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스크랩] 2006년 12월 20일 예불문 제6강 (신중단예불 )

똥하 2010. 4. 26.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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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단(神衆壇)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진법계(盡法界) 허공계(虛空界) 화엄회상(華嚴會上) 욕색제천중(欲色諸天衆)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진법계(盡法界) 허공계(虛空界) 화엄회상(華嚴會上) 팔부사왕중(八部四王衆)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진법계(盡法界) 허공계(虛空界) 화엄회상(華嚴會上) 호법선신중(護法善神衆) 

원제천룡발부중(願諸天龍八部衆) 위아옹호불리신(爲我擁護不籬身) 어제란처무제란(於諸難處無諸難) 여시대원능성취(如是大願能成就)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금강보살명왕중(金剛菩薩明王衆 )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범석사왕일월제천중(梵釋四王日月諸天衆)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하계당처일체호법선신등중(下界當處一切護法善神等衆)

옹호성중혜감명(擁護聖衆慧鑑明) 사주인사일념지(四洲人事一念知) 애민중생여적자(哀愍衆生如赤子) 시고아금공경례(是故俄今恭敬禮)


반갑습니다. 12월 20일 음력으로 11월 초하루입니다.

인터넷 방송법문 시작하겠습니다.

어제는 예고가 좀 늦었죠, 휴강한다는 예고를 미리 좀 생각을 했다가 해야 되는데 좀 늦어서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지난시간까지 예불문 상단에서 우리가 흔히 예불은 하고 행선축원이나 발원문을 하고 바로 이어서 신중단에 예불을 드리죠. 큰 법당에서의 일입니다. 신중단 예불도 한번 살펴봄으로 해서 한국불교의 여러 가지 사정들을 이해하게 되고 또 따라서 불교의 궁극가르침이 무엇인가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길이 되기 때문에 신중단예불을 살펴볼까 합니다.


의례히 상단예불과 발원문이 끝나면은 신중단을 향해서 삼정례를 하거나 아니면은 반야심경한편을 친다고 그러죠, 반야심경한편을 독경을 합니다. 요즘 그게 예불의 모습인데, 옛날에 좀 구색을 갖추어서 예불을 올릴때는 의례히 삼정례를 하고 또 뒤에 반야심경을 치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삼정례를 생략해버리고 반야심경만 독경만 하는 그런 사찰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간혹 전통을 잘 지키는 그런 사찰에서 보면 삼정례를 하고 반야심경을 외우죠. 

여기서는 삼정례를 소개할까 합니다.  


그런데 대웅전에 부처님께 예불을 드리고 왜 다른데도 아니고 신중단을 향해서 예배를 드리는가? 그 신중단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런 것을 우리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중은 구체적으로 말하면 화엄신중(華嚴神衆)이라 그렇게 말해요. 화엄신중

이것도 앞에서 언젠가 언급을 해드렸습니다 만은 우리나라 초기불교가 자리를 제대로 잡을 때 화엄사상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처음에 뭐 아도화상이 불상을 가져오고, 경전 조금 가져와서 겨우 세상에 부처님이 계신다는 사실 불교가 있다는 사실을 겨우겨우 알리던 그런 때는 아직도 이제 불교가 한국에 자리를 잡기 이전이라서 어떤 상상적이 뒷받침이 제대로 되었다고 할 수 없는 그런 시기이고요.


신라시대 특히 통일신라시대에 와가지고 불교가 제대로 자리를 잡았죠.

그것도 여러 우연곡절이 많습니다. 이차돈성사께서 순교를 하신 덕도 있고요. 법흥왕이 불교를 특별히 좋아했죠, 그런 긴 역사가 있습니다. 만은 뭐 그것을 이 자리에서 길게 말씀 들릴 수는 수 없고, 신라시대 법흥왕이 법흥호불왕 이렇게 하죠. 법흥왕이 불교를 좋아했다. 이차돈성사가 순교를 했죠. 이차돈 불교를 숭상하는데 국가에서 그 당시는 받아들이지 못해서 목을 잘랐는데 목에서 흰 핏줄이 높이 솟아서 어떤 불교의 영험을 보였다. 이렇게 해가지고 그때부터 불교를 신봉해야지 불교를 함부로 배척해서는 안 되겠다는 분위기가 고조되어서 비로소 불교가 자리를 잡게 되고,


그러고 나서 세월이 지나서 원효스님과 의상스님이 유학을 이제 가다가 원효스님은 중간에 돌아오시고 의상스님은 당나라에 가서 화엄학공부해서 이제 돌아왔죠. 원효스님은 유학을 하진 않아서도 역시 화엄경을 받아들여가지고 화엄사상을 공부를 많이 하셨습니다. 원효종, 해동종 이렇게 뒷사람들이 이름을 붙이는데 그건 화엄사상을 근간으로 한 종파에요. 

무슨 요즘같이 태고종 조계종 천태종 이런 형식으로 무슨 종파가 나눠진 것은 아닌데, 뒤에 그분의 사상을 근간으로 해서 하나의 종으로 이름을 붙이면 이제 그렇게 원효스님은 원효종, 해동종이라고 하지만 사상은 화엄사상입니다. 또 의상스님은 의상종, 화엄종이라고 하고 그런 표현들을 썼죠.

그럴 무렵에 비로써 제대로 화엄사상이 밑받침이 되고 불교가 정상적으로 이제 자리를 잡게 되죠. 그래서 우리나라에 화엄사찰이 많지 않습니까?


의상스님의 제자가 아주  훌륭한 제자가 있었는데 의상스님께서 부석사를 근거로 해서 전국에다가 화엄경을 강설하는 포교당을 열었어요.

제가 있는 범어사도 의상스님 창건이죠.

설사 과거에 어떤 사찰이 창건되었다고 하더라도 의상스님께서 당신의 제자를 보내어 그때부터 그 사찰에서 화엄경을 펴라고 하면은 그게 화엄사찰속에 들어갑니다.

불국사, 구례 화엄사, 해인사도 역시 해인이라는 말도 화엄경의 낱말이고 화엄경의 용어죠. 화엄사는 더 말할 것도 없고요.

구례화엄사는 화엄석경이라 해서 화엄경을 전체를 돌에다 새겨서 법당의 벽을 장엄했다고 하는 유명한 역사가 있죠. 아직도 남은 조각들이 많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걸 복원을 해야 되는데 복원 할 그런 움직임도 있습니다,


그런 어떤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한다면 초기의 한국불교는 전부 화엄사상으로써 불교공부를 했다. 이렇게 보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불을 드릴 때에도 대웅전에 석가모니본존불에게 예불을 드린 후에 신중단에 예불을 드리는 거예요. 화엄사상에 근거를 한 것입니다.

겨울이고 곧 머지않아서 음력설도 돌아오고 정초가 되면 의례히 신중기도를 드리죠. 화엄신중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전부 화엄사상에 근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엄사상이란 뭔가?

화엄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존재 하나하나가 전부 부처님이고 나아가서 신이고 보살이고 성인이고 이런 입장으로 만물을 보는 것입니다.


두두 물물이라고 그러죠.

사물 하나하나,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유정이라고 하는 모든 정이 있는 생명체는 더 말할 나위가 없고, 무형물이라 하더라도 돌, 나무, 바람, 구름이니, 물이니 하는 이런 것들에 이르기까지 신이요, 부처님이요, 보살이요, 아나한 이요, 이런 가장 성스러운 이름을 붙여서 신격화하고 불격화하고 보살격화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그런 안목 그것이 화엄사상의 줄거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잘 외우고 있는 화엄경약찬게 보면 온갖 신들을 다 거기서 이야기 하죠.

산도 신이요, 주산신 그러죠. 성 한 도시도 신이요, 마을도 신이요. 그다음에 불도, 물도, 바람도, 구름도, 온갖 것도 신 아닌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농사짓는 것 하며, 일체가 신이고, 월천자, 일천자 이런 말이 나오죠.

그게 뭐니까? 월천자 하는 것은 달, 일천자 하는 것은 태양을 말하는 것이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거론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거론해서 신자를 붙이거나 하늘이라고 하는 천자를 붙이거나 이렇게 하는데,


그 당시 인도사회 분위기라고 하는 것은 부처 불자보다는 신자를 더 높이 받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전부 그 당시 세상분위기 맞추어서 모든 존재에다 신자를 붙이는 것은 신격화하는 것이고, 또 불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불격화내지 보살격화해서 모든 존재를 본다는 것입니다.


사람만 위대한 것이 아니고, 깨달은 사람만 위대한 것이 아니고, 무슨 뭐 불교를 믿는다, 안 믿는다, 이런 것은 어떤 차별을 두어서 위대하다 위대하지 않다 이런 차별을 나누는 것도 아니고 만인이 평등 내지 만물평등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모든 존재의 가치와 위대함과 소중함을 철두철미 파악해서 그것을 높이 쌓주고 그것을 인정해주는 그런 사상이 화엄사상이죠.

사람만 소중한 것이 아니고, 다른 동물, 저 식물 그 많고 많은 식물 중에서 나무 하나 하나, 풀한 포기한포기, 이름 없는 돌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사람과 동등한 가치와 소중함을 깨달고 우리들에게 일깨워주는 것이 화엄사상입니다.

이런 화엄사상을 통해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간다 할 것 같으면은 누굴 무시할래야 무시할 수 없는 것이고, 다 받들어 섬겨야하고, 나를 위하듯이 다른 사람을 위하고, 나를 위하듯이 모든 존재를 그렇게 위하고, 아끼고, 받들고, 섬길 면서 살 때 진정한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하는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화엄사상이라고 하는 것이...


그래서 원효스님, 의상스님이 이런 위대한 성인 우리나라의 불교인물로서 첫손가락 둘째손가락에 꼽을만한 그런 성자가 원효, 의상 아닙니까?

그런 분들이 보통 분들이겠습니까? 그런 분들이 팔만장경을 다 꿰뚫어 보시고 일찍이 마음을 깨달으셨어. 모든 존재의 진실한 이치를 꿰뚫어 보신 안목에서 화엄사상을 널리 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이러한 이치가 우리마음에 닿아서기는 어렵습니다. 사실은 어려운 사상이지요.

어려운 사상인데 이것이야말로 부처님이 깨달으신 궁극의 사상이고 불교가 나아가야할 최후의 사상이고 최상의 사상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학 적으로 보면 화엄사상을 가장위에다 이제 두죠.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시고 바로 21일 동안 삼칠일동안 화엄경을 설했다. 이렇게 이야기 하지 않습니까?

그건 무슨 말이고 하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시고 21일 동안 그 깨달음의 환희와 법열과 그리고 그 깨달음의 위대함, 그 법희선열에 도취해 있을 때, 그때의 어떤 심리상태, 그때의 어떤 법희선열을 그대로 표현해 놓은 것이 말하자면 화엄경이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후대의 누구의 손에 의해서 다른 어떤 부처님에 의해서 편찬이 되고 결집이 되었든 간에 이것은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셨을 때 그때의 환의, 법열, 그 안목을 그대로 그려놓은 것이 화엄경이다. 이렇게 보는 거죠.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화엄경을 최고의 경전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화엄경 첫머리에 어떻습니까?

비로소 정각을 이루시니 그 땅은 견고하여 모두 다이아몬드로 되었더라. 

거 가보면 다이아몬드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죠.

모래요, 자갈이요, 아주 인도의 부다가야라고 하는 데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룬 그 지역이 아주 척박한 땅입니다. 농사도 우리나라처럼 잘되지도 않아요. 크게 기름진 땅이 아니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의 깨달음의 눈으로 볼 때 모두가 다이아몬드로 되었더라.

당신이 앉았던 그 바윗돌 위에 풀을 베서 깔고 앉으셨는데 그 자리가 그대로 역시 다이아몬드고, 보리수라고 하는 것도 나중에 이름을 지어서 붙였지만은 그 나무도 전부 온갖 금은보화로 만들어졌더라.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고 하니 깨달음의 안목에서 세상을 볼 때 모두 그렇게 비친다 하는 것입니다. 착각이 아니라 그렇게 값지고 소중하고 하나하나가 다이아몬드 이상으로 값지고 소중하고 정말 사람생명 못잖은 그런 존재들이다 하는 그런 안목을 화엄경에서 펼쳐놓은 것입니다. 이것이 거칠게 대충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이것이 화엄사상의 대강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불교가 한국의 초기불교에 바탕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것이 오랫동안 영향의 미쳤고 지금 선불교, 호국불교 무슨 별별 이름 붙이고 세월이 많이 흘렀다 하더라도 우리는 정초에 늘 화엄신중 기도를 올리고 그렇게 해야 불자들은 한 해 동안 마음 놓고 생업에 종사 할 수 있다. 이렇게 이제 보아온 것이죠.


부처님께 예배를 하고나서 반드시 그다음으로 화엄신중들에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순서인 것이다. 이렇게 예불의 형식도 그런데 근거를 해서 짜여진 것입니다.

반야심경은 복잡한 이야기이니까? 따로 시간을 정해서 공부하도록 하고 신중단의 그러한 마음을 담고 돌아서서 예배를 드리는데 또 한 가지 거기에는 출가한 스님들은 삼배를 드리지 않는 걸로 되어있다. 그래서 그쪽을 향해서 반야심경만 한편외우고 마는데 그 근거는 뭐 확실하지 않는데 신중들은 불법성 삼보를 보호하기 때문에 출가한 스님들보다 더 지위가 높다. 뭐 지위가 있을 수가 없죠. 사실은 특히 화엄사상에서는 그런 것은 있을 수가 없는데 그런 속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부처님이 자시던 공양을 물려받기를 원하고 또 스님들이 화엄신중들을 위해서, 당신들을 위해서 경전 한편을 읽어 준다면 그것이 곧 부처님을 대신해서 법문을 해주는 것이니까 그것으로 저희들은 만족하겠습니다. 하는 그런 원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도 부처님께 올려든 마지를 그대로 물려서 중단이라 그러죠.


부처님 쪽을 상단, 신중 쪽을 중단, 영단 쪽을 하단 이렇게 이제 합니다.

중단에다 내려서 부처님이 자시다 남은 것을 신중들이 받아 자시기를 좋아하니까 그걸 꼭 이제 따로 마지를 올리지 않고 그렇게 내려서 마지를 올리도록 되어있고 절도 출가한 수행승들은 절을 하지 않고 신중들에게 법문을 해준다는 하는 그런 의미에서 반야심경을 한편 외워드리는 것으로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요즘 그쪽을 향해서 절을 하지 않고 하는 것은요. 그러나 그런 일면이 있는가 하면 또 그쪽을 향해서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진법계(盡法界) 허공계(虛空界) 화엄회상(華嚴會上) 욕색제천중(欲色諸天衆)

이렇게 하고 큰절은 해요. 이걸 서서하는 스님들도 있고 정말 큰절을 해서 예배를 드리는 그런 이도 있습니다.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 받쳐서 귀의하고 예배드리옵니다.

진법계(盡法界) 온 법계 온 우주법계 그리고 저 넓고 넓은 허공계(虛空界) 그 모두가 화엄회상이라는 것입니다. 화엄회상

화엄회상(華嚴會上) 

화엄경을 설하던 법회를 화엄회상, 금강경을 설하던 법회를 금강회상, 법화경을 설하던 법회를 법화회상 또 영산회상, 법화경을 설하던 때를 영산회상 이런 표현도 하고, 법화회상 이렇게 합니다.

그리고 욕색제천중(欲色諸天衆) 욕계(欲界)색계(色界) 등등 모든 하늘의 천신대중들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 받쳐 귀의하고 예배드립니다. 이렇게 되있다구요. 글이 예배문이 그렇게 되어있기 때문에 그쪽을 향해서 반야심경을 외워드림으로써 신중들이 불법성 삼보를 평소에 보호하고 지키고 하는 그런 수고에 감내한다는 하는 그런 이론하고는 좀 다르죠.


또 저 자신을 생각해보더라도 경전 상에 나타난 화엄신중 이것은 모든 존재를 다 일컬어서 화엄신중이라고 합니다. 앞에서 주수신중, 주화신중, 주풍신중, 주공신중, 주주신중, 아수라, 가루나왕, 긴나라 세상에 존재하는 해니, 달이니 하니 모든 것들을 다 열거해서 그것을 화엄신중이 라고 하기 때문에 높고 낮고 가 그게 있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아주 절대 평등의 그런 위대함을 들어낸 그런 내용인데, 절을 해도 괜찮고 절을 하지 않아도 또 크게 허물될 것은 없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절을 하는 것이 제 마음으로는 좋을 것 같아요.

기왕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라고 했을 바에는 절을 하는 것이 좋고,

저의 사상을 인불사상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 염화실도 사람이 곧 부처님이다. 사람이 부처님이다라는 책도 있고, 사실은 사람이 부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이 세상에 전파하기 위해서 저는 이제 끊임없이 전법활동을 하고 또 염화실운영도 그 목적하나로 운영하는 것이고, 염화실에 동참하는 모든 불자님들이 그 사상하나 마음 깊이 새겨서 모든 사람들을 내 가족부터 나에게 가까운 사람들부터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고 또 인연이 닺는 모든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면은 내가 행복하고 그가 행복하다 하는 것이 저의 인불사상의 주제죠. 사람이 부처님이다 하는 그 사상의 주제인 것입니다.

그렇게 보다 면은 큰절을 올려서 예배를 드린들 두두 물물 산하대지 일체일월성신들에게 예배를 드린들 무슨 허물이 되겠습니까? 아주 기분 좋은 일이죠.


저는 한번씩 산에 이렇게 가면은 옛날에 그랬습니다.

해인사 선방에 살 때 혼자 방선시간에 산책을 이렇게 하면 옛날에 우리 있을 때는 관광객도 별로 없었어요. 산길, 오솔길을 이렇게 지나다보면 너무 산이 아름답고 그 신선한 공기가 좋아서 아무데나 대고 큰절을 하면서 나무대자연보살마하살, 나무대자연보살마하살, 나무대자연보살마하살 하고 큰소리로 부르짖으면서 예배를 드리고 한 그런 일도 있었습니다.

뭐 스님들은 흔히 그런 모습을 많이 봐요.

따지고 보면 나무한그루와 내가 무엇이 높고 낮고 하는 그런 차별과 분별을 할 수 있습니까? 이런 것들도 우리가 알고 예배를 하든, 안하든 그건 각자의 일입니다만 알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진법계(盡法界) 허공계(虛空界) 화엄회상(華嚴會上) 팔부사왕중(八部四衆)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진법계(盡法界) 온 법계 

허공계(虛空界) 화엄회상(華嚴會上) 화엄회상 아닌 곳이 없다 이 뜻이죠.

온 우주법계 허공이 전부 화엄회상이다.

팔부사왕중(八部四衆) 그랬습니다.

앞에서는 욕계색계 모든 하늘대중들

여기는 이제 팔부신중들 사천왕들 사대천왕 이건 이제 동서남북을 다 지키는 사대천왕들 뭐 빠뜨릴 수 없죠. 그런 이들에게 지심귀명례 합니다.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진법계(盡法界) 허공계(虛空界) 화엄회상(華嚴會上) 호법선신중(護法善神衆) 

불법을 보호하는 아주 훌륭한 신중들에게 지심귀명례 합니다.


삼정례중에서 욕계색계제천, 팔부신중 사천왕중, 호법선신중, 화엄성중 중에서 대표적으로 뽑아서 하는 이야기지만은 화엄신중의 본래의 의미는 이세상의 두두 물물 모든 존재를 다 일컬어서 화엄신중이라고 합니다.

그게 궁금하시면 화엄경 약찬게를 한번 검색을 해서 찾아보시고 아마 거의 다 외울 실겁니다. 도량석을 할때 화엄경 약찬게를 외우면 은 도량신이 너울너울 아주 즐거워서 춤을 춘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를 어릴 때 들은 적이 있어요. 약찬게 참 좋은 아주 염불이죠.


원제천룡발부중(願諸天龍八部衆) 위아옹호불리신(爲我擁護不籬身) 어제란처무제란(於諸難處無諸難) 여시대원능성취(如是大願能成就)


원컨대 모든 천신과 룡과 팔부대중들 나를 위해서 옹호하셨어. 나의 몸을 떠나지 않게 해주십시오. 불리신(不籬身)

어제란처무제란(於諸難處無諸難) 모든 어려운 곳에서 어려움이 없게 해주십시오.

여시대원능성취(如是大願能成就) 이와 같은 모든 큰 원이 성취되어 지이다.


옛날에 범어사에 원효암이 있어요. 의상스님이 창건을 했고 원효스님도 가끔 오셔가지고 수행을 했다 해서 원효암도 있고 거기에 가면 의상대 있고 원효대 있고 원효봉도 있고 의상봉 있고 봉우리도 그런 것이 있습니다. 신중들에 대한 재미나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죠. 그러나 그런 신중들의 설화를 이야기를 하면은 어떤 특정인을 지칭하는 게 돼 버렸어 따로 무슨 화엄신중을 생각하고 그래서 화엄신중의 본래의 의미를 망각하는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은 나의 몸을 떠나지 않고 항상 나를 옹호해주셨어 모든 어려운 곳에서 어려움이 없게 해주십시오.

라고 하는데 나와 나주변의 모든 사람과 모든 존재들 집이니, 일체건물이니, 산이니, 나무니, 땅이니 흙이니, 돌이니, 바람이니, 물이니 일체존재가 사실은 나에게 위협을 가하는 위험한 존재이기도 하고 또 내가 살아가는데 아주 편리하고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고 그렇죠.

물이 얼마나 고마운 것이며, 불이 얼마나 고마운 것이며, 바람이 얼마나 또한 고마운 것입니까? 그러나 물 때문에 생명을 잃는 경우가 얼마 많으며, 불 때문에 또 사람이 상하는 경우가 또한 얼마나 많으며, 바람 때문에 사람이 상하는 또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모든 것들이 조화로워야 되고 그게 균형이 잡혀져야 되고 이렇게 되었을 때 그게 이제 나를 옹호하는 것이 되고 어려운 곳에서 어려움이 없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어려움 없는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어려운 일이 또 따로 있는 것도 아니죠. 사실


어떤 상황에서든지 그게 어려운 일일수도 있고 아주편안한 일일수도 있습니다. 칼 같은 것 잘못사용하면 상처를 입죠. 그러나 칼 가지고 우리가 일상생활에 얼마나 편리하게 또 사용합니까? 일체다 그렇습니다.

사람 더구나 더 그렇죠.  

내가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 때문에 얼마나 행복하고 즐겁고 늘 기쁘니까? 그렇지만 늘 좋아하는 사람이 결국 상처를 주지 딴사람이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여기 호법선신이니 하는 이런 신중들은 모든 존재입니다. 일체


평소에 모든 것에 사람을 위시해서 모든 생명 모든 것에 고마움을 느끼고, 아끼고, 사랑하고 주의 깊게 잘 살피고 아낄 것은 아끼고 불필요한 것은 손상하지 않고 그런 마음가짐이 진법계(盡法界) 허공계(虛空界) 화엄회상(華嚴會上) 모든 존재들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 바쳐서 귀의하고 예배드리는 일이 아닐까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글쎄요, 화엄경을 공부한 그런 입장에서 드리는 말씀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알고 있는 화엄신중은 그렇게 해석을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우리가 정초에 화엄성중기도를 올려야 옳죠.

그런 마음이 아니고 거기서 기도를 하면 우리가 상상을 하고 있는 이상한 그런 신이 무슨 손오공 같은 신이 나타나 가지고 나의 모든 일들을 좌지우지하고 나를 지켜주고 내가 아무리 잘못해도 나를 지켜주고 하는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한다. 면은 불교도 모르는 일이고 무슨 신중에 대한 이해도 옳지 못 하구요. 모두가 엉망이 되어버리고 잘못되는 것입니다.


불교는 부처님이 깨달으신 그 깨달은 이치를 우리가 터득하는 것입니다.

공부하고 터득하는 것이고 결국 스스로 깨달으면 좋고 우리가 스스로 깨닫기 전까지는 부처님이 깨달으신 그 위치를 우리가 배우는 거예요.


그래서 잘 하면은 한순간에 깨달을 수도 있고 육조스님같이 한순간에 깨달을 수도 있고, 우리같이 둔한사람들은 오랜 세월 불조 부처님과 조사스님들의 말씀을 반복해서 거듭거듭 귀에 못이 박히도록 공부함으로 해서 조금 마음이 열리고 귀가 열리는 그런 방법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게 이제 불교 바람직한 길이죠. 부처님이 평생 하셨던 일을 우리가 잘 생각해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신중단의 저녁예불이 있습니다. 거기는 조금 다릅니다.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금강보살명왕중(金剛菩薩明王衆 )

금강보살명왕중(金剛菩薩明王衆 )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범석사왕일월제천중(梵釋四王日月諸天衆)

범석은 범천 제석천, 사천왕천 일월, 태양, 달 이런 모든 천신들에게 지심귀명례 합니다.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하계당처일체호법선신등중(下界當處一切護法善神等衆)

하계당처 바로 사람이 사는 위에는 천상 사람보다 더 높은데 사는 이들에게 예배를 드렸고. 그다음에 이제 우리 인간보다 밑에 사는 모든 일체 호법선신들에게 지심귀명례합니다.

사실 부처님께 지심귀명례 하는 것보다는 나를 지켜줄 호법선신들에게 지심귀명례하는게 어쩌면 더 가깝고 더 바람직하지 않겠나? 그런 생각도 해 볼 수가 있습니다. 아파트 지키는 수위나 파출소 순경들에게 잘하는 것이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이익이 되지 장관이나, 대통령에게 우리가 잘 할 수도 없을 뿐더러 잘한들 무슨 그런 이익을 보겠습니까? 아파트 수위나 가장 동네의 하급 직원들에게 잘해놓으면 아주 소득이 적지가 않다고요. 여러 가지로 편리를 많이 봅니다. 파출소 하급 순경들에게 우리가 잘 친해놓으면 연말연초에 좀 마음을 조금만 써 주놓으면 일년 내내 잘 지켜줘요. 그런 이들이 이 시대에 실질적인 화엄성중이 아닐까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그래 생각하고 연말연초에 주변에 있는 하급관리들 이런 이들에게 마음을 써주었으면 하는 그런 생각도 합니다.   

 

옹호성중혜감명(擁護聖衆慧鑑明) 사주인사일념지(四洲人事一念知) 애민중생여적자(哀愍衆生如赤子) 시고아금공경례(是 故俄今恭敬禮)


사천왕문의 주련으로도 많이 쓰죠.

옹호성중혜감명(擁護聖衆慧鑑明) 

우리를 옹호해주는 성인의 무리들은 지혜로써 아주 거울 비치듯이  밝게 바라본다. 얼마나 밝게 비쳐서 살피는고. 하면  


사주인사일념지(四洲人事一念知) 

동서남북 사방의 인간의 일들을 사방에서 일어나는 모든 인간의 일들을 한손에 다 알아본다.


애민중생여적자(哀愍衆生如赤子)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기를 마치 가난아기 생각하듯이 그렇게 한다. 가난아기는 차고 더운 것도 잘 분별 못 하죠. 물에 빠질 수도 있고 불에 데일수도 있습니다. 그런 분별 못하기 때문에 부모가 늘 보살펴줘요. 한순간도 눈을 떼면 안 됩니다. 무엇을 만질지 어디 가서 부딪칠지, 어디 가서 넘어질지 모르지 않습니까? 성중들은 늘 우리들을 그렇게 애민이 여기고 있다 이런 말이죠.


시고아금공경례(是 故俄今恭敬禮)

그래서 내가 지금 공경하고 예배를 드립니다.

아무리 나이가 많다 하더라도 모든 주변의 여건들, 주변의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물들 이런 것들에 의해서 이렇게 우리가 살려지고 있으니까 그야말로 우리는 갓난아기나 다를 바가 없죠. 언제나 가난아기입니다.

그러니까 주의하고 조심하고 늘 조화를 이루려고 하고 늘 받들어 섬기고 나아가서 부처님처럼 받들어 섬기고 사람에게 불공하는 것이 제일 효과도 빠르고 영험도 있고요. 제일 좋습니다. 사람을 부처님으로 모시지 않고 어디 뭐 영험 있다고 하는 장소에 이상하게 생긴 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그렇게 염화실에서 공부하시는 분들은 좀 그렇게 않았으면 좋을 것 같아요. 불교를 제대로 몰라서 이제 그런 일들이 벌어집니다.


이렇게 해서 오늘은 우리나라 불교의 시원에 가까운 신라시대 화엄사상을 근거로 해서 우리나라의 불교가 자리를 잡게 되서 오늘날 우리 예불에도 화엄성중을 모시고 화엄성중에게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써 큰 법당 예배를 마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런 말씀과 화엄성중의 보편적인 이해, 올바른 이해를 말씀을 드렸고 그리고 신중단의 예배문도 간략히 소개를 드렸습니다.

오늘은 화엄성중에께 예배를 드리는 것을 공부 했습니다.

오늘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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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중단예불 제5강 정리:인터넷전법도량 염화실 녹취전법행자 자혜성 〕  

     

 

출처 : 염화실
글쓴이 : 미륵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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