. 전설에 의하면 아수라들은 브라만신의 서해부(사타구니)에서 태어나 땅밑에 그들의 왕국을 세우고 살고 있다고 한다. 아수라와 비슷한 존재로는 나가(naga, 龍神 혹은 蛇神)가 있는데, 나가는 인간의 얼굴을 가진 뱀으로서 지하궁전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4)축생도(畜生道). 동물에는 네가지 종(種)이 있다고 한다. 첫째 다리가 없는 것, 둘째 다리가 두개인 것, 셋째 다리가 네개인 것, 넷째 다리가 많은 것으로 나눈다. 붓다의 윤회전생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자타카(本生譚)에는 여러 동물의 몸으로 태어났던 붓다의 전생(前生)이야기가 등장한다.
5)아귀도(餓鬼道). 아귀의 원말은 프레타(Preta)인데, 이는 ‘가버린 사람(죽은 사람)’이란 뜻으로 배고픔과 목마름으로 고통받는 버림받은 영혼을 가리킨다. 아귀의 배는 산만큼이나 부풀어 있지만. 입은 바늘귀처럼 작아서 항상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다. 더럽고 피골이 상접해 있으며 검거나, 노랗거나 혹은 푸른 색을 띠고 있다. 그들은 인광(燐光)을 먹기도 하고 자기 살을 뜯어 먹기도 한다. 대개 공동묘지에서 배회하며 살고 있다.
6)지옥도(地獄道). 지옥은 대개 지하에 있지만, 바위 속이나 큰 접시안에 만들어 지기도 한다. 지옥의 중앙에는 염라대왕이 있는데, 그는 죄인에게 신(神)이 보낸 첫번째 전령(어린이)과 두번째 전령(노인), 세번째 전령(환자)과 네번째 전령(죄수) 그리고 다섯번째 전령(시체)를 보았느냐고 묻는다. 죄인은 그 전령들을 보았지만, 그들이 상징이고 경고였다는 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염라대왕은 죄인을 열지옥(熱地獄)에 가둔다. 그곳은 네벽과 상하가 철판으로 둘러싸여 있고 네개의 문이 있는데 지면의 철판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고 한다. 수백년이 지나야 겨우 한쪽 문이 삐끗 열리는데, 그곳을 나서면 분뇨지옥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수백년 뒤에는 개(犬)의 지옥으로 옮겨진다.
불교의 궁극적 지향점은 정각(正覺)을 통해 열반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 신도는 이 세계에 다가가기가 어렵다. 그래서 불교는 차선(次善)의 방편으로 선업(善業)과 공덕쌓기를 강조하는 인도 민간신앙의 윤회와 업사상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편역:김홍근<외대강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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