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법사와 어머니***
신라 진정법사는 몹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그는 품을 팔아 홀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했다.
집안이 너무 어려워 장가도 들지 못한 채 어머니께 효도를
다했으므로 마을에서는 칭찬이 자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스님 한 분이 그의 집에 와서 쇠붙이 시주를 구했다.
살림이 워낙 가난한지라 그의 집에 철물이라고는 다리
부러진 쇠솥 하나밖에 없었다.
본시 불심이 돈독한 진정의 어머니는 생각다 못해 다리
부러진 솥을 스님께 내드렸다.
저녁때가 되어 품팔이 갔던 아들이 돌아오자 어머니는
낮에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상의도 없이 선뜻 하나밖에 없는 솥을 보시했다고 아들이
화를 낼까 염려하던 어머니는 의외로 기뻐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는 더없이 고마웠다.
『참 잘하셨습니다. 불사에 내놓으셨으니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그 솥이
없어 밥을 지어 먹지 못하지야 않을 테니까요.』
진정은 이렇게 어머니를 위로하고는 그날부터 질그릇에
밥을 지어 어머니를 봉양했다.
그 무렵, 진정은 의상법사가 태백산에서 많은 사람들을
교화 제도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꼭 만나 뵙고 설법을 듣고 싶은데….」
단걸음에 달려가 의상법사를 친견하고 싶었으나 어머니를
홀로 두고 떠날 수가 없었다.
며칠간 망설이던 진정은 의상법사에 대한 흠모의 정과
공부하고 싶은 마음을 누를 길이 없어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어머니, 어머니께서도 들으셔서 알고 계시겠지만
의상 스님의 도력이 굉장한가 봅니다. 저는 그 스님
이야기를 듣고 난 뒤로는 자꾸 출가하고픈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습니다.
오늘이라도 떠나고픈 마음 간절하나 차마 어머니 때문에
못 떠나겠습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 저는 그 길로
의상 스님을 찾아가 상좌가 되겠습니다.』
아들의 말을 들은 어머니는 뜻밖이라는 듯 몹시
반가워했다.
『네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줄 미처 몰랐구나.
참으로 장하다. 불법은 만나기 어렵고 인생은 덧없는
것인데 언제 나 죽기를 기다리겠느냐. 늦어서는 안될
일이니 네 마음이 그렇다면 지체 말고 어서 떠나거라.』
『어머니께서는 오직 저 하나만 믿고 사시는데 제가
어떻게 어머니 곁을 떠날 수 있겠습니까?』
『어미를 생각하는 네 효심은 알겠으나, 네 앞길이
나 때문에 막힌대서야 어미된 도리가 아니니라. 이 길로
즉시 출가하여 열심히 공부하여 큰스님 되는 것이
곧 어미를 위하는 일이다. 만약 네가 나로 인하여
출가를 늦춘다면 그것은 어미를 위함이 아니고 나를
지옥에 떨어지게 함이나 다를 바 없다.』
어머니의 간곡한 당부에 진정은 머리를 숙인 채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어머니는 부엌에 나가 뒤주를 기울여
쌀을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모두 밥을 지었다.
『네가 쌀을 가지고 가다가 밥을 지으려면 길이 더딜 것
같아 있는 쌀을 모두 털어 밥을 지었으니 한 되 밥은
집에서 먹고, 남은 밥은 말려서 싸 가지고 가다가 먹도록
해라.
남자가 무슨 일이든 결심을 하면 중도에서 그만두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니 어미 말 명심하길 바란다.』
어머니의 재촉과 당부는 눈물겹도록 지극했다.
『어머니를 홀로 두고 출가하는 일도 자식으로서 차마
못할 일이온데 집에 남은 쌀까지 싹싹 긁어 가지고
떠난다면 정말 불효막심하여 아니되옵니다.』
진정은 어머니가 사주신 밥보따리를 풀어놓으며 사양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도로 싸주셨다.
『어미의 정을 그렇게 외면해서야 어디 자식이라 하겠느냐.
나는 아는 사람의 집을 찾아다니면서 지낼지라도 배고파
죽지는 않을 것이니 내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하오나 어머니….』
진정은 눈물을 흘리며 다시 보따리를 끌렀다.
모자는 세 번이나 서로 권하고 사양하다 진정은 마침내
밥을 싸들고 태백산으로 향했다.
의상법사를 만날 기쁨에 들뜬 진정의 발걸음은 피곤할
줄 몰랐다.
밤낮없이 사흘을 걸으면서 그는 자신의 머리 깎은 모습을
그렸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싸주신 밥을
꺼내 먹을 때면 그는 목이 메었다. 연로하신 어머니께서
이집 저집 기웃거리며 문전걸식이나 하지 않을실는지,
행혀 추위에 떨지나 않으실까 들떴던 출가의 기쁨도
잠시였다.
발길을 돌려 어머니 곁으로 돌아가고픈 맘이 파도처럼
일었다.
그러나 그는 뒤주를 털어 밥을 싸 주시면서 간곡히
일러주시던 어머니의 말씀을 되살렸다.
마음을 다져먹고 의상문하에 들어가 진정이란 법명을
수지한 그는 마침내 의상의 10대 제자 중 한 사람이 됐다.
태백산에서 공부하기 3년 어느 날. 스님은 어머니의
부음을 들었다.
스님은 슬퍼하지 않고 조용히 입정에 들었다.
그리고는 7일만에 깨어나 스승 의상에게 어머니가
입적하였음을 알리자 의상은 3천 대중을 거느리고
진정 스님의 고향 근처인 소백산 추동으로 왔다.
그리고는 약 3개월간 화엄산림법회를 열고
화엄경을 설하면서 진정법사의 모친천도를 기원했다.
강의를 마치는 날이었다.
진정 스님은 꿈에 어머니를 만났다.
하얀옷을 단정히 입은 어머니는 살아생전보다 더
단정하고 깔금한 몸매로 나타나 아들에게 말했다.
『나는 이미 천상에 왓으니 내 염려는 말고 오직 법도를
닦는 데 열중하거라.』
이때 진정법사와 함께 강의를 들은 지통 스님은 강의내용
중 중요한 것을 뽑아 2권의 책으로 묶어 세상에 내놓으니
이 책이 《추동기》 이다.
자료출처/http://www.buddhap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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