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충정왕의 짧은 치세와 비참한 최후
(1338~1352년, 재위기간 : 1349년 7월~1351년 10월, 2년 3개월)
충정왕(忠定王)은 충혜왕의 둘째 아들이자 희비 윤씨 소생으로 1338년에 태어났으며, 이름은 저, 몽고식 이름은 미사감타아지다. 1348년 4월에 경창부원군에 봉해졌으며, 12월에 충목왕이 죽자 덕녕공주가 덕성부원군 기철과 정승왕후에게 서무를 대행시키고 충목왕의 죽음을 원에 알렸다. 부고를 받은 원의 순제는 이듬해 2월에 왕자 저를 입조하라고 했다.
하지만 고려 조정 내에서는 왕자 저를 왕으로 세우는 것을 반대하는 무리들이 많았다. 그래서 노정, 손수관, 이군해, 민평, 최유, 윤시우 등이 그를 데리고 연경으로 떠나려 하자 전법관들이 회의를 소집하여 그들을 저지하려 하였다. 하지만 원나라 사신의 힘에 밀린 전법관들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결과 연경에 도착한 왕자 저는 그해 5월에 순제로부터 고려 제30대 왕에 책봉되어 7월에 왕위에 올랐다. 이 때 그의 나이 12세였다. 이 때부터 덕녕공주와 충정왕의 모후 윤씨 사이에 치열한 세력다툼이 전개되었다. 덕녕공주는 정동행성을 기반으로 세력을 확장하였고, 희비 윤씨가 왕과 그 측근들을 중심으로 세력을 펴 1349년 8월에 그녀를 위해 경순부가 설치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이들 두 사람의 세력다툼으로 정국이 어수선한 가운데 1350년부터 경상도 일원을 중심으로 왜구가 기승을 부렸다.
1350년 2월에는 왜구가 고성, 죽말, 거제 등지에 나타나 노략질을 일삼자 고려 조정은 합포천호 최선과 도령 양관 등에게 군사를 내주어 3백여 명의 왜구를 죽였다. 그러나 그때부터 왜구의 침입이 더욱 심해져 3월에는 연성군 이권을 경상ㆍ전라도 도지휘사로, 첨의참리 유탁을 전라ㆍ양광도 도순문사로 보내 왜구를 방어하도록 하였다. 이에 왜구들은 4월에 순천부에 침입하여 남원, 구례, 영광, 장흥 등지에 있는 운수선을 약탈하는 등 민심을 흉흉하게 하였다. 또 6월에는 왜선 20척이 합포에 침입하여 그곳의 병영 및 고성, 회원 등의 민가를 불살랐다.
왜구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11월에는 동래군을 침입하였고, 이듬해 8월에는 130여 척의 배를 거느리고 자연도와 삼목도에 침입하여 인가를 거의 불사르고 백성들을 잡아갔다.
하지만 고려 조정은 속수무책이었다. 관리들은 출전 명령을 내려도 듣지 않고 오히려 왜구를 피해 피난을 떠나는 마당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국이 왜구로 인해 뒤숭숭한 가운데 원나라 순제는 고려 조정을 안정시키기 위해 충정왕을 폐위시키고 강릉대군 왕기를 왕으로 세웠다. 충정왕은 강화도에 유배되고 왕기는 1351년 10월에 원의 책봉을 받아 왕위에 올랐으니 그가 공민왕이다.
강화도에 유배된 그는 몇 개월을 그곳에서 지내다가 이듬해 3월 공민왕에 의해 15세의 어린 나이로 독살되었다. 능은 총릉이며 남긴 가족은 없었다. 실록은 1385년에 ‘충혜왕실록’, ‘충목왕실록’과 함께 편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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