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보르헤스의 불교강의-<17> 불교의 우주관

똥하 2009. 3. 30. 23:17

보르헤스의 불교강의 - <17>불교의 우주관

 

불교는 힌두교의 우주관을 받아들여 우주는 같은 구조로 된 무한히 많은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우주가 유한하다고 긍정하는 것은 옳은 식견이 아니다. 우주가 무한하다고 보는 것 역시 옳지 못하다. 유한하지도 않고 무한하지도 않다고 하는 것 또한 옳은 의견이 아니다. 이러한 삼중부정(三重否定)은 아마도 우리에게, 현세(現世)에서의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는 시급한 문제에 집중하도록 독려하면서 공허하고 무익한 논쟁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 같다.

에반스-웬츠(W. Y Evans-Wentz)가 <티벳 사자(死者)의 서(書)> 서문에서 소개한 고대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각 세계의 배꼽(중앙)에는 ‘메루(Meru)’ 혹은 ‘수메루(Sumeru)’라고 불리는 산이 솟아 있다. 그 산은 머리부분을 잘라낸 피라미드 모양을 하고 있다. 동쪽 사면(斜面)은 은으로, 남쪽 사면은 옥으로, 서쪽 사면은 루비로, 북쪽 사면은 금으로 되어 있다. 꼭대기에는 신(神)들의 도시와 선인(善人)들의 낙원이 있다. 맨 아래 층에는 지옥이 있다.

팔만사천 마일 높이의 메루산 위로 태양, 달, 성좌(聖座)가 돌고 있다. 메루산 주위에는 일곱개의 황금산이 차례로 메루산을 둥글게 둘러싸고 있고, 각각의 황금산 사이에는 일곱개의 바다가 동심원(同心圓)을 그리며 메루산을 에워싸고 있다. 따라서 세계 지도는 일곱개의 원이 그려져 있는 화살 과녁 모양이 된다. 바다의 깊이와 산맥의 높이는 중심에서 멀어져 갈수록 낮아진다. 마지막 산맥 외부에 위치한 바다가 인간이 접하는 바다이다. 이 바다에는 네개의 대륙과 무수한 수의 섬이 있다.

 

동쪽대륙은 반달형의 모양인데 그곳 주민들 역시 반달형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들은 성품이 차분하고 인자하다. 대륙의 색깔은 흰색이다. 남쪽 대륙엔 우리 인간들이 살고 있는데 대륙과 인간 얼굴의 모양이 모두 배(梨)를 닮았다. 이곳엔 선과 악, 부(富)와 유복(裕福)이 있고 청색을 띠었다. 서쪽 대륙은 둥글고 붉은 색이다. 주민들은 힘이 센데 소고기를 먹고 둥근 얼굴을 하고 있다. 북쪽 대륙은 사각형으로 녹색이다. 네 대륙중 여기가 가장 크며 주민들의 얼굴은 사각형이며 채식주의자들이다. 주민들의 영혼은 사후에 나무에 깃든다.

 

대륙마다 두개의 작은 위성대륙이 있다. 인간이 사는 대륙의 왼쪽에는 라크샤사(rakshasa)의 위성대륙이 있다. 그들은 인류의 적인 악마들인데 공동묘지에서 살면서 시체를 선동하고, 제사를 망치고, 착한 자를 괴롭히고, 인간을 잡아 먹는다. 얼굴이 못생긴 악마도 있고, 아름다운 악마도 있다. 어떤 것들은 외눈이나 외귀도 있다. 다리가 두개인 것, 세개인 것, 네개인 것도 있다. 고대 서사시에는 그들의 별명이 자주 등장한다. 살인자, 악한, 공물도적, 어둠의 거인, 몽유환자, 식인종, 육식동물, 흡혈귀, 걸식가, 흑면귀(黑面鬼) 등으로 불린다. 일설에 의하면 라마교의 고승인 파드마-삼보하바가 8세기경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들에게 전파했다고 한다.

 

동쪽 대륙 주민의 수명은 2백50년, 남쪽 주민은 1백년, 서쪽 대륙 주민은 5백년, 북쪽 대륙 주민의 수명은 이천년이다. 구약성경에는 인간의 생명이 70년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자연수명을 1백년이라고 보았다. 쇼펜하우어의 견해는 인도인의 생각과 일치한다. 병으로 죽는 것은 전쟁터에서 전사하는 것 만큼 자연스럽지 않은 사고(事故)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세계의 모습은 하늘에서 내려다 본 수평적인 묘사이다. 수직적으로 보면 세계는 세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맨아래층은 감각의 지역이다. 이곳엔 신, 인간, 악마, 유령, 동물 그리고 지옥의 생물들이 산다. 이 층의 가장 아래 부분은 지옥인데 팔열지옥(八熱地獄)과 팔한지역(八寒地獄)이 있다. 지옥의 위에는 우리 인간들이 산다.

 

가운데 층은 형상의 지역이다. 제일 위층은 무형(無形)의 지역이다. 가운데 층과 윗층에는 신들만이 살고 있다.

 

신들은 수명이 무척 길지만 영생(永生)하는 것은 아니다. 몇몇 신들은 메루산 꼭대기에서 살고, 다른 신들은 허공 위에 세워진 궁전에서 산다. 신들의 계급이 올라갈수록 쾌락은 비육체적인 것이된다. 하급으로 내려갈수록 인간과 비슷하게 된다. 하급신의 사랑의 행위는 인간과 유사하다. 상급으로 올라갈수록 사랑의 행위도 키스, 애무, 미소 혹은 명상으로 바뀐다.

신의 세계에선 임신과 출산도 없다. 자식들은 이미 예닐곱살 먹은 상태로 신의 무릎 위로 급작스럽게 태어난다(유태인들의 전설에 의하면, 아담은 33살 먹은 상태로 창조되었다고 한다). 가운데 층의 신들은 감각적인 쾌락과는 상관이 없다. 그들의 음식은 환희이며 그들의 몸은 섬세한 물질로 되어 있다. 그들에게 시각과 청각은 있지만, 미각과 후각 그리고 촉각은 없다. 최상층의 신들은 육체가 없고 순수한 명상적 무아경(無我境) 속에 산다. 그 명상은 2만, 4만, 6만, 8만 우주년(宇宙年)까지 지속된다.

 

각각의 세계는 물 위에 떠있고, 물은 바람 위에, 바람은 창공 위에 떠 있다.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세계들은 세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데, 각 그룹들 사이에는 넓고 황량하며, 어두운 빈 공간이 있어 유형(流刑)의 장소로 사용된다.

 

지금까지 위에서 묘사한 이러한 환상적인 우주관은 석존이 가르친 교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석존이 한결같이 강조했듯이, 중요한 것은 우리를 해탈로 이르게 하는 실천적 수행이다. 힌두교 전통 하의 인도에서 불교가 등장한 것은 실사구시(實事求是)적 개혁을 의미했던 것이다.

 

편역:김홍근<외대강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