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자료

[스크랩] 파자법(破字法)

똥하 2009. 4. 19. 18:09
파자법(破字法)


 

 

한 개의 글자를 부숴 여럿으로 나누거나, 역으로 여러 글자를 조합해 하나로 만들어

비밀스러운 뜻을 알아내는 것이 파자법이다.

한자 문화권 전반에 널리 퍼져 있는 일종의 암호 생산기술이다.

 

이미 중국 고대의 전국시대에 귀곡자(鬼谷子)라고 불린 한 기인이 만들어

사용했다 할 정도로 파자법의 연원은 깊다. 본디 뜻글자인 한자는 구성이 복잡하고

두 글자 이상이 뭉친 경우가 많아, 파자법이 생겨나기 쉬운 조건이다.

 

뜸뜬다는 ‘구(灸)’자만 해도, 위에는 오래라는 뜻의 ‘(久)’자가 있고

아래는 ‘불 화(火)’가 놓여 있다. 파자법으로 풀이해 보면, 사람이 불 위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이 바로 뜸이란 뜻이 된다.

 

어떤 사람에게서 나는 좀더 억지스러운 이야기도 들었다.

전통적으로 여성은 열여섯에 성인이 된다고 보았는데, 그것을 파자법으로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파과(破瓜) 즉 오이가 깨지는 해에 성년이 된다는 말이 있다. 여기엔 물론 초경이 시작된다는

상징적인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오이 과(瓜)자에 비밀이 숨어 있다 한다.

그 글자를 파자법으로 분석해 보면 여덟 팔(八)자 두 개가 겹친 것이란다.

요컨대 여자 나이 열여섯이면 성인이 되는 것이고, 천하절색 춘향이 이도령을 만난 것도

파과의 해였다는 주장이다.

파자법(破字法)이란 비밀 코드

비밀을 해독하거나 생산하는 데 파자법은 매우 유용했다.

그래서 예언서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정감록’을 읽다 보면 글귀를 있는 그대로 해석하기만 해선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이 때는 다른 사물에 빗댄 우의법(寓意法)이나 파자법(破字法)을 적용해야만

본래의 뜻을 대강 짐작이라도 할 수 있다.

“목자(木子) 장군의 칼이요, 주초(走肖)대부의 붓이로다. 비의(非衣) 군자가 품은 뜻은

다시 삼한의 서울을 정하는 일이다. 목자가 나라를 세우는 데 주초의 계략과 정기가 기틀을

마련할 지니.”(청구비결) 흔히 조선왕조의 건국을 예언한 것으로 풀이되는 구절이다.

목자(木子)는 곧 이(李)씨로 태조 이성계를 상징한다.

주초는 조(趙)씨, 비의(非衣)는 배(裵)씨를 파자한 것이다.

조선 개국공신들 가운데 마침 조준(趙浚·1346~1405)과 배극렴(裵克廉·1325~1392)이 포함돼 있어,

그들이 다름 아닌 ‘주초대부’와 ‘비의군자’로 비정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조선 개국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정도전이 비결에 언급돼 있지 않아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파자법이라면 위에 살핀 경우처럼 두 글자를 하나로 묶는 것이 상례다.

그러나 때로는 훨씬 복잡한 양상을 띠기도 한다. 파자법의 압권을 ‘정감록’에서 찾아보자.

“선비(士者)는 관을 비뚜로 쓰며(橫冠) 신인(神人)이 옷을 벗고(脫衣) 주변을 달리다

몸을 기댄 채(走邊橫己) 성인의 이름에 여덟 팔자를 덧붙이면(聖諱加八), 계룡산 바위가

희게 변하고 청포의 대나무가 하얗게 되며 (중략) 대중화와 소중화가 함께 망하리라.”(감결)

계룡산 바위가 변하는 것부터 시작해 중국(대중화)과 한국(소중화)이 일시에 망하고 만다는

예언이다. 글의 구조상 이런 일대격변을 일으키는 조건은 밑줄 친 부분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읽어 봐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술사들은 수수께끼처럼 여겨지는 밑줄 친 대목을 파자법으로 풀어냈다.

우선 ‘선비(士者)는 관을 비뚜로 쓰며(橫冠)’를 사(士)의 머리 부분에 빗금을 그어 얹은 임(壬)자로

간주했다.‘신인(神人)이 옷을 벗고(脫衣)’란 대목은 신(神)자에서 보일 시(示)변을 제거해

신(申)자로 해독했다. 요컨대 앞의 두 대목은 임신(壬申)년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어낸 것이다.

그 해에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그 아래 두 구절에서 해결돼야 했다.

술사들은 지혜를 짜냈다.‘주변을 달리다 몸을 기댄 채(走邊橫己)’는 주(走)변에 기(己)자를 더해

일어날 기(起)자로 해독했다. 마지막 구절인 ‘성인의 이름에 여덟 팔자를 덧붙이면(聖諱加八)’은

성인을 공자(孔子)로 보고 그 이름인 구(丘)자에 팔(八)을 합친 군사 병(兵)자로 풀었다.

두 대목을 서로 연결하면 기병(起兵) 즉, 군사를 일으킨다는 뜻이 된다.

임신년에 반란이 일어나면 온갖 징조가 뒤따라 일어나고 마침내 중국과 한국이 동시에 멸망하게

된다는 그야말로 엄청난 예언인 셈이다. 참고로, 청나라가 망한 것은 무신년(1911)의 일이었다.

조선왕조는 그보다 한 해 앞선 경술년(1910)에 사라졌으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셈이었다.

바로 이런 예언은 철종13년(1862) 전국 각지에서 이른바 임술민란이 일어나던 무렵 ‘감록’에

새로 등장한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임술년(1862)을 전후해 조선에는 국내외 정세에 상당한 식견을 지닌 술사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 가운데 누군가 ‘감록’을 고쳐 쓰면서 ‘임술기병’에 해당되는 구절을 파자법을 이용해

삽입했다고 믿어진다. 

따지고 보면 그 당시 중국의 사정도 무척 어수선했다.

1851년에 시작된 이른바 태평천국의 난이 10년가량 계속되다 가까스로 마무리된 처지였다.

난리는 일단 진정됐지만 중국을 압박해 들어오는 영국과 프랑스 등 서구 열강의 간섭이

만만치 않았다.

파자법의 명인들

고대부터 한국의 예언서에 파자법은 자주 등장했다.

고려태조 왕건의 등극을 예언한 것으로 유명한 ‘고경참’에도 신라를 가리키는 ‘사유(四維)’

즉 라(羅)자가 보인다.

고려 때도 이자겸이 발호하자 ‘목자위왕(木子爲王)’, 이씨가 왕이 된다는 예언이 한 때 유행했다.

조선 중종 때도 그와 흡사한 ‘주초위왕(走肖爲王)’ 즉, 조씨가 왕이 된다는 말이 퍼졌고,

그 바람에 개혁정치가 조광조가 희생됐다.

파자가 한국사회에 널리 유행하다 보니 점을 보는 사람들 중에도 파자법의 대가가 많았다.

아직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의 일이었다.

어느 날 그는 일부러 다 떨어진 옷을 몸에 걸친 채 수도 개성을 둘러보았다.

시내의 좁다란 어떤 골목에 발길을 들여놓았을 때 이성계는 한 노인이 점판을 벌려 놓은 것을

보았다. 마음속에 큰 야망을 품고 있던 이성계는 자신의 미래 운명을 점쳐 보기로 했다.

점치는 방법은 간단했다. 아무 글자나 가리키면 되는 것이었다.

이성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을 문(問)’ 자를 가리켰다.

그러자 노인은 혼비백산하며 이성계의 귀를 빌렸다.

“공은 반드시 이 나라의 대왕이 되실 운세입니다.”

노인은 몇 번씩이나 고개를 숙여 경하의 인사를 아뢰었다.

이성계가 선택한 글자를 파자해 보면 ‘임금 군(君)’ 자를 좌우로 벌려놓은 모양이었고,

그래서 노인은 이성계가 훗날 임금이 될 거라고 믿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이야기를 제대로 엿듣지는 못했으나, 뭔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본 길손이

하나 있었다. 이성계가 그곳을 떠나기가 무섭게 그 역시 노인에게 다가가 손가락으로

같은 글자를 짚었다. 노인은 역시 문(問)자를 파자했는데 결과가 아주 딴판이었다.

‘문문(門門) 개구(開口)라!’ 당신은 아무래도 남의 문 앞을 돌아다니며 밥을 빌어먹을 팔자인

모양이오. 부디 절약에 힘써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시오. 이쯤 되면 파자법도 어렵기 그지없다.

같은 글자도 경우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파자법의 명인들 가운데는 후세에 이름이 전해진 경우도 있다.

조선 중기의 뛰어난 예언가 남사고가 그랬다. 그는 여러 곳의 길지(吉地)를 점쳐 놓기도 했지만,

파자법을 통해 동서분당(東西分黨)이며 그 뒤의 정치적 추이를 정확히 예언했다.

그의 예언대로 뒷날 동인들은 주로 낙산(駱山) 밑에 거주했고, 서인들은 안산(鞍山) 아래 터를 잡았다.

낙산이라면 북악산, 인왕산, 남산과 더불어 한양의 내사산(內四山)이요,

주산인 북악산의 좌청룡에 해당한다. 오늘날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 일대를 가리킨다.

그런데 낙산(駱山)의 낙자(駱字)는 마(馬)와 각(各)을 합친 글자이다.

말(馬)을 타고 가다 떨어(各)진 형상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분당되고 나서 초기에는 동인들이

국운을 좌지우지하게 되지만 나중에는 제각각(各各)으로 갈라서게 될 운명이라 했다.

장차 서인의 운명을 상징한 안산(鞍山)은 그 뜻이 사뭇 달랐다.

안(鞍)자는 파자로 뜯어볼 때 바꿀 혁(革)자에 편안 안(安)자를 더한 것이다.

혁명 즉, 반정을 일으킨 뒤 세력이 안정되어 권력을 오래 유지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서인들이 집권한 것은 인조반정 때인데 그 뒤 잠깐씩 몇 차례 실권(失權)한 적이 있긴 해도

조선 말까지 모든 권력이 그들의 수중에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산은 서울시 서대문구에 있다.

남사고의 예언이 들어맞긴 했지만, 지나치게 과장되어선 곤란하다.

그는 인조반정을 언급한 적도 없었고, 서인 역시 노론과 소론으로 분당된다고 말한 적도 없었다.

도무지 누군들 미래의 일을 제 손금 보듯 할 수가 있을 것인가.

‘격암유록’과 현대의 파자법

어쨌든 후대의 술사들은 남사고의 예언 능력을 과대평가했다.

그런 분위기가 팽배해 최근에는 그가 저술했다는 ‘격암유록’이란 예언서가 출현해

크게 주목받기도 했다. 이 예언서는 ‘정감록’의 상이한 내용을 합성한 위에, 몇 가지 다른 요소까지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판 정감록인 셈인데,‘격암유록’에도 파자법의 자취가 완연하다.

간단한 예를 몇 개만 들어보겠다. 여러 사람들이 이미 밝힌 대로

‘격암유록’에 보이는 ‘추대읍(酋大邑)’은 세 글자를 연이은 정(鄭)자에 해당한다.

‘시구(矢口)’는 지(知)자이며,‘일팔간팔(一八干八)’은 금(金)자이다.

‘여자(女子)’는 호(好)자,‘팔력시월이인(八力十月二八)’은 십승(十勝)으로 풀이된다.

이런 예는 부지기수라, 일일이 말할 필요도 없을 지경이다.

‘격암유록’에는 현대 한국의 운명이 예언돼 있기도 하다.

파자법으로 풀어야만 되는 대목도 여럿이다. 그 하나는 6·25전쟁에 관한 것이다.

‘격암유록’에는 백호(白虎)에 전쟁이 일어난다 했다.

백호란 호랑이해이면서 흰색에 해당되는 경(庚)년 즉,1950년에 전쟁이 일어난다고 예언돼 있다.

이때 “난을 피하려면 팔금산(八金山)으로 가라 했다.”

팔금산은 파자법을 적용해 보면 영락없는 부산(釜山)이다.6·25전쟁 때 부산은 안전했다.

국토가 장차 38선을 경계삼아 양분된다는 예언도 이미 나와 있었다.

‘십선반팔삼팔(十線反八三八) 양호역시삼팔(兩戶亦是三八) 무주주점삼팔(無酒酒店三八)’이라 했다.

한 대목씩 차례로 살피면,“십선반팔삼팔(十線反八三八)”은 십(十)에 팔(八)을 더하면 목(木)이 되고

그 옆에 반(反)을 나란히 놓으면 板(판)자가 되는데 그것이 38선에 있다는 것이다.

“양호역시삼팔(兩戶亦是三八)”이란 호(戶)를 좌우 양쪽에 늘어놓아 門(문)이 되는데,

그 역시 38선상에 위치한다는 것이다.

“무주주점삼팔(無酒酒店三八)”은 주점(酒店)은 주점인데 술(酒)이 없으므로 店(점)이 된다.

끝으로,“삼자각자삼팔(三字各字三八)”이라 했다.

위에서 만들어진 석자 즉, 판문점(板門店)은 각기 8획이며 역시 38선에 위치한다고 했다.

이 예언이 1953년 휴전 성립 이전에 나왔다면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격암유록’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목인비거후(木人飛去後) 대인산조비래(待人山鳥飛來)’란 구절도 있다.

혹자는 파자법을 동원해 이것을 한국현대정치사의 일면으로 해석한다.

‘목인(木人)’은 박(朴)씨를 뜻한다. 문제는 그가 ‘비거후(飛去)’ 즉, 죽은 뒤의 일이다.

‘인산조(人山鳥)’가 기다렸다 날아온다(飛來)고 했다.‘인산조(人山鳥)’는 최(崔)씨라 한다.

‘격암유록’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될 사항이 있다.

파자를 해보면 기독교적인 용어가 많이 나온다는 점이다.

가령 ‘육각팔인(六角八人)’은 천화(天火),‘인언일대십팔촌(人言一大十八村)’은 신천촌(信天村)

또는 신앙촌에 짝한다.

‘일양형(一羊兄)’은 한 마리(一) 으뜸가는(兄) 어린 양(羊)으로 해석되기 일쑤다.

그런가 하면,‘활아자수(活我者誰) 삼인일석(三人一夕)이라.’ 했다.

삼인일석(三人一夕)이 나를 살린다고 해석되는데, 삼인일석(三人一夕)이 문제다.

사람들은 이것을 파자법으로 풀어 닦을 수(修)로 본다. 종교적 수행이란 것이다.

기독교적 취향이 강한 사람들은 ‘정감록’에 빈번히 등장하는 ‘궁궁(弓弓)’과 ‘을을(乙乙)’ 같은

오래된 용어까지 파자법을 응용해 재해석한다.

전자의 경우 궁(弓)자 두 개를 마주 바라보게 돌려놓으면 아(亞)자가 되는데 그 가운데

십자가(十)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후자도 마찬가지다. 을을(乙乙)의 경우 을(乙)자 두 개를 서로 겹쳐 놓으면 만(卍)자가 되어

불교를 상징하는 것 같아 뵈지만 실은 그것이 아니라 한다.

만(卍)자의 복판을 꿰뚫는 두 개의 선은 다름 아닌 십자가(十)라는 것이다.

따라서 ‘격암유록’이 제시하는 구원은 십자가를 찾는 데 있다는 것이다.

현대 한국사회는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기독교화되었고, 그에 따라 ‘정감록’ 역시

기독교적인 색채를 더하게 되었다.

‘격암유록’은 1970년대의 위작이라는 주장도 있다. 맞는 말 같다.

우선 이 예언서에는 ‘철학(哲學)’,‘공산(共産)’, 그리고 ‘원자(原子)’ 따위의 현대적인 용어가 등장한다.

‘서학(西學)’이니 ‘동학(東學)’ 같은 낱말도 있고, 파자법을 가지고 읽어보면 ‘박태선(朴泰善)’이란

이름도 나온다.

박태선 장로는 1970년대 후반 신앙촌 운동을 벌였다. ‘격암유록’은 그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김삿갓과 파자법

파자법은 조선후기에 이르러 문학에까지 영향력을 확대시켰다.

그 시기를 대표하는 방랑시인 김삿갓 김병연은 파자법의 또 다른 대가였다.

그는 전국을 방랑하며 수많은 설화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말끝마다 김삿갓은 파자(破字)와 동음이의어를 빌려 사회적 모순과 일상을 노골적으로 풍자했고,

민중들로부터 아낌없이 갈채를 받았다.

한 번은 방랑시인 김삿갓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

그 날도 어디를 가다 날이 저물어 어떤 집에 머물렀다.

다음날 아침, 이미 해가 중천에 솟았는데도 아침상이 들어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뜨락에서 안주인이 “‘인량차팔(人良且八)’ 하고 전혀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그러자 바깥주인은 태연한 표정으로 ‘월월산산(月月山山)!’이라고 대꾸하는 것이었다.

허기진 배를 끌어안고 밥상이 들어오기만 기다리고 있던 김삿갓은 ‘그게 무슨 뜻일까.´ 하고

잠시 궁리하였다. 그러더니만 김삿갓은 담뱃대로 재떨이를 두어 차례 후려쳤다.

“견자화중(犬者禾重)아 정구죽요(丁口竹夭)로다!”라고 크게 외치며 김삿갓은 네 활개를 저으며

길을 떠나는 것이었다.

세 사람 사이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인량(人良)’을 위아래로 붙이면 밥 식(食)이 되고,‘차팔(且八)은 갖출 구(具)자가 된다.

안주인은 “식사를 준비할까요?” 하고 물었던 것이다.

그에 대해 바깥주인은 ‘월월(月月)’ 곧 친구 붕(朋)자에 ‘산산(山山)’이라 했다.

메 산(山) 두 개를 포개 놓으면 나갈 출(出)자가 된다. 요컨대 “이 친구가 떠나거든!” 밥을 먹자고

대꾸한 것이었다. 지독한 구두쇠부부요, 교활한 암호였다.

그러나 김삿갓은 문자 속이 밝기로 세상에 으뜸이었다. 대뜸 그들의 암호를 해독했고,

이어서 ‘저종(猪種·돼지 종자들)아, 가소(可笑)롭다!”며 후딱 그 집을 나섰다.

김삿갓에 이르러 파자법은 점과 예언이란 전통적인 범주를 초월해,

오락적인 기능을 한껏 발휘하게 되었다.

문화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 꿈틀거린다.

 

(백승종 / 푸른역사연구소장, 서울신문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중에서)

 


 

 

 

 

 

 

·

 

 

 

 

 

 

 

 

 

 

**     

출처 : 양재클럽(Y-Club)
글쓴이 : 카안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