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보르헤스의 불교강의-<10> 불교에 영향을 미친 사상(3)-베단타학파(하)

똥하 2009. 3. 30. 23:04

보르헤스의 불교강의 - <10>불교에 영향을 미친 사상(3)-베단타학파(하)

 

베단타학파의 라마누자(Ramanuja)는 해방된 영혼은 죽음 뒤에 순수의식으로 남는다고 주장했다. 또다른 이들은 이슬방울이 바다물에 합류하듯 개인의 영혼은 신성(神性)에 흡수된다고 말한다. 에드윈 아놀드 경(Sir Edwin Arnold)은 자신의 시(詩) ‘아시아의 빛’ 끝 귀절을 ‘이슬방울은 빛나는 바다속에 소멸한다’고 썼다.

베단타 경전에 이런 말이 있다. ‘꿈꾸는 사람이 자신의 여러 모습을 꿈꾸지만 실제로는 결코 스스로를 벗어나는 일이 없는 것처럼, 혹은 마법사가 허황되게 변신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스스로는 항상 마법사인 것처럼, 그렇게 세계는 브라만에서 나오지만 브라만 자신의 본질이 변화하는 법은 없다.’ 13세기 페르시아의 범신론자 할랄 우딘 루미(Jalal-Uddin Rumi)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그물을 던지는 자요 낚이는 고기이며, 거울이면서 비치는 영상이며, 함성이며 메아리이다.” 쇼펜하우어도 비슷한 글을 썼다. “고문하는 자와 고문받는 자는 동일인이다. 고문하는 자는 자기가 고통과는 상관없다고 믿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고문받는 자는 스스로 잘못이 없다고 믿지만 그것 역시 착각이다.” 에머슨의 시 ‘브라만’은 이렇게 시작한다.

 

“만일 붉은 암살자가 죽인다고 생각하고

피살자는 암살 당했다고 믿는다면

그들은 모르고 있다.

 

내가 때로는 이 길을 때로는 저 길을

걷는다는 것을”

또 뒤에 가서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서 벗어나려는 자는

잘못 생각한 것이다.

 

그들이 내게서 벗어나 날려고 할때

그 날개가 바로 나다.

 

나는 의심하는 자이며 그 의심이다.

 

나는 브라만이 부르는 노래이다.”

보들레드도 “나는 때리는 손이며 맞는 뺨이다”고 말했다. <바가바드 기타>에서 아르주나는 전쟁에 직면한 절박한 순간에 적군들이 모두 친척임을 상기하며 활을 놓고 땅에 털석 주저앉는다. 그는 양편 군대속에서 “스승과 부친과 아들과 손자들 그리고 그외 친척들”을 보고 칼을 거둘 결심을 한다. 그때 마부로 화신하여 아르주나의 마차를 몰던 크리슈나신이 아르주나에게 현신하여 전쟁이란 한갓 환영이란 것을 일깨운다. “산자를 위해서도 죽은자를 위해서도, 지혜로운 자는 슬퍼하지 않는다. 내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는 없었다. 너도 그랬고, 저 왕자들도 그랬다.

 

앞으로도 우리 모두가 존재하지 않을 때는 없을 것이다…이 사람은 저 사람을 죽이고 저 사람은 이 사람에 의해 죽는다고 생각하는 자는 분별력이 없는 사람이다. 어느 누구도 죽이지 않고 어느 누구도 죽지 않는다. 육신의 소유주가 소년, 청년, 노년기를 거쳐가듯이 죽은 후에도 다른 육신을 얻게 될 것이다. 현명한 자는 육신의 죽음에 미혹되지 않는다. 칼도 그를 죽일 수 없고, 불도 그를 태울 수 없으며, 물도 그를 적실 수 없으며, 바람도 그를 말릴 수 없다.” 크리슈나는 더불어 이렇게 덧붙인다. “전쟁터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크리슈나의 이런 말은 플로티누스의 다음과 같은 말을 상기시킨다. “이번 연극에서 죽는 배우는 다음 연극에서 역할을 바꿔 다시 출연한다. 연극에서 죽는 것은 진짜 죽은 것이 아니다. 죽음은 마치 연극배우들이 역할을 바꾸는 것처럼 몸을 바꾸는 것이다.”

 

 

인도 육파철학 중 산키야학파와 베단타학파를 소개한 보르헤스의 글은 특히 이 두 학파의 가르침의 핵심인 ‘자아(自我)의 아이덴티티(正體性)’ 문제에 집중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두 학파가 설파한 정체성의 문제에서 보르헤스가 깊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근대적 주체(modern ego)의 문제는 데카르트에서 헤겔을 통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사상계에서 가장 핵심적 주제가 되어 왔다. 보르헤스는 그의 작품을 통하여 이 근대적 주체에 대한 회의를 표시했는데 그 모티브를 산키아학파와 베단타학파의 교설에서 빌어왔다.

 

예를 들어, 산키아학파는 배우로서의 자아와 관객으로서의 자아를 인식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즉 우리는 배우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고 그 배우를 바라보는 관객으로서의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자각함으로써 보다 큰 대아(大我)와의 합일(合一)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보르헤스는 그의 짧은 평론 <보르헤스와 나>에서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유명한 작가 ‘보르헤스’는 배우에 불과한 것이다. 번잡한 세상사는 (배우)보르헤스의 몫이다.

 

(배우)보르헤스에 관해서는 우편함을 통해 소식을 듣고, 문인 인명사전에서 그의 이름과 이력을 알 수 있다. 엄밀히 말해서 보르헤스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진 유명작가 보르헤스는 ‘나’가 아니고 ‘그’이다. 반면 ‘나’는 개인적이고 내면적인(관객인) 존재이다. ‘나’는 끊임없이 ‘보르헤스’에게서 도망치지만 그는 끈질기게 ‘나’를 쫓아오고, 세상은 나를 ‘보르헤스’로 기억한다. 이렇게 내 생은 도망자의 생이었다. 그런데 보르헤스와 나 우리 둘 중 누가 이 글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편 깨달음의 세계를 통해 조망하는 브라만의 차원에서는 암살자와 피살자가 모두 동일인이라는 생각을 차용하여 보르헤스는 그외 단편소설 <신학자들>을 썼다. 이 소설에서 신학적 입장이 다른 두 신학자가 치열한 논쟁을 벌이다가 한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단으로 몰아 화형(火刑)에 처하게 한다. 그러나 가해자의 입장에 있었던 신학자도 후일 죽게 되는데, 그는 사후(死後) 신성의 마음 속에서는 정통파와 이단자, 고발자와 희생자, 증오하는 자와 증오받는 자 모두 동일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이런 생각들이 조금 더 발전하면 필연적으로 무아(無我)에 이른다. 근대성(modernity)에 대한 비판과 반성은 근대적 주체에 대한 검토로 초점이 모아지고 많은 탈(脫)근대주의 사상가들에 의해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불교의 무아사상이다. 그리고 서구에서 이점을 누구보다 먼저 지적한 것이 보르헤스이다. ‘탈근대의 창시자’라는 보르헤스의 별명은 이런 연유로 붙여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