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스크랩] 달마대사는 누구?

똥하 2009. 4. 29. 07:18

-소공거사님의 달마도-
중국 선종(禪宗)의 창시자. 범어(梵語)로는 보디다르마이며 보리달마(菩提達磨)로 음사(音寫)하는데, 달마는 그 약칭이다. 남인도(일설에는 페르시아) 향지국(香至國)의 셋째 왕자로, 후에 대승불교의 승려가 되어 선(禪)에 통달하였다. 520년경 중국에 들어와 북위(北魏)의 뤄양[洛陽]에 이르러 동쪽의 쑹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서 9년간 면벽좌선(面壁坐禪)하고 나서, 사람의 마음은 본래 청정하다는 이(理)를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 선법(禪法)을 제자 혜가(慧可)에게 전수하였다. 그의 전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최근 둔황[敦煌]에서 출토된 자료에 따르면, 그의 근본사상인 ‘이입사행(二入四行)’을 설교한 사실이 밝혀졌는데, 오늘날의 학계의 정설로는, 달마는 《사권능가경(四卷楞伽經)》을 중시하고 이입(二入)과 사행(四行)의 가르침을 설파하여 당시의 가람불교나 강설불교(講說佛敎)와는 정반대인 좌선을 통하여 그 사상을 실천하는 새로운 불교를 강조한 사람이다. -두산 백과사전에서 발췌- 보리달마는 남인도 향지국의 셋째 왕자로 태어나 성을 세테이리(刹帝利)라고 했다. 단, 달마는 인도가 아닌 페르시아 출신이라고도 하며, 刹帝利라고 하는 것은 성이 아니라 인도 4성계급 중에 크샤트리아를 의미한다고도 한다. 어느 날 '반야다라'라고 하는 고승이 널리 가르침을 베푼다는 말을 듣고 국왕은 그를 왕궁으로 초청하였다. 국왕은 반야다라의 가르침을 받고는 왕에게 광채가 나는 보석을 공양하고 신자가 되기로 하였다. 한편 왕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장남은 '월정다라'라고 불렀으며, 염불삼매의 행을 닦았다. 둘째는 '공덕다라'라고 하는데, 백성에게 봉사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겼다. 셋째는 '보리다라'라고 불렀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해석하는 데 뛰어났다. 이에 반야다라는 세 왕자의 지혜를 시험해 보기 위하여 질문을 던졌다. "이 세상에서 이 보석보다 더 훌륭한 것이 있겠습니까?" 월정다라가 대답하였다. "이 보석은 우리 나라의 보물입니다. 이 세상에 더 훌륭한 것이 있을 리 없습니다." 공덕다라 역시 비슷한 말을 하였다. 그런데 보리다라가 말하길, "스승님, 이런 보석은 감히 최상의 보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 보물은 가지고 있는 사람만을 기쁘게 할 뿐 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가는 보물은 여러 가지 법 중에서 부처의 가르침이고, 사람이 지닌 뛰어난 여러 가지 능력 중에서는 지혜가 가장 두드러집니다. 그리고 지혜 중에서는 마음의 지혜가 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 가지 보물이 가장 훌륭할 것입니다." 반야다라는 그가 큰 그릇 임을 알고 크게 칭찬하였다. 얼마 후에 국왕이 승하하자 보리다라는 반야다라를 따라 출가하여 불법을 배우게 되었는데, 이에 이름을 '보리달마'라고 하였다. 달마가 스승 밑에서 수행하기를 40여 년, 반야다라는 임종에 이르러 달마에게 유언을 남기며 입적하였다. "내가 죽은 후 67년이 지나면 동쪽 중국이라는 나라에 가서 전법하도록 하여라. 남쪽에 머무르지 말고, 네가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북쪽으로 가도록 해라." 이에 달마는 훗날 스승의 명을 받아 중국이라는 나라로 향하게 된다. 반야다라에게는 달마 이외에 불대선, 불대승이라고 하는 두 명의 제자가 있었다. 스승의 사후 그 종지가 6종(六宗)으로 나뉘어졌으니, 유상종(有相), 무상종(無相), 정혜종(定慧), 계행종(戒行), 무득종(無得), 적정종(寂靜)이었다. 각기 주장을 달리하여 서로 다투고 갈등을 일으켰다. 이를 보고 대사가 생각하기를 '이처럼 나누어 생각하는 것은 결코 부처님의 뜻에 이르는 길이 아니다. 내가 이것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해탈에 이르는 길이 멀어질 것이다.' 하고는, 6종의 종사와 대면하여 일일이 그 고집을 꺽어 놓았다. 그리하여 6종이 모두 달마에게 귀의하였고 그의 명성은 전 인도에 널리 퍼져나갔다. 한편 달마의 첫째 형인 월정다라의 아들 이견왕이 즉위했을 무렵이었다. 이견왕은 불법이 국민과 조상을 현혹하고 있다고 오해한 나머지 불교를 배척하기 시작하였다. 달마대사가 그것을 알고는 어찌하면 그를 설복시킬까 생각하였다. 이에 달마의 제자 종승이 말하길, "제가 천박하오나 어찌 왕을 위하는 일을 마다하리까?"라고 하자 대사는 "너는 아직 도력이 온전치 못하니라"라고 하였다. 하지만 종승은 이에 굴하지 않고 홀로 왕궁에 나아가서 왕을 설득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왕의 물음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고 쩔쩔 매는 사이에, 대사는 이를 눈치채고 다른 뛰어난 제자인 바라제를 보내어 종승을 구원토록 하였다. 바라제가 신력을 빌려 구름을 빌어 타고 왕의 앞에 이르러 가만히 머물렀다. 이때 왕은 바라제가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고 놀라, 종승을 밖으로 쫓아내고는 바라제와 문답을 나누기 시작하였다. 바라제는 왕의 물음에 답하여 불성에 대한 가르침을 전하니, 왕은 이에 마음이 열리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불법을 배우는 데 게으르지 않았다. 한편 쫓겨난 종승은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높은 벼랑에서 몸을 던졌으나, 그의 능력을 아깝게 여긴 한 신선이 그를 받아 바위 위에 올려놓고는 계속해서 수양 정진할 것을 주문하였다. 종승은 기뻐하며 바위 사이에 앉아 불법을 닦았다. 이때 이견왕이 바라제에게 물었다. "이토록 뛰어난 법문을 전수한 스승님은 누구십니까?" 바라제가 대답하기를, "나의 스승님은 곧 왕의 숙부이신 보리달마 그 분이십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놀라 자신의 죄를 탓하며 곧 대사를 맞아들이게 하는 한편 종승을 부르도록 하였다. 하지만 종승은 산속에 숨어 선을 닦을 뿐, 세상에 나오기를 부끄러워하였다. 궁중에서 달마는 깊이 있게 법을 전수해주었다. 얼마 후 왕이 병을 얻어서 백방으로 치료하였으나 효력이 없었다. 대사에게 사신을 보내어 왕의 병을 구원하길 청하였다. 대사는 곧 왕궁에 와서 병을 위문하고, 자비를 베풀고 죄를 참회토록 함으로써 왕의 병을 낫게 하였다. 중국으로 건너가다 어언 60여년, 반야다라가 유언한 햇수가 흘렀다. 이제 본국에서 할 일을 어느 정도 끝마쳤다고 생각한 달마는 중국으로 갈 것을 결심하고는 왕을 찾아갔다. 왕이 눈물을 흘리며 만류했지만 달마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에 왕은 꼭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달마의 항해를 준비하였다. 달마는 우선 제자 불타야사에게 사전답사를 떠나게 했다. 불타야사는 오랜 여정 끝에 겨우 중국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에서 접한 광경들은 달마의 가르침과는 크게 어긋나는 것들이었다. 중국의 승려들은 달마의 사상을 낯선 것으로 배척하였던 것이다. 이에 불타야사는 크게 낙심하여 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이에 달마는 뛰어난 제자의 죽음에 안타까워하면서 참된 불교의 마음을 전해주려는 굳은 결심을 가지고 중국을 향해 출발하였다. 한편 달마가 바닷길을 출발하는 데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대사가 배를 타려고 항구에 이르자 수 백년 묵은 큰 고기가 배 드나드는 길목에 와서 죽어있는데 배가 그 길목을 통과하지 못하고 돌아가야 하며, 차츰 썩어서 냄새가 풍기어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는다고 하였다. 대사는 그런 불편을 없애주는 것이 모두 중생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여, 나무 숲 속에 들어가 조용히 선정에 들어서 그 정신이 몸을 벗어나 신력으로 고기시체를 운반하여 먼바다에 내다버리고 돌아와 보니, 웬걸 자신의 몸은 오간 데 없고 어떤 선인의 괴이한 몸이 있었다. 대사가 혜안으로 관찰해보니, 그 나라의 이름높은 오통선인이 숲 속에 도인의 몸이 있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몸을 벗어버리고 대사의 몸을 바꾸어 가지고 갔다. 달마의 몸은 원래는 매우 빼어난 모습인데 그 바꾼 몸은 눈이 새파랗고 수염이 많아서 얼른 보면 사람 같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후대에 전하는 달마도의 모습은 괴상한 모습을 하고 있는 듯 하다. 아무튼 어려운 항해를 마치고 중국의 광주에 도착한 것이 양무제 보통(普通) 원년(520) 9월 21일이었다고 한다. 그곳 광주자사 소앙이 예를 갖춰 영접했고, 그 보고를 들은 양무제가 초청하여 달마스님과 양무제는 금릉의 궁중에서 만났다. 무제와 달마스님이 문답을 나누기를 "내가 임금의 자리에 오른 뒤 절을 짓고 승려들을 도왔으며 경전을 복사하거나 간행하는 일 등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했으니 내 공덕이 어느 정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무런 공덕이 없습니다. 그러한 일들은 다만 중생세계에서 조금 나은 결과를 얻어 생사 윤회의 원인을 조금 낫게 할 뿐입니다. 그러한 공은 마치 형상을 따르는 그림자처럼 있는 듯 하지만 실체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진실한 공덕입니까"」 "청정하고 원만한 밝은 지혜를 얻는 공덕이 참된 것이니 이것을 세속의 공덕으로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에 무제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불법의 가장 거룩한 근본은 무엇이요?" "근본 자체가 원래 비고 고요하여 거룩하다는 것은 없습니다." 이에 무제는 싸늘하게 물었습니다. "짐을 대하고 있는 이는 누구요?" "모릅니다." 달마와 황제의 문답은 이것으로 끝났다. 이 문답은 달마에 관한 에피소드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양무제에 대해 잔뜩 기대를 하고 있던 달마는 허무한 마음과 함께 돌아서야만 했다. 양무제 역시 달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를 보내야만 했던 것이다. 후에 무제는 이 일을 몹시 후회했다고 하나, 이미 때는 늦은 법이다. -계속- -인터넷 검색 편집-
출처 : 德의 동산
글쓴이 : 은빛물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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