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스크랩] 법성게 <2> - 종범스님

똥하 2015. 7. 24. 07:01

 

 

 

 

 

 

 

 

法性圓融無二相 (법성원융무이상) 諸法不動本來寂 (제법부동본래적)

無名無相絶一切 (무명무상절일체)   證智所知非餘境 (증지소지비여경)

眞性甚深極微妙 (진성심심극미묘)   不守自性隨緣成 (불수자성수연성)

 一中一切多中一 (일중일체다중일一卽一切多卽一 (일즉일체다즉일)

 一微塵中含十方 (일미진중함시방一切塵中亦如是 (일체진중역여시)

無量遠劫卽一念 (무량원겁즉일념)   一念卽是無量劫 (일념즉시무량겁)

九世十世互相卽 (구세십세호상즉)   仍不雜亂隔別成 (잉불잡난격별성)

初發心時便正覺 (초발심시변정각)   生死般若常共和 (생사열반상공화)

理事冥然無分別 (이사명연무분별)   十佛普賢大人境 (십불보현대인경)

能仁海印三昧中 (능인해인삼매중)   繁出如意不思議 (번출여의불사의)

雨寶益生滿虛空 (우보익생만허공)   衆生隨器得利益 (중생수기득이익)

是故行者還本際 (시고행자환본제)   叵息妄想必不得 (파식망상필부득)

無緣善巧捉如意 (무연선교착여의)   歸家隨分得資糧 (귀가수분득자량)

以陀羅尼無盡寶 (이다라니무진보)   莊嚴法界寬寶殿 (장엄법계실보전)

窮坐實際中道床 (궁좌실제중도상)   舊來不動名爲佛 (구래부동명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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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수 많은 구름이 떠 있는데 일어난 거죠. 그런데 그 근본 물의 습성으로 보면 구름이 뜨나 안 뜨나 그대로다. 이게 성으로 보면 그대로고. 법으로 보면 나온 건데.

법은 성을 떠나지 않고 있기 때문에 本來寂본래적이다. 이게 아주 철학적인 세계다.

의상대사가 <화엄경>을 보고 우주의 원리를 깨친 내용이다.

 

無名無相무명무상. 그러면 그것이 뭐냐?

움직이면서도 근본으로 보면 안 움직인 거고. 안 움직인 거면서도 또 움직인 건데. 그것을 뭐라 그러냐?

無名無相絶一切무명무상절일체라.

뭐라고 이름 지을 수가 없다. 그게 무명이다.

이름 지을 수 없고 모양을 그려낼 수가 없어. 그게 無相무상이다.

이게 붉은것도 아니고 흰것도 아니고. 그림을 그릴 수가 없어. 이름 지을 수 없고 모양을 그릴 수가 없어서 絶一切절일체라. 어떠한 이름이나 어떠한 모양도 딱 들어맞는 게 없어. 일체가 다 끊어졌다. 그려낼 수도 없고 이름 붙일 수가 없다. 이게 絶一切절일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아느냐?

 

證智所知非餘境증지소지비여경이라.

증득한 지혜, 체험된 지혜, 그게 證智증지이다.

깨달은 지혜. 이 깨닫고 삼매에 들면은 생각이 변해서 지혜가 된다. 우리는 생각으로 살아가는데. 공부를 많이 하면 지혜로 살아간다. 생각이라고 하는 건 엉뚱하다. 좋은 사람을 나쁘게 생각할 수도 있고, 나쁜 사람을 좋게 생각할 수도 있고, 아주 이상하다. 그런데 지혜라고 하는 건 좋은 건 좋게 딱 보인다. 보는 게 지혜이다. 나쁜 건 나쁘게 딱 보이고. 그러니까 이 지혜는 미리 생각하지를 않는다. 생각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딱 보는 거다. 그래서 지혜가 있으면 어디를 가든지 아주 자유자제 적제적소에 잘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생각이 앞서면 뭐가 앞에 나타나도 생각 때문에 멍하니 구덩이에 빠지기도 하고 전차에 받치기도 하고 이런다. 이게 생각은 현상을 오히려 가로막는다. 아주 이상하다.

 

현상은 많이 변했는데 그걸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하고. 생각에 빠져있으면 안 맞는다. 금년 대학 입시시험에 문화지체현상이라는게 있었는데. 가령 옛날에 없던 놀이가 전자오락이라든지. 이런 놀이가 많이 개발이 됐는데. 그 놀이를 놀 줄 모르는 사람이 많이 있다. 골프 치는 것도 옛날에 없던 거다. 골프도 못치고. 운전도 못하고. 여러 가지 놀이. 화투를 쳐도 옛날에는 민화투라 그래가지고 간단한데. 요즘은 고스톱도 어느시 고스톱해서 희안하고. 이런 게 많단 말이지. 그게 개발은 됐는데 못 배워서 못하는 것을 보고 뭐라 그러느냐? 이게 문제다. 정답이 뭔가 하면 문화지체현상이다. 문화가 이만큼 개발됐는데 내가 못 따라가서 지체가 되는거요. (더딜 , 막힐 ). 문화遲滯지체현상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남편지체현상이라는게 있는데. 부인은 옛날 할머니 할아버지 때의 부인 모습이 아니고 지금 많이 개발되고 변화되어진 부인하고 사는데. 그 부인에 대한 생각은 옛날 부인을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가지고 변화되어진 부인을 못 따라간다. 그래서 부인들이 뭐라뭐라 하면 까불지 마라 그러고. 또 뭐라뭐라 그러면 손 올라가고. 이런 게 남편지체현상이다. 부인은 저만큼 컸는데 남편이 지체해가지고 못 따라간다. 그런가 하면 자녀지체현상. 자녀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저 만큼 가 있는데. 만날 어릴 때 품에 안고 그 보호하던 그때만 생각해가지고. 이래라 저래라 어째라. 말 안 듣죠. 해 봐야. 일찍 들어와라 한다고 일찍 들어옵니까? 천만의 말씀이지. 그래서 뭘 못 따라 가는 게 있다. 그럼 왜 못 따라 가겠는가? 근본적으로. 생각에 얽매여 있고 지혜가 안 나타나서 그런 거에요.

 

그럼 지혜가 있으면 어찌 되는가? 탁 보면은 과거건 생각을 안하고 현재 것을 능동적으로 처리를 하는 게 이게 지혜이다. 그런데 인간은 꼭 생각을 하게 된다. 어릴 때 세월은 이미 가 버렸는데 어릴 때 생각 자꾸 하고 있어요. 이게 아주 지체현상으로서 묘한거다. 생각은 소용없는 거다. 현재에 어떠냐? 그 현재에 알맞게끔 이렇게 하는 거다. 그런데 이런 화엄법성에 대한 내용도 생각을 가지곤 안 보인다. 이렇다 저렇다 아무리 해봐야. 생각을 가지곤 안 보인다. 논리라는 건 뭐냐? 논리라고 하는 건 생각을 정리해 놓은 것이 논리이다. 생각을 정리하면 논리가 된다. 그런데 논리는 진리가 아니다. 진리는 지혜로서 발견되어진 세계가 진리다.

 

논리는 맞는데 현실은 안 맞는 게 그게 차이점이 그거다. 지혜로 보면 보이는데 생각으로 따지니까 이게 들어오지를 않는다. 그래서 논리하고 지혜하고는 다르다. 진리는 지혜로서 깨달아 지는 것이지 생각으로 알아지는 건 아니다하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證智所知非餘境증지소지비여경. 法性圓融無二相법성원융무이상을 무엇으로 아느냐?

증득한 지혜. 깨달은 지혜로서 알 수 있는 내용이지. 이게 所知소지다. 證智증지로서 알바요. 알 수 있는 내용이요. 非餘境비여경이라. 다른 방법은 안 통한다. 이게 非餘境비여경이다. 나머지 경계가 아니다. 이 말은 다른 방법으로는 안 통한다 이 말이다.

 

그런데 眞性진성은 甚深심심하야 極微妙극미묘하니

法性법성의 내용을 眞性진성이라 그런다. 法性법성을 두 번 쓰기 뭐하니까 眞性진성이라 그랬는데.

法性법성의 참 생명은 심히 깊어서 지극히 미묘하니

不守自性隨緣成불수자성수연성이다.

自性자성을 지키지 아니하고 인연따라 이루어진다. 이게

不守自性隨緣成불수자성수연성인데 이걸 인연법이라 그런다. 불교에서 인연법. 하나의 모습을 지키는 게 아니고 인연 따라서 자꾸 이루어진다. 인연 따라서 이루어지다 보니까

 

一中一切多中一일중일체다중일이요 一卽一切多卽一일즉일체다즉일이다. 그게

不守自性隨緣成불수자성수연성하는 것을 여기서 설명하는거다. 인연따라서 이루어지니까.

하나 속에 一切일체가 있고 또 一切일체 속에 하나가 있다. 이게 多中一다중일이다.

하나가 곧 모든 것이고 모든 것이 곧 하나다. 이게 多卽一다즉일이다. 그럼 이게 뭐냐? 의상스님 같은 경우는

10전법에다 비유했는데 一卽一切多卽一일중일체다즉일.

1전자리 동전이 10개가 있다. 10전은 1전을 떠나서 있는 게 아니다. 그렇죠. 1전 없으면 10전이 안되니까. 그것이 바로 10전은 1전속에 있다. 이것이 一中一切일중일체라는 것이다. 1전 없으면 10전이 안되니까. 그래서 10전은 바로 1전 안에 있다. 그리고 또 일전이 없으면 10전이 안 된다. 다중에 10전속에 또 1전이다.

 

인연 따라서 같은 10전이라도 제일 첫 번에 놓여진 순서는 1전이 되고, 두 번째 놓여진 건 2전이 되고, 3번째 놓여진 건 3전이 되고. 마지막에 놓여진 건 제10전이 된다. 같은 1전인데. 같은 1전인데 어떤 건 3전이고 어떤 건 5전이고 어떤 건 왜 10전이냐 이거다. 그걸 隨緣成수연성이라 한다. 인연 따라서 셋째 자리에 놓여지면 3, 다섯째 자리에 놓여지면 5. 거 묘하다. 그게 隨緣成수연성이다. 별거아닌거다. 같은 사람인데 어디에 놓여지느냐에 따라서 남편한테 놓여지면 아내가 되고, 아이들 위에 놓여지면 어머니가 되고, 또 시부모에게 놓여지면 며느리가 되는 거다. 인연 따라서. 2전 위에 놓여지면 3전이요. 9전위에 놓여지면 10전이다. 이게 隨緣成수연성이다. 그런데 어디에 놓여지던지 하나는 전체 속에 하나지, 하나 속에 하나가 아니다.

 

또 전체는 하나로 된 전체지 하나를 떠난 전체가 없다. 이것이 <화엄경> 大方廣대방광이라는 거다. 전체 없는 부분이 없고 부분 없는 전체가 없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다 전체 속에서 한 몫을 한다. 이게 화엄사상이다. 1전이라도 10전속에 1전이다. 자기가 없으면 10전이 안 된다. 그러니까 하나로만 보면 1전인데, 10전을 만드는 1전이다. 이게 一中一切多中一일중일체다중일 一卽一切多卽一일즉일체다즉일이다. 동전 한 잎만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 한 잎에 들어서 10전을 만든다. 이러니까 그 한 잎은 10전 속에 나타난 일전이다. 10전을 만드는 1전으로서 중요한 것이다. 이래가지고 화엄사상은 어디서 무얼 하든지 다 전체 속에 하나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아주 떳떳한 마음으로 큰 몫을 하고 있다.

 

이런 의식을 가지고 살게한다. 이게 화엄사상이다. 이걸 隨緣成수연성이라 한다. 이것이 바로 法性圓融無二법성원융무이라는 것이다. 圓融無二원융무이. 화엄사상을 잘하면 이렇게 어느 경우에든지 자기가 큰 속에 하나의 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이런 자부심을 가지고 떳떳하게 살 수 있는 게 화엄사상이다. 1전 없으면 10전이 어떻게 되나? 그러니까 형상 하나로 보면 나는 1전이지만 나는 10전이다. 이러한 생각을 갖게 하는게 화엄진리다. 圓融無二원융무이다. 아주 중요하다. 하나가 곧 일체요, 많은 것이 곧 하나다.

 

더 나아가서는

一微塵中일미진중에 含十方함시방이요.

一切塵中亦如是일체진중역여시라.

一微일진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적은 그 세계를 微塵미진이라 한다. (가늘 , 티끌 ). 티끌 중에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 티끌 그걸 微塵미진이라 한다. 그런데 그 微塵미진 속에 온 우주가 다 들었다. 이게 시방을 포함하고 이게 一微塵中含十方일미진중함시방이다.

一切塵中亦如是일체진중역여시라 하면 어떤 특별한 한 티끌만 그런 게 아니라 一切塵中일체진중 모든 티끌속도 다 이와 같다. 이건 뭐냐? 微塵미진이 되는 것도 하나의 인연법으로 微塵미진이 되고, 十方시방이 되는 것도 하나의 인연법으로 되기 때문에 微塵미진을 떠나면 十方시방도 없고, 十方시방이 떠나서 微塵미진이 없다. 그래서 하나의 티끌속에 우주가 다 들어있고, 우주속에 티끌이 다 들어있다라고 보는 것이

一微塵中含十方일미진중함시방. 이런 사상이다.

一中一切多中一일중일체다중일이라고 하는 것이 다시 더 광범위하게 표현된 그런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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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도 마찬가지다. 그 다음에는 시간이다.

無量遠劫무량원겁이 卽一念즉일념이다.

一念卽是無量劫일념즉시무량겁이다.

九世十世互相卽구세십세호상즉

仍不雜亂隔別成잉불잡란격별성이라.

遠劫원겁이다. 이 말은 오랜 겁수. 겁이라는 것은 하늘과 땅이 한 번 생겼다 없어지는 시간을 겁이라 한다. 그러니까 시간을 재는 단위 중에 가장 오랜 시간을 겁이라 한다. 그러면 一念일념이라 하는 것은 생각이라고 하는 마음에 대한 용어가 아니고 인도말로 찰나라는 말이 있다. 찰나, 찰나를 번역 하면 염이 된다. 무량겁 일찰나 이런 뜻이다. 無量遠劫무량원겁이라. 헤아릴 수 도 없는 오랜 겁수가 오랜 겁의 세월이. , 一念일념이요 즉

일 찰나요. 無量遠劫무량원겁이 일찰나를 떠나서 있는 게 아니고. 이게 無量遠劫卽一念무량원겁즉일념이다.

 

一念卽是無量劫일념즉시무량겁이다. 일 찰나가 곧 무량겁이다. 시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일 찰나 속에 無量劫무량겁이 있고 無量劫무량겁 속에 일찰나가 있다. 일 찰나를 떠나서 無量劫무량겁이 없다. 우리가 단 하루를 살아도 부처님 大方廣佛대방광불에 대한 의미를 턱 허니 믿고 살 때 그게 영원하게 사는 거고. 억만년을 살아도

大方廣佛대방광불에 대한 의미를 전혀 모르고 살면 얼마 못사는 거다. 이렇게 되는 거다. 그러니까

一念일념이 卽是즉시 無量劫무량겁이다 했을 때. 하루만 잘 살아도 억울할 게 없는 것이 大方廣佛대방광불 <화엄경>이다. 몇 만년을 살면 뭐하냐? 맨날 저녁에는 악몽에 시달리고 낮에는 근심걱정에 시달리고. 10년을 살면 10년 걱정하고, 100년을 살면 100년 걱정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거에 대해서는 말이 없고 얼마 못살고 죽는다면 억울하다 한다. 그럼 그 동안 산 건 어쩔래. 그건 말 안하지. 하루를 살아도 화업법게를 잘 알아가지고 大方廣佛대방광불로 살면 오래사는 거다. 그게

一念卽是無量劫일념즉시무량겁이다. 그런데

無量劫무량겁을 살아도 사는 게 뭔지, 죽는 게 뭔지, 만날 눈 뜨면 걱정하고 또 눈감으면 악몽 꾸고. 이렇게 살면 억만년을 살아도 그건 안 살은 거다. 그게 바로 無量遠劫卽一念무량원겁즉일념이다. 그러니까 아주 짧은 시간 안에도 영원한 시간이 있고 영원한 시간 안에도 짧은 시간이 있다. 그러니까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하지. 오래만 산다고 그게 영원한 것이 아니다. 이런 시간에 관한 문제 이런 것이 나와 있다.

 

九世十世구세십세가 互相卽호상즉이야. 仍不雜亂隔別成잉불잡란격별성이라.

九世구세 그러면 과거 현재 미래 3세가 있는데, 과거에 또 과거 현재 미래가 있고. 현재에 또 과거 현재 미래가 있고. 미래에 또 과거 현재 미래가 있어서 이걸 九世구세라 한다. 3세가 모두 3세씩 있으니까 九世구세가 되는 거다. 그리고 3세에 속하지 않는 마음의 시간 하나를 더 보태서 十世십세라 그런다. 九世十世구세십세가 서로 연결되어 있어 이걸 互相卽호상즉이라 한다. 서로 연결되어 있다. , 하는 건 서로 맞붙어 있다 이런 얘기다. 그러니까 현재 속에 九世구세가 다 들었고, 또 과거 속에도 九世구세가 있고. 이런걸 보면 내가 전생에 뭐였을까? 이게 참 어리석은 생각이다. 내세에 내가 뭐가 될까? 九世十世互相卽구세십세호상즉이라는 것만 알면 그 문제가 다 풀려. 내가 내세에 뭐 될까? 극락갈까 못갈까? 九世十世구세십세가 互相卽호상즉이니라 한 번 그래 봐라.

 

또 내가 전생에 뭐가 됬을까. 이런 말 하면 九世十世구세십세가 互相卽호상즉이니라 한번 그래 보라고. 그게 뭔 얘기냐? 현재 속에 과거도 다 포함이 된 것이다. 이게 그냥 뚝 떨어진 게 아니고 과거의 연장이다. 그리고 또 미래가 그냥 어디서 떨어지는 게 아니고 현재의 연장이다. 이게 互相卽호상즉이다. 그러니까 현재 하나만 봐도 과거도 알 수 있고, 미래도 알 수 있다. 이게 互相卽호상즉이다. 서로 연결되어 있다. 내일 뭐 좋은 일 없을까? 내일 좋기를 바라면서 오늘 엉뚱한 일 해봐요. 내일 좋을 리가 없거든. 병이 났다 그러면 오늘 좋을 리가 없다. 그러니까 이게 互相卽호상즉이다. 미래에 대한 이상한 생각을 갖지 말고 현재를 잘 꾸며가면은 현재가 바로 미래니까 걱정할 것 없다. 이것이 바로 圓融無碍원융무애요. 그 원인이 바로 결과다. 원인이 좋으면 결과도 좋은 것이다. 그러니까 이 화엄철학에서는 결과에 대한 근심은 조금도 안 한다. 원인이 바로 결과다. 현재가 좋으면 미래는 저절로 좋아진다. 현재 그 자체에 원인 그 자체만 중요시 여기지. 될까 안될까? 이런 적정은 전혀 안 하는 것이 화엄법계의 화엄의 윈리이다.

 

그러나 또 仍不雜亂隔別成잉불잡란격별성이다.

그렇지만 과거 현재가 전부 하나도 없느냐? 전부 뭉퉁그려져서 전혀 구분이 없느냐? 그렇지 않다.

잉불 이 말은 그러나 雜亂잡란치 아니해서 雜亂잡란. 섞이고 혼란하지 아니해서. 이게 仍不雜亂잉불잡란이다. 그러나 섞이고 혼란하지 아니해서 隔別成격별성이라. 隔別격별이란 말은 따로따로 이런 소리다. 구분이 되어 있다. (구분질 ) 간격이 되어있다. 간격은 구분이다. 그래서 구분이 되어서 따로따로 이루어 진다. 이게 격별성이다. 서로 물려있지만 또 구분은 있는 거다. 또 구분은 있지만 서로 물려있다. 그러니까 과거 속에도 미래가 있고 현재가 있고 현재 속에도 미래가 있는데 이게 또 구분은 구분대로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방은 방인데 작용이 다 통한다. 언제든지 대방광을 생각하면 된다. 전체 부분, 서로 통용. 뭐 이런 것이 바로 화엄법계이다.

 

그렇게 되니까 <화엄경>은

初發心時便正覺초발심시변정각이요 생사열반이 상공화라.

初發心時便正覺초발심시변정각이라.

처음 불심을 일으키는 그때가 바로 성불하는 때다. 이게 初發心時便正覺초발심시변정각이다.

一念일념이 즉시 無量遠무량겁이니까 그렇게 되는 거다. 자연이 그렇게 되는 거다. 이상한 세계에 들어와 있는거 같죠? 이상한 세계에. 이게 화엄법게다. 初發心時便正覺초발심시변정각, 불교에서는 화엄법계를 믿으니까

기도하는 자체가 소원성취하는 것이고 염불하는 그때 바로 극락가는거다. 참선하는 그때 도통하는거다.

이게 불교이다. 이게 圓融無二원융무이라는거다. 원인이 좋으면 결과는 저절로 좋은 것이다.

圓融無二相원융무이. 이게 初發心時便正覺초발심시변정각이다. 현재 하는 거 자체가 좋으면

결과는 저절로 좋으니까. 결과에 대해서 걱정을 한다든지 두려움은 조금도 안느끼는게 <화엄경>이다.  그리고

 

生死般若常共和생사열반이 상공화라.

생사라고 하는 것도 인연에서 나오는 것이고. 열반이라고 하는 것도 인연에서 나오는 건데.

깨달은 지혜를 보면 생사 속에 바로 열반이 있다 이런 얘기다. ,

열반 속에 생사가 있는데 깨달은 지혜를 가지고 보면은 생사가 생사가 아니고 열반이 열반이 아니더라.

생사 없는 열반이 없고 열반 없는 생사가 없다.

깨달은 사람이 보면 바로 그게 불국토. 깨닫지 못한 사람이 보면 그게 바로 지옥이다. 그러니까

 

生死般若생사열반이라는 것은

인연 따라서 중생에게 보여지는 것이지 열반세계가 따로 정해져 있고. ,

생사세계가 따로 정해져 있는 그런 것이 아닌 것을 常共和상공화라 한다.

항상 함께 이루어 진다. 함께 화합돼서 나타난다. 함께 나타난다. 이게 상공화다. 이런 것을

의상대사가 신바람 나게 불렀을 때, 거참 음악 치고도 좋은 음악이죠.

가사가 적어도 이 정도는 되야 된다. 노랫말이다. 노랫말이

生死般若常共和생사열반상공화라든지 初發心時便正覺초발심시변정각이든지 九世十世互相卽구세십세호상즉

이라든지. 이게 모두 <화엄경>에 나타나는 시간 관이요 현상 관이요 인생관이요 종교관이다. 이런 문제가 있다.

 

결국은 <화엄경>에서 이야기 하는 가장 중심적인 핵심은 調和조화의 생명을 이야기한다. 조화. 영원과 순간에 대한 조화. 부분과 전체에 대한 조화. 생사와 열반에 대한 조화. 또 큰 것과 작은 것에 대한 조화. 이 조화의 극치를 이루는 원리가 화엄철학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개혁과 조화인데 개혁주의 조화주의가 있어요. 개혁, 뜯어 고치는 것. 개혁을 굉장히 부르짖는다. 그런데 결국은 인간이 어디로 돌아가야 되느냐? 조화로 돌아가야 된다. 개혁만 있고 조화가 없으면 실패요. 그런데 가장 어려운 건 조화다. 그래서 진리의 가장 아름다움은 조화이다. 조화만 잘 되면 그 세계가 불국토고 그게 다 극락세계고 그게 행복이다. 문제는 조화가 깨지는데 큰 문제가 있는 거다.

 

그런데 흔히 인간 보면 개혁을 부르짖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개혁보다 조화가 더 어려운 거다. 그게 소련에 있는 막스레닌이란 사람이 혁명을 했는데 혁명을 하고 나니까 조화가 되야 되겠거든. 이게 참 조화는 마음대로 안되는거다. (고루 調, 획일 ) 고루고루 화목이 되야 되는데 이게 어렵다. 이게 젊을 때는 전부 개혁을 주장한다. 어릴 때는 의존하기만 하고, 그게 이럴 때 유년기에는 그저 어머니 아버지한테 요구할 줄 밖에 모른다. 이게 유년기다. 의존. 평생 의존하다가 죽는 사람은 그 사람은 평생 어린 시절을 살고 가는 거다. 의존만 하는 사람은 불평이 많아. 이건 유아기를 사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보면은. 그런데 평생 때려부수고 뜯어 고쳐야 된다. 이런 거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대부분 그렇다. 개혁주의라는 거다.

 

의존주의 개혁주의. 뜯어고쳐 싹 다 때려부수고. 이거 다 그냥 놔둬서 안 된다. 개혁을 부르짖는데 청년기에는 개혁주의가 된다. 어머니 아버지한테 의존하다 보니 점점 성장하면서 배짱 안 맞는다. 아버지 하는 게 아주 못마땅해. 개혁주의. 제 자신도 우리아버지 하는 게 못 마땅해서 뛰쳐나와 버렸는데. 어머니는 자식 말을 잘 듣는데 아버지는 안 들어요. 그러니까 잘 못하면 싸우기만 하겠고 안되겠다. 내가 나가야 되겠다. 이게 청년기라 그러고 나쁜 말로 하면 사춘기라 그러는데. 반드시 개혁욕구가 아주 강하게 일어나는 그 시기가 있다. 이게 개혁주의이다. 청년기. 그 다음에 중년기쯤 되면 역시 조화를 시켜야 되겠다. 이 조화가 아주 완숙된 문화다. 조화. 어린아이들도 한대 때려서 혼내 키기는 쉬운데. 그 다음에 이 녀석을 잘 달래서 어떻게 공부도 잘하게 하고 올바로 성장하게 하는가 이게 조화다.

 

그러니까 부부생활도 마친 가지다. 처음에는 개혁을 하려 한다. 아내는 남편 뜯어 고치려 하고 남편은 아내 뜯어 고치려 하고. 그래서 싸우는 거다. 이게 개혁시대의 역사이다. 그러니까 내 멋대로 길들여야 된다. 다홍치마때 길 안들이면 평생 못 들인다. 이게 개혁욕구에서 나타나는 거다. 그런데 개혁이 뭐냐? 나이가 들면 개혁가지고 안 된다. 서로 인정을 해야 된다. 아 남편은 저런 사람이다. 아내는 저런 사람이다. 서로서로 인정을 해서 서로서로 조화를 시켜서 서로서로 협력하고 서로 이해하고 이래야 되는데 개혁으로만 계속 치닫다가 깨지는 수가 있다. 요즘 젊은이들이 자기 뜻만 주장하다가 파탄되는 경우 많다. 그건 이 조화의 아름다움을 아직까지 체험을 못해서 그렇다.

 

문제는 아무리 좋은 것을 만들고 개혁을 시켜 났어도 마지막에는 조화가 형성 되야 결실을 맺는다. 이게 참 중요하다. 문제는 조화다. 그런데 이 화엄에서는 조화의 원리를 아주 극치적으로 설명했다. 그것이 바로 10전법. 1전은 10전 안에 있고 바로 10번 속에 1전이 있다. 이게 아주 조화의 극치다. 그러니까 조화가 되려면 다양한 것이 많아야 된다. 많은 것 속에 조화가 되는 거지 똑같은 것만 있으면 조화가 안 된다. 이게 또

<화엄경>에 重重無盡 法界緣起 중증무진 무진법계이다. 이 각자 다른 것이 전체 속에서 다 조화가 되는 것 이래야 된다. 똑 같이 만들어 놓으면 불구자가 된다. 학의 다리가 길다고 해서 잘라내고 이러면 안 된다. 길고 짧은 게 다 조화가 되야 되지. 긴 건 자르고 또 짧은 건 제비다리가 짧다 해서 이어내고 이러면 안 된다.

 

그래서 그대로 가지고 각자 특성을 살리면서 조화를 해야 된다. 이것이 바로

仍不雜亂隔別成잉불잡란격별성이다. 따로따로 隔別成격별성이면서 互相卽호상즉이다. 이게 바로 조화의 극치이다. 互相卽호상즉이면서 隔別成격별성이 되야 되지. 隔別成격별성 떠나서 互相卽호상즉만 강조하면 전부 하나로 뭉쳐놓는거지. 밀가루 덩어리처럼. 그러면 안 된다. 다 따로따로 있으면서 隔別격별한다. 그런데 이 조화가 되려면 역시 부처님이 되야 조화가 된다. 자기하고 다른 주장을 한다든지 다른 모습을 보면 그 꼬라지를 못 본다. 이게 조화는 개혁보다 더 높아야 되기 때문에 참 힘 든다.

 

아이들이나 누구도 후배들이 영 자기 주장을 자꾸 세우면 그 주장도 일리가 있다는 것을 상식적으로 이해하는데 감정을 뒤틀려서 참아내기 참 힘 든다. 참아내기 힘들다. 일리가 있다는 건 알지만 기분 나쁘다. 이게 되는 게 아니다. 옳은 건 안다. 그러나 기분 나쁘다. 그냥 안 둔다고. 조화가 되려면 다 보살이되야 조화가 되는 거. 보살 안 되고는 이게 조화가 안 된다. 그래서 불심을 일으켜서 자꾸 정진하고 기도하고 해서 지혜와 공덕이 자꾸 불어나면 조화가 된다. 그리 되면 바로 불국토 이루어지는 거다. 오늘 말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출처 : 연꽃香이 흘러가는 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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