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스크랩] ★불교 이해★불교의 상징물

똥하 2009. 4. 19. 18:49

 

 

▒불교의 상징물


■ 만(卍)자


불교 또는 사찰의 상징마크로 쓰이는 卍자는 길상만덕(吉祥萬德)을 뜻한다. 한자로는 만복을 상징하는 ‘萬’으로 표기한다. 태양의 방광을 본뜬 표시로 태양숭배를 하던 아리안족이 사용했다는 卍자는 예로부터각지에서 쓰였다. 그리스 정교에서는 장식으로, 아메리카인디언은 방향이나 바람의 상징으로, 중국에서는 난간 무늬로 사용했다. 이렇게 볼 때 만자 표지는 어떤 소망의 상징적 기호로 사용된 것이 분명하다.


역사적으로 이 표지가 불교와 최초의 관계를 맺는 것은<수행본기경>에 나오는 부처님의 성도설화에서이다. 이에 따르면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서 수도할 때 풀방석을 깔고 앉았는데 방석재료인 풀의 끝이 卍자 모양의 길상초였다. 그 후 이 표지는 불교를 상징하는 기호가 됐다. 대승불교시대의 불교인들은 부처님이 보통 사람과 다른 32가지의 특징(32相)이 있다고 믿었다. 그 중 하나가 가슴. 수족. 두발. 허리에 이 만자 덕상이 있다는 것이다. 불상을 조성하면서 가슴에 卍자를 그려 넣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卍자의 가운데 교차점을 떼어내면 영어의 L자가 4개 나온다. 현대의 서구 불교학자들은 이 4개의 L자를 생명(Life), 광명(Light). 자비(Love), 자유(Liberty)를 뜻하는 머리글자로 해석하고 있다. 미국의 불자들은 이 해석에 따라 만자를 생활지침으로 삼았으나 2차대전 후 나치를 연상시킨다 하여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 불교기(佛敎旗)


청. 황. 적. 백. 주황 등 5색을 가로 세로로 배치한 불교기는 부처님의 상호(相)好)와 가르침을 상징한다. 이 기는 가로 세로의 비율이 3:2이며 바탕의 5가지 색깔은 부처님의 상호를 의미한다. 가로로 그은 선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세로로 그은 선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영원히 변함없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이 같은 불교적 의미와 함께 불교기의 바탕색은 세계 인종의 색을 상징하고, 가로 세로선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사바에 널리 퍼져 영겁토록 인류가 화목하길 발원하는 자비를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다.


맨 위쪽과 세로의 첫번째 색인 청색은 마음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불법을 구하는 정근을 상징한다. 부처님의 모발색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두번째의 황색은 찬란한 부처님의 몸빛과 같이 변하지 않는 굳건한 마음을 나타낸다. 건강한 몸매에 확고부동한 부처님의 태도가 금강에 비유되는 이치와 같다. 세번째의 적색은 더운 피의 색깔로서 항상 쉬지 않고 열정적으로 정진에 힘쓸 것을 표현한 것이다. 네번째의 백색은 깨끗한 마음으로 온갖 번뇌를 맑게 하는 청정을 뜻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사자후를 할 때 보이신 치아의 색을 상징한다. 맑은 마음으로 온갖 악업과 번뇌의 괴로움을 물리쳐 청정세계를 가꾸자는 뜻이다. 마지막의 주황색은 부처님의 성체를 두른 가사색으로 온갖 유혹과 굴욕 그리고 수치스러움을 참고 견디며 성내지 않는 인내를 상징한다.


■ 법륜(法輪)


법륜은 범어 dharma-cakra의 번역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륜성왕의 윤보(輪寶)에 비유한 말이다. 전세계를 통솔하는 이상적인 제왕인 전륜성왕이 윤보로써 모든 적을 굴복시키듯이, 부처님이 교법으로 일체 중생의 번뇌를 제거하는 것을 법의 수레바퀴로 표현했다. 고대 경전에 의하면 법륜은 전륜성왕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전륜성왕은 숙세에 닦은 복덕으로 윤보를 얻는데, 성왕이 나아가는 곳에는 이 윤보가 앞에서 땅을 평평하게 하는 한편 적군을 굴복, 평정 시킨다고 한다.


또 수레바퀴가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굴러갈 수 있듯 부처님의 가르침 역시 어느 한 사람 어느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중생을 교화 하다는 듯에서 수레바퀴를 전법(傳法)의 상징 즉 법륜으로 채택했다. 진리의 수레바퀴 법륜은 초기교단에서는 부처님의 설법을 뜻하는 말로 사용했다. 그래서 부처님이 설법하시는 것을 전법륜(傳法輪)이라 하고 사르나트(녹야원)에서 다섯 비구에게 법을 설한 최초의 설법을 초전법륜이라고 부른다.




■ 불족상(佛足像)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족상을 숭배하는 풍습이 있다.
불족상은 부처님의 32상과 80종호의 한 부분으로 보통 사람과는 특별히 다른다는 점에서 자연히 숭앙의 대상이 됐다. 또 <법현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부처님께서 인연 깊은 마갈타국의 수도인 화씨성을 지나면서 남쪽에 있는 바위에다 발자국을 남겨 두시고 곧 열반에 드실 것을 예언하셨다.’하여 후대에 이를 새겨 받들어 경배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불자들이 불족상을 예배하는 이유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대 후계자인 가섭존자에게 두 발을 관 밖으로 내보이신 데 의의가 있다. 선종에서는 이를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법문인 삼처전심(三處傳心)의 끝이라 하여 귀중하게 여긴다.




우리가 불족을 숭배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불족은 중생을 보살피기 위해 동분서주한 부처님을 상징한다. 인도 사람들은 맨발로 걸어 다닌다. 부처님도 맨발로 다녔다. 자기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 다닌 맨발의 성자 부처님의 발길이 닿는 곳에는 항상 진리의 비가 내렸기 때문이다.


■ 3대 성수(三大聖樹)


3대 성수란 부처님의 탄생. 깨달음. 열반과 관계된 무우수. 보리수. 사라수 등 3종의 나무를 말한다. 무우수(無憂樹)는 부처님이 룸비니 동산의 이 나무 아래에서 탄생했으므로 탄생의 성수로 불리운다. 경전에 의하면 마야부인이 오른손으로 이 나뭇가지를 잡았을 때 오른쪽 옆구리로 부처님이 태어났다고 한다. 깨달음의 성수 보리수(菩提樹)는 본래 이름은 핍팔라 혹은 아슈바타인데 부처님이 이 나무 아래서 보리(깨달음)를 이루었다 하여 보리수가 된 것이다.


2천5백여 년 전 부처님이 정각을 이룬 보드가야(대탑뒤편)의 그 자리에는 여러 세대를 거친 손자뻘 되는 보리수가 무성한 가지를 펼치고 있다. 그 보리수 아래의 성도지에는 장방형 대리석에 연꽃무늬가 새겨진 금강보좌가 놓여 있다. 이 보리수와 금강보좌는 인도의 4대 성지로 꼽히는 보드가야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로 세계 불교도들의 숭앙을 받고 있다.


부처님의 열반을 상징하는 사라수(沙羅樹 또는 沙羅樹)는 부처님이 열반에 들었던 중인도의 쿠시나가라 부근에 번성했던 나무다. 부처님은 입멸 직전 사라나무 숲으로 들어가셔서 시자 아난다에게 두 그루의 사라수 사이에 누울 자리를 준비시킨 후 그 자리에 누웠다. 부처님은 이 사라수 아래서 ‘모든 것은 변천한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힘써 정진하라.’라고 하는 마지막 말씀을 남기고 위대했던 80년의 생애를 마쳤다. 부처님이 열반의 경지에 들었을 때 사라수에는 때아닌 꽃이 피어서 부처님의 몸 위로 꽃잎이 흩날렸다. 지금도 쿠시나가라의 열반당 앞에는 두 그루의 사라수가 커다란 타원형의 잎을 단 채 하늘높이 서 있다.

출처 : 양재클럽(Y-Club)
글쓴이 : 햇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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