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온(五蘊/12처(十二處)/18계(十八界)

똥하 2010. 12. 25. 19:43

 

 

오온(五蘊/12처(十二處)/18계(十八界)

 

 

기본개념: 일체 법

일체 법은 만물의 존재현상을 말한다. 인간존재, 나, 세상이 모두 일체법이다. 부처님은 일체 법은 연기적 관계에서만 존재한다고 가르치셨다. 그런데 중생들은 일체법의 참된 모습을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에 집착하고, 집착함으로써 그것이 변하거나 사라질 때 괴로워하게 된다.

초기불교에서 일체법의 구조와 요소를 분석하기 위한 방법으로 가장 일반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오온, 12처, 18계를 설하고 있다. 그 목적은 이 세상을 아무리 분석해보아도 거기에 아트만(나)이라는 것이 없으며, 오온, 12처, 18계 그 어떤 것도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제법무아이며, 모든 존재들이 실체가 없고 항상 변하면서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오온(五蘊):인간존재 혹은 ‘나’라는 현상을 이루고 있는 다섯 무더기 혹은 쌓임(번뇌망상이라도 한다). 연기하는 ‘나’라는 존재를 고정불변의 자아로 착각하여 취착한다는 의미에서 오취온(五取蘊)이라고도 함.

오온은 물질현상과 정신현상으로 나뉜다. 물질, 즉 형태라는 의미의 색(色)인 인간의 육체는 지, 수, 화, 풍 4대로 이루어졌다. 정신현상은 수(受), 상(想), 행(行), 식(識)으로 나눈다.

색(色): 몸과 눈 귀 코 등 인식기관으로 이루어진 육체

수(受): 육체가 감각적으로 받는 유쾌, 불쾌의 느낌과 정신이 지각적으로 느끼는 괴로움과  즐거움 등의 감수작용

상(想): 감수작용에 의해 받은 느낌을 이미 축적된 개념과 연관지어 개념화 함. 인간사회의 상대적 개념을 형성하는데 주된 역할을 하는 정신작용

행(行): 감수작용, 정신작용 그리고 식(識)의 인식작용을 제외한 일체의 의지적 마음작용. 의업을 형성하기 때문에 형성력(形成力)이라고도 한다. 기억 상상 추리 등의 지적작용과 의지작용이 주된 역할이다.

식(識): 나누어서 아는 것, 분별 판단 인식의 작용. 위의 정신작용들의 기저에서 인간이 역동적인 인식활동을 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오온은 물질영역인 색에 대해서는 간단히 설명하고 정신영역의 4가지 의식현상을 자세히 설명한다. 이는 육체는 물론 정신 또한 실체가 없으며 연기된 것임을 일깨우기 위함이다.

 

12처(十二處): 일체를 구분 포섭할 수 있는 열두 가지 포섭 처. 12처는 6가지 감각기관과 6가지 감각대상을 합친 것이며 12입(入)이라고도 한다.. 6가지 감각기관을 6근(六根), 혹은 6내입처(六內入處)라 하고, 6근에 상응하는 바깥세계의 대상(法)을 6경(六境) 혹은 6외입처(六外入處)라 한다.이 우주에 있는 존재를 요약해서 주관계(主觀界)와 객관계(客觀界)로 분류할 때, 6근은 주관계를 구성하고 6경은 객관계를 구성한다. 주관과 객관의 모든 현상은 12처에 포섭된다. 이와 같은 일체법의 분류방식은 일체존재의 주체인 인간의 인식능력을 중심으로 구분해서 일체의 실상을 인간(6근)과 세계(6경)로 구분한 것이다. 즉 일체는 6근과 그에 포섭되는 6경 이외의 것은 없다고 보는 것이다.

 

6근(6내입처): 여섯 가지 대상경계를 받아들이는 여섯 가지의 감각기관

6경(6외입처):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 파악되는 여섯 가지의 대상경계

 

6근(6내입처) ------- 6경(6외입처)

안근(眼):--------------색경(色)

이근(耳):--------------성경(聲)

비근(鼻):--------------향경(香) 

설근(舌):--------------미경(味)

신근(身):--------------촉경(觸)

의근(意):--------------법경(法)

 

6근의 근은 기관이라는 뜻 이외에 기관이 가지고 있는 기능까지 포함한다. 예를 들어 안근은 안구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보는 눈의 기능까지 포함한다. 눈이 그 대상인 빛 혹은 형태(色)를 대하게 되면 눈을 통해서 보는 작용이 일어난다. 다른 기관들의 작용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의근의 경우는 여기에서 의식이 생기므로 일종의 기관으로 간주하기는 하지만 다른 5기관들처럼 직접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기관은 아니다. 의근의 대상은 마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 혹은 일체 현상(法)이다. 즉 12처 가운데 11처에 포함되지 않는 모든 현상이다.

12처설에서는 정신영역은 의처(意處)와 법처(法處)로 간단히 설명하고 나머지 10처에서 물질영역에 대한 설명을 구체적으로 하고 있다. 이는 물질이 실체라고 생각하거나 물질을 이루는 기본요소를 영원불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물질에 실체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어 일체를 구성하는 12처도 모두 연기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18계(界): 일체를 구분 분별할 수 있는 열여덟 가지 구분 처. 일체의 존재를 인식기관(6근)과 인식대상(6경) 그리고 인식작용(識)으로 분류한다. 일체법이 6근과 그 대상인 6경의 화합에 의해 생기는 연기된 의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인간의 의식과정의 형성은 인식기관의 인식대상과 만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6근으로 인해 6경이 있고, 6근과 6경으로 인해 6식이 있으며 6식으로 인해~~~로 이어지는 연기법의 형태를 보여준다. 인식주체나 객체, 여기서 생기는 인식은 그 실체가 있어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의존해서 생겼다 사라지는 연기적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6식(六識): 6근이 6식과 접촉하여 일어나는 인식작용

 

6근(6내입처) ------- 6경(6외입처)-------------6식

안근(眼):--------------색경(色) --------------안식(眼識)

이근(耳):--------------성경(聲)---------------이식(耳識)

비근(鼻):--------------향경(香)---------------비식(鼻識) 

설근(舌):--------------미경(味)---------------설식(舌識)

신근(身):--------------촉경(觸)---------------신식(身識)

의근(意):--------------법경(法)---------------의식(意識)

 

눈을 통해서 빛깔이나 형상을 보기 때문에 그것을 식별하는 작용이 일어나게 된다. 그것이 안식(眼識)이다. 마찬가지로 몸으로 무엇을 접촉하기 때문에 신식(身識)이 일어나고, 마음으로 무엇을 생각하기 때문에 의식(意識)이 일어나게 된다.

18계설은 물질과 정신에 실체가 있어 영원하다고 믿는 사람들을 위해 설한 것이다. 이들에게 물질과 정신의 참모습인 연기성을 보여줌으로써 그것에 대한 집착을 끊도록 하기 위함이다. 결국 정신이든 물질이든 모든 현상은 영구불변의 실체가 아니며 연기하여 존재할 뿐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삼법인에서 일체법의 참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함의: 반야심경에 나오듯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이면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이듯이 오온 즉 색수상행식이 다 빈 자리이다. 즉 고정된 실체로서의 내가 없는데 누가 괴로움을 느끼겠는가. 괴롭다고 하는 것은 괴로움을 느끼는 당체, 실체가 있기 때문이지만, 근본을 살펴보면 뭉뚱이도 마음도 실체가 없는데 누가 괴롭다고 하는 것인가. 우리 몸이 물질적 존재로서 고정되어 있는 것 같지만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니 실체는 없고 다만 변화하는 작용만이 있을 뿐이다. 마음 또한 그렇다. 그러므로 실체가 있다는 의식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며 항상 바로 지금 여기에서 몸과 마음을 잘 쓰는 일이 우리가 할 일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고정된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바로 지금 어떻게 그 몸과 마음을 쓰느냐에 따라 내가 선택하는 나를 만들어 갈 수 있다. 몸과 마음이 텅 비어있기 때문에 거기에 무엇으로든 채울 수 있다. 내가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의 나의 행위가 나를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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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과의 첫 번째인 오온은 본래 우리의 개인적 존재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의 집적을 뜻한다. 즉 '색'이란 육체다. 눈·귀·코 등 감각기관(根)을 갖춘 신체를 가리킨다. 다음의 '수·상·행·식'네가지는 색에 대한 정신작용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 면 '수'란 감각 또는 고와 낙 등에 대한 감수작용이다. '상'이란 표상작용이다. 즉 마음이 이미지를 갖는 것, 상상 또는 관념같은 것이다. '행'이란 의지 또는 충동적 욕구, 마음을 구성하는 것이다. '식'이란 인신작용 또는 판단과 분별을 말한다. 오온은 이와 같이 육체와 정신의 전체를 나타낸 것이므로 마음이 갖는 이러한 네가지 이외의 작용은 '행'속에 포괄된다. 행은 일반적으로 마음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식은 단순한 의식작용이라기보다는 마음 그 자체, 즉 수·상·행으로 된 마음작용의 뿌리인 주체라고 할 수 있다. 오온은 우리들 개인존재의 요소일 뿐만 아니라 일체의 현상이 다 적용된다. 즉 '색'은 외계를 포함해서 물질 일반을 가리키고, 마음과는 관계없는 여러 가지 작용과 힘, 또는 추상적 개념은 모두 '행'에 포괄된다. 개인존재의 요소가 되는 오온을 앞에서 말한 것과 구분하기 위해 '오취온'이라고 한다. 이러한 요소들(소재들)이 모이게 되면 개인적 존재(我)를 상정한 아에 집착하게 되고 이로 인해 윤회의 생존을 가져오게 된다는 뜻이다.오온의 배열은 고정되어 있다. 그 순서는 대체로 먼저 육체가 있고 이것을 근거로 해서 정신이 작용하게 된다. 정신현상은 눈 앞에 있는 것을 지각하고 지각한 것에 대해 마음속에 이미지(想)를 만들어 품고, 그 이미지에 따라서 여기에 적극적으로 작용하고 마지막으로 잘 음미하고 인식, 확인한다. 즉 수상행식은 심리적인 프로세스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심리작용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로 대응한다. 즉 즐거운 것을 보고 그것을 마음으로 상상하며, 이것저것 즐거운 일들을 상상하면 그 어떤 것이라도 가지고 싶어 접근해간다. 반대로 불쾌하게 느끼고 고통을 줄 듯하면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려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뱀을 보고 무섭다고 느껴 도망치려하다가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니 새끼줄이었다고 깨닫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수'와 '행'은 수동과 능동이라는 차이가 있고 '상'과 '식'에는 합해서 안다는 것과 나누어서 안다는 차이도 있다. 12처(또는 12입)의 '처(處)'는 지각의 입구, 즉 지각이 그곳을 통해서 생기는 장소라는 의미다. 이를테면 본다는 작용은 눈(眼)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마찬가지로 듣는 것은 귀(耳)며, 냄새맡는 것은 코(鼻), 맛을 보는 것은 혀(舌), 감촉되는 것은 몸(身:피부)을 통해서다. 또 무엇을 알게 되는 것은 생각(意)이라는 감관을 통해서다. 이상을 6근(또는 六入, 六處)이라고도 한다. 이 6근은 각기 외계의 대상과 대응한다. 눈은 색깔과 모습(色), 귀는 소리(聲), 코는 냄새(香), 혀는 맛(舌), 몸은 촉감(觸), 그리고 생각은 법이라는 대상을 갖는다. 이 여섯가지 감각기관과 외계의 대상을 합쳐서 12처라고 한다. 식의 대상인 법은, 유형·물질·비물질 등 모든 존재 내지 모든 추상개념을 일컫는데 분류항목 가운데 색성향미촉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이와 같은 명명법은 5온이 일체법이라고 보았을 때 '행'이 다른 네항목(色·受·想·識)에 포함되지 않는 것을 일괄해서 포함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즉 모든 것이 '법'이지만 그 중 특정한 기능과 특색 있는 것에는 특별한 명칭을 주고 그밖의 일반적인 것은 '법'이라는 이름으로 총괄하는 것이다. 5온에서 '행'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무상하고 변화하는 것(有爲法), 그렇지 않은 것(無爲法)도 여기에 포함된다. 5온과 12처를 대응시켜 비교해 보면 12처의 안이비설신의(五根)과 색성향미촉(五境)은 모두 색온에 해당된다. 의는 식온과 같지만 법처는 수상행의 삼온을 포함하는 것이다.

십팔계는 이상의 12처의 대응(內와 外, 根과 境)에 또는 안식(眼識)에서부터 의식(意識)까지의 육식을 보탠 것을 말한다. '계(界)'란 여기서 구성요소 또는 영역·종류라는 뜻이다. 동시에 일정한 영역내에 놓여진 것은 서로가 공통되는 성질이 있으므로 그 공통된 성질은 그러한 것들을 한 가지로 만들어 주고 있는 요소이며 근원이 된다. 그것은 마치 물질의 원소와 같다. 그리고 광산이나 광석을 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거기에서 금속이나 보석이 나오는 근본의 것이라는 뜻이다. 18계의 분류원리는 근(根)·경(境)·식(識)의 삼사화합이라는 사고방식에서 유래한다. 이것은 인식론이지만 우리들의 인식에는 반드시 인식의 대상(境)과 인식성립의 기능을 가진 감각기관(根)과 인식작용(識) 세 가지가 필요한 것과 같은 원리다. 예를 들면 코(鼻)를 통해서 냄새(香)를 맡음으로서 향기를 식별하는 작용을 비식(鼻識)이라고 명칭하는 것이다. 눈이나 귀, 또는 그밖의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5근·5경·5식의 경우는 삼사(根·境·識)가 명료하게 구별되지만 의근(意根)과 의식(意識)은 실은 같은 것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의근과 6식을 합해서 칠심계(七心界)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전부가 실은 '심(心)'으로서는 하나이고, 이것은 5온 가운데의 식온에 해당하는 것이다. 다만 기능적 측면에서 편의상 분류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이것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구사론≫등에서는 마음의 작용은 순간마다 생멸하기 때문에 어떤 찰나에는 안식이 작용하고 또 어떤 순간에는 의식이 작용한다는 식으로 재빨리 교체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TV를 시청할 때 화면을 보는 것과 소리를 듣는 것이 동시가 아니고 순간마다 교체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절이 아니라 필름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연속되는 영상과 음성을 지각한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 본 온(蘊)·처(處)·계(界) 삼과(三科)의 분류는 모든 존재와 현상에 대한 중생의 집착이 허망한 것임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다. 즉 정신의 실재(實在)를 밑는 우매한 사람에게는 오온을 가르치고, 물질(色)에 우매한 사람에게는 12처, 물질과 정신(色心)에 우매한 사람에게는 18계(界)를 설하여 각각 아집을 타파했던 것이다. 이 삼과(三科)의 분류법은 아함(阿含)이래의 전통, 즉 '불설(佛說)'에 근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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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온, 물질과 정신을 5개로 분류한 것 -오온(五蘊)의 온(蘊)은 모임, 다발이라는 뜻으로 5개의 집합, 5종류의 무리라는 의미다. 불교에서 물질과 정신을 5개로 분류한 것이며 물질현상을 나타내는 색(色)과 정신현상을 표현하는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을 가리킨다. 좁은 의미로는 인간 존재를, 넓은 의미로 쓰일 때는 현상세계 전체를 의미한다. 오음(五陰)으로도 쓰인다. 오온이 인간 존재를 의미할 때 색은 지수화풍(地水火風)의 4대(四大)로 이루어진 물질적인 부분을 말하며, 다섯 가지 감각기관인 눈, 코, 귀, 혀, 몸 등이 여기에 속한다. 수는 육체가 감각적으로 받는 느낌과 정신적으로 느끼는 괴로움이나 즐거움 등의 감수(感受)작용이다. 상은 앞의 감수작용에 의해서 받은 느낌을 이미 축적된 생각들과 연관지어 개념화한다. 행은 위의 두 가지 감수작용과 개념작용 그리고 다음에 언급할 인식작용을 제외한 일체의 의지적 마음작용을 말한다. 기억, 상상, 추리 등이 여기에 속한다. 식은 일반적으로 분별, 인식작용을 말한다. 예를 들면 붉은 꽃을 볼 때 안식이 일어나게 되는데 안식은 눈앞에 ‘무엇이’ 나타난 것만을 알 뿐이다. ‘붉다’ ‘꽃이다’라고 하는 것은 상의 작용이다. 오온설은 인간이란 존재가 색수상행식 등 5가지 요소가 어떤 인연에 의해 일시적으로 결합돼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결국 ‘나’라는 존재 또한 연기적일 뿐 실체가 없다는 ‘무아’를 설명해주는 것이다. 오온은 ‘자신(自我)에 대한 집착(取)의 원인’이 된다고 해서 오취온(五取蘊)이라고도 불린다.

 

 

-.12처

 

여섯 가지의 감각 기관인 6근(根)과 이 기관의 각각에 대응하는 여섯 가지의 대상인 6경(境)을 합해서 12처라 한다. 즉 지각(知覺)이 생기는 12가지의 조건을 일컫습니다.세계의 성립 조건을 주관과 객관의 대립 관계에서 열거할 때의눈(眼)과 색(色), 귀(耳)와 소리(聲), 코(鼻)와 향(香), 혀(舌)와 맛(味), 피부(身)와 접촉되는 것(觸), 마음(意)과 생각되는 것(法) 등입니다.그 중에서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 등의 6근을 6내처(內處)라 하며,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 등의 6경(境)을 6외처(外處)라 합니다.불교에서는 세계의 모든 것인 일체를 의미하는 말로서 12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18계설

 

 

십팔계설 이란 위의 십이처설이 주로 물질적인 색법(色法)의 분류인데 비하여 십팔계설은 여기에 심법(心法)을 추가하여 색(色)·심(心) 양면을 다 포함하는 일체 만유의 분류법이다. 界라는 말은 종족의 뜻도 있다고 하고 본생의 뜻도 있다고 하는데 먼저 종족의 뜻은 십팔계의 제법(諸法)이 그 자성에 있어서 각각 다르다는 뜻이다. 다음 本生의 뜻은 이들이 곧 모든 심적 활동을 일으키는 요소가 된다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십팔계란 무엇인가. 그것은 위에 말한 십이처에 인식작용의 주 체인 육식을 포함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열 여덟 가지를 말한다.

 

 

 

<十八界>

 

① 眼根 耳根 鼻根 舌根 身根 意根의 六根

② 色境 聲境 香境 味境 觸境 法境의 六境

③ 眼識 耳識 鼻識 舌識 身識 意識의 六識

우리의 모든 심적 활동은 감각기관인 육근(六根)이 그 대상 경계인 육경(六境)을 대함으로써 일어난다. 그렇다면 육근(六根)이 육경(六境)을 대할 때 '이것은 이렇다 저것은 저렇다'하는 등의 인식작용을 일으키는 주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이 육식(六識)이라는 것이다. 실로 우리의 모든 심적 활동은 감각 기관인 육근(六根)과 그의 대상인 육경(六境)과 인식주체인 육식(六識)과의 세 가지가 합쳐졌을 때에만 일어난다. 만일 이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진다면 결코 우리의 심적 활동은 일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육근과 육경은 다른 것이 자명하지만 육식은 과연 어떤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육식(六識)이란 별개의 체(體)가 있는 것이 아니고 일심(一心)이 육근(六根)을 통하여 그 대상 경계인 육경(六境)을 대하여 심적 작용을 일으킬 때 각기 식(識)의 이름을 얻어 육식(六識)이 된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일심(一心)이 눈을 통하여 색경(色境)을 대함으로써 심적 작용을 일으키면 안식(眼識)이 되고, 이근(耳根)을 통하여 성경(聲境)을 대함으로써 심적 작용을 일으키면 이식(耳識)이 되고, 이렇게 하여 육식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관과 객관과의 문제를 놓고 보면 앞의 십이처설 에서는 육근이 주관이요 육경이 객관이었으나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육근도 또한 물질적인 것이라 주관이 될 수 없는 점이 충분히 있다. 그러나 이 십팔계에서는 육식이 더해지므로 육식이 참다운 주관이 되고 육경과 육근은 함께 객관이 된다고 하겠다. 이제 이 식(識)·근(根)·경(境)의 관계를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十八界

 

六識 … 眼識 - 耳識 - 鼻識 - 舌識 - 身識 - 意識

↓ ↓ ↓ ↓ ↓ ↓

六根 … 眼根 - 耳根 - 鼻根 - 舌根 - 身根 - 意根

↓ ↓ ↓ ↓ ↓ ↓

六境 … 色境 - 聲境 - 香境 - 味境 - 觸境 - 法境

이상과 같이 볼 때 앞에 나온 오온설(五蘊說)이 마음(心)에 치우치고 십이처설이 물질(色)에 치우친데 비해 이 십팔계설은 색(色)·심(心) 양면을 고르게 統攝하여 분류한 것으로 가장 보편적인 분류 법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상에 살펴본 바와 같은 오온설, 십이처설, 십팔계설의 셋은 다 같이 우리 인생을 중심으로 한 일체 만유의 분류법으로 흔히 삼과설이라 하여 한데 묶어져 설하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다 같이 인생을 중심으로 한 분류법이 이상과 같이 각각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 (대비바사론)에는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 교화될 바 유정(有情)에는 둔근기(鈍根機), 중근기(中根機), 이근기(利根機)가 있으니 둔근자(鈍根者)를 위해서는 십팔계를, 중근자(中根者)를 위해서는 십이처를, 이근자(利根者)를 위해서는 오온(五蘊)을 설한다.

㉡ 교화될 바 유정에는 광(廣)을 좋아하는 자, 중(中)을 좋아하는 자, 약(略)을 좋아하는 자가 있으니 광을 좋아하는 자에 대해서는 십팔계를, 중을 좋아하는 자를 위해서는 십이처를, 약을 좋아하는 자에 대해서는 오온을 설한다.

㉢ 교화될 바 유정에는 색심(色心)에 우매한 자, 색(色)에 우매한 자, 심(心)에 우매한 자가 있으니, 색심(色心)에 우매한 자를 위해선 십팔계를, 색(色)에 우매한 자를 위해선 십이처를, 심(心)에 우매한 자를 위해 서는 오온을 설한다.

그리고 이 삼과설(三科說)에는 극소한 부분 무위법(無爲法)이 포함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유위법(有爲法)을 중심으로 한 것으로 현상계 만유는 인연의 화합으로 모였다가 인연의 이산(離散)으로 흩 어진다는 제법무아(諸法無我)의 도리를 밝히는데 그 주안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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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법을 가지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12연기법은 내 인식의 발생 원인과 결과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지 나 외 자연이나 우주를 설명하는 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상 연기의 원리가 있어 세상이 존재하거나 윤회를 거듭하는 것 또한 아닙니다.

 

12연기는 다람쥐 챗바퀴가 아닙니다. 무명이 있어 행,식,명색,육입....생,노사로 이어지고 다시 무명을 받는 그런 돌고도는 챗바퀴를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12연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라는 전제가 없어야 합니다. 연기의 원리로 내가 존재한다라는 건 연기를 아예 접근조차 못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무상고무아가 바탕이 되지 않고는 절대로 연기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12연기는 나없음을 보기위해 연기법을 12개로 나누어 놓은 것인데 정작 나를 세우고 12연기를 이해한다는 건 전혀 말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12연기를 설하게 된 이유가 나없음을 보기 위함인 것인데 정작 님은 나를 전제로 하고 12연기를 보고 있다는 말입니다.

 

부처님은 오온, 12처,18계, 12연기, 사성제, 팔정도로 설하셨습니다. 이 법들은 하나로 모두 엮여 있는 것이고 하나가 모두 포함된 것이며 모두가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12연기를 똑 떼어다 이해를 한다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님 스스로 오온이 무엇인지, 12처가 무엇이며 18계, 사성제, 팔정도가 무엇인지를 모른다면 12연기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연기법에서 견성까지

(일련의 자문입니다. 그러니 마음대로 생각하고 자문자답하면 그만입니다. 일련의 질문에서 견해가 서로 다르드래도 아무런 문제될 거 없습니다. 다만 잠간 숙고하여 두면 필히 님이 불도에 들려고 할 적에 도움으로 될 거는 확실합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반복하여 읽어보기도 하면서 그냥 잊어버리는 게 좋습니다.)      1. 고 세상이 이처럼 좋습니다.혹시 돈만 벌면너른 숲속에 크다란 궁전을 세우고서 온갖 시설 갖추고서   온갖 거 갖춘 차도 헬리콥터도 자가용 비행기도 유람선도 띠띠 뽕뽕 타고서세계의 휘황찬란한 곳 아무데나 가서 무어라도 먹고 싶은 거 먹고 잘 차려 입은 예쁜 님들과 이런 일 저런 일 함께 즐기는 세상인데 왜?세존께서는 그게 모두 고라고,나아가서고라는 거 성스러운 명제라고 말씀하셨을까요?스스로의 경험에서 스스로에게 말하여 봅시다. 2. 연기법과 예외 연기법이라 하면 오늘날에는 12연기법으로 정리되어 이해하고 활용하기는 하지요. 연기법은 오온과 심의식에 대한 거입니다.색수상행식의 오온과 18계 12입에 대한 거이지요. 이러하다면 현상계의 모든 거가 연기법의 이치에서 벗어나지 아니하는 거라고 보이네요. 그러나 모를 일이지요.이 세상에서 연기법에 대한 예외가 단 하나라도 있다면 그건 무어일까요?혹시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신앙의 대상은 예외일 수가 있는 거가 아닐까요? 혹시 맹목적 믿음이란 예외가 아닐까요?혹시 현대과학이나 정신질환은 예외가 아닐까요?  3. 연기법과 법거량   수행한다면 각자 스스로 수행하는 거이지요? 법거량을 한답시며 각종 논거로서 주장으로 펴면서 사와 정으로 가리려는 거이지요?혹시 곁에 제자나 청중이나 관중이 있다면세속의 경쟁에서 생사를 거는 격투보다 심하지요? 세속에서는 경쟁과 격투가 용인되기도 하나출세간에서 법거량하는 거는 무어를 위하고자 하는 거일까요?고덕으로 유명하고 보살들 거사들 따르면 청중의 유무에 따라서 법거량으로 덤벼드는 거들 단번에 보기좋게 죽사발로 만들어야 하겠지요?청중을 위한답시면서 보여주는 법이란결국은 스스로의 법상이니 법에 집착한 아상이 아닐까요? 법거량하면서 아상과 법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그건 어떠한 경우인지 스스로의 견해로서 스스로에게 밝혀 봅시다.   4. 연기법과 정업 단번에 깨닫는 일은 가능하나 비록 어떠한 수행을 하고 있다 하드래도상과 업을 지금도 보태고 있는 습관에서 벗어나지 아니하고서 깨닫는다는 거는 수월한 게 아닙니다. 금강경은 마음의 상에 대한 가르침인 거이지요?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법상 비법상으로 말씀하시지요.약견제상비상즉견여래라는 말씀이 있지요?연결된 가르침으로 정업장분의 가르침이 있다고 보임니다.어떠한 상들이 어떠한 경우에 자각되어지든가요? 상도 자각하지 못하면서 아상이 없어야 한다고 천년 만년 주장하드래도 도루묵이지요?  그래서 업장이란 어떤 거임니까?부처는 만드는 거  아니고 만들어지는 거 아니니성불이란 게 말이 아니되는 거이긴 하나 성불하라고 말하는 거이지요?현실에서 학인이 수행할 수 있는 거이긴 하나학인이 스스로 불을 만들어 이루려고 작심할 적에는 가능하지 아니합니다.  보살행이든 무슨 행이든 가능하지 아니합니다. 다만 념불하든 화두들든 위빠사나든 좌부동등이든  스스로 의도아니하드래도 요령이 바르다면 일어나는 현상으로서 업장을 쌓아 오던 이전의 오랜 습관에서 벗어나는 기회는 맞이하고 있는 거입니다.  나아가서 금강경을 바르게 수지하는 거로서 정업장분을 스스로 소화하고 있다면  팔풍속에서 오히려 스스로의 업장이 저절로 정화되고 있는 거이라서 업장이 정화되는 거이지요.남악회양스님에게 혜능대사가 말한 불오염수그리고홍인화상이 혜능대사에게 법을 전하면서 멸죄송으로 전한 거도정업장분에 연결된 말씀인 거로 보이네요. 스스로 물어 보아야지요? 홍인화상이 한 말씀중에 혜능대사에게 정업에 대한 설법으로 하신 거인지? 금강경 어디 쯤에서 도우려고 그러한 설법으로 하신 거인지?(세상에 밝혀진 바 없었으니 단경에서 스스로 보아야지요.)5. 연기법과 금강경의 정업그래서 고성제, 연기법, 금강경 정업장분으로 자문하여 보았네요. 이제는 약간 궁금해 할 거라고 보임니다.연기법과 금강경의 정업장분의 지향점은 같은가? 다른가?  예외없이 연멸되면 무어가 남는가?예외없이 정업되면 무어가 남는가?만약에 남아 있는 게 일념이라도 있다면 어찌하나?만약에 일념이라도 염착이 된다면 어찌하나?자연과학, 정진질환, 생명과학, 철학, 양자물리학등등은 예외로 하고서 예외가 없다는 말일까?자유롭게 솔직하게 다양하게 밝히는 스스로의 견해로서다양한 측면들이 노출되는 거이니 저절로 스스로 배우는 바 있을 거임니다.어쩌면 예외로 될 수 있는 거가 필히 하나 이상은 필히 있을 거 같기도 할 거라고 보임니다.세존 당시에는 오늘날과 달리 과학이 발달하지는 아니하였으니까요.  다음 예의 법상들 중에서 예외로 되어야 할 거가 하나라도 있다면 있는 그대로 모두 지적하여 봅시다. 1, 불,법,승 2, 계,정,혜, 자,비,희,사 3, 삼.사법인, 상락아정 4, 오온, 심의식, 업, 육취, 윤회, 사성제, 연기법, 팔정도, 37보리분법, 육.시바라밀, 공안 5, 사과, 보살, 십지, 자성, 본성, 불성, 법성, 불신, 법신, 여래, 삼신불, 비로자나불, 아미타불, 미륵불, 진아, 주인공, 본 나, 무아, 대아 6, 중생계, 극락, 법계 7, 양변, 사정, 내외, 능소, 주객, 선악, 중도 8, 각, 깨달음, 삼매, 반야 9, 참회, 수행, 념불, 간화선, 위빠사나, 조사선, 여래선 10, 공, 무, 불이, 중도, 일심, 청정심, 무심, 무상, 무위, 무행, 무래왕, 무주, 무념, 불생불멸11. 과학이론 공학, 우주천문학  심리학, 정치경제학, 역사문화학 등등    이렇게 하나라도 예외로서 남겨두는 이유들이 있을 거라고 보임니다.그 이유는 어찌하여 예외가 아닌 거인지 견해로서 밝힐 게 있을까요?그 이유조차 예외일 수 없다면 견해로서 밝히실 게 있나요?예외조차 어찌하여 소멸되고 맙니까?  예외란 하나도 남김없이 없어지면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6. 연기법과 불립 그러니,세존께서 설법한 연기법을이해하거나 이치를 수행에 활용하는 거도 전수하고 전수받는 사람에 따라서 다른 거입니다.이치에 대한 이해의 길도 있고 믿음의 길도 있습니다.다만누구라고 하드래도 이해한 이치의 길이라면 언젠가는스스로의 수행이란 거북이 뒤꽁무니 쫒는 일이라고 스스로 알아차리면 그기에서 스스로 벗어나야 좋은 거입니다. 비유하자면, 수행이란 토끼가 거북이를 따라 붙이려는 이야기에 닮은 바가 있습니다.예나 지금이나 거북이가 눈앞에 있는 거처럼 보여주어야 잘 배우는 학인이 있기 때문이에요. 학인은 스스로의 눈앞에 있다는 거북이를 스스로도 볼 수 있으면 거북이를 향하여 직진할 수 있고 직진하고 있을 적에 거북이가 눈앞에 있다고 믿습니다. 결국 수행자라면 스스로 믿슴니다.  눈앞에는 거북이가 확연하게 보이게 될 거라고 하였고 스스로는 바르게 걸어왔으며 길 따라 걷고 있다고. 거북이는 점점 뚜렷하게 보이기도 하였고사람들은 거북이에 가장 가깝다고 찬탄하고 있으며무리짓고서 예경하고 있슴니다.설령 이번 생에 완성하지 못하드래도 다음 생에는 필히 완성되고야 말 거임니다. 이러하다면 눈앞에는 거북이가 항상 있는 거와 마찬가지이니 스스로는 당연히 바른 길위에 있어야 하니 마땅히 길위에 있는 거와 같습니다.스스로의 수행에서 미흡한 거라고는 있을 수 없으니 믿습니다.스스로를 의심하는 거도 의심당하는 거도 참아낼 수 없습니다.설령 털난 거북이라 하드래도 있어야만 합니다. 4그러나 결국4세존의 가르침은 거북이 보는 거나 사과를 맛보는 거나 보살십지를 걷는거도 아니라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양두구육이기 때문이에요. 거북이 뒤꽁무니 따라가는 일에서는 벗어나야 하는 거라고 스스로 알아차려야지요.  연기법이 그러하고 중도가 그러하며 선이 그렇습니다. 팔정도도 지관하는 거도 불립하는 거도 좌선하는 거도 면벽하는 거도 공안으로 보는 거도 모두 마찬가지이지요. 도가 무어이든 간에 도를 구하여 뒤쫒는 거로는 아니됩니다.하물며 단계를 설정하는 거라면 이미 벗어났습니다.    7. 연기법과 자귀의  세존께서연기법으로 설하시고열반에 드실 적에는자귀의 자등명 법귀의 법등명하라고 하셨슴니다. 법은 연기법이니스스로에 귀의하여 스스로의 법등을 밝히는 게 수행의 길이지요.부처는 스스로 말고 다른 무어에 귀의하라고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스스로의 본신이 바로 부처의 불신이기에 부처는 항상 중생이 스스로의 불신에 귀의하라고 하시는 거이지요.본래 이름이 없는 거이라서 본성이니 불성이니 자성이니 마음이니 본래마음이라니 진아라니 대아라니 청정법신이라니 무어 무어라니 이름하는 거입니다.이름하여도 이름하지 아니하여도 님 스스로의 본신입니다.그러하여일체의 연멸과 연생에 통하는 거이니 자성이 있는 법상이라고는 단 하나라도 남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색류이든 법류이든 일체의 경계는 바로 스스로에게 있는 거라고 하는 거입니다.  삼계유심이라 하고 삼라만상유식이라 하며 만법함장이라 하고 일체법의 일체가 개시불법이라 하는 거이니 원무차별인 거입니다.그래서만법이 스스로에게서 비롯하는 거입니다. 그러니 세상이나 세상 사람의 잘잘못이 보일 적에 스스로 저절로 스스로의 잘못으로 보는 때에 비로소 좌선하는 거입니다.만법이 스슷로에게서 비롯하는 거에도 예외란 없습니다. 자귀의란 남에게 귀의하는 거 아니니 세상에 귀의하는 거 아니며 스승에게 맡겨두는 거도 아니며 나라고 알 수 있는 거에 귀의하는 거도 아니니 오직 스스로의 자성, 즉 본래 마음, 본래 그대로의 성품에 귀의하는 거입니다.자등명이란 석가모니의 등으로 밝히는 거 아니고 석상의 등으로 밝히는 거 아니며 연등으로 밝히는 거도 아니니 오직 스스로의 자성의 각이 밝아지는 거입니다. 자각등입니다. 즉각등입니다.  법귀의란 스스로의 청정법신에 귀의하는 거이니 옛날의 습관 그대로 업을 쌓고 있으면서도 청정법신에 귀의한다고 말하지는 아니하지요. 스스로의 청정법신에 삼세불이 함께 있습니다. 자성에 삼신불이 함께 있는 거입니다. 자성에 삼보존이 함께 있는 거입니다.  천칠백공안이나 팔만사천번뇌나 모두 하나같이 본래 자성이란 없으니 팔만사천의 불법과 조사의 천칠백공안에 진통이니 법등명이라 합니다.삼천대천세계 미진수 중생들 마음속 법류에 진통이니 법등명이라 합니다.    법이란 만법이니 역시 예외라고 하는 거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앞에 객관과학이니 학문이니 무어니 무어니 하면서 예외처럼 살펴볼만한 이야기들을 하였습니다만, 불법이란 그런 거에 대한 거도 모두 포함하는 거입니다. 알고 모르고의 영역이 아닙니다.  세존 당시에도 오늘날의 유전공학은 없었다 하드래도 의학과 의사가 있었습니다. 로켓은 없었드래도 은하수는 있었으니 우주선은 없었으나 새들은 그때에도 날고 있었습니다.학인은 모든 거가 스스로의 자성에서 비롯하는 거라고 알아야 하니 그래서 이러하게 알아야 자성이 모든 거임을 아는 거이라서  각성이 깨어나는 거를 봅니다. 자귀의 법귀의 하여야 단박 깨달을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8. 연기법과 공안 공안에 대하여 해설을 하지 아니합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수행인들이 함께 모여있다면 어찌 무어를 해야합니까? 오늘날의 불교에서 당장 간화선을 제쳐 두고서 다른 수행법의 체계를 마련할 때는 아니라고 보이네요. 그래서 공안을 파해는 아니하고서 다만 연기법에서 역시 모두 해결된다는 거 정도로서 이야기하여 보려고 합니다.세존의 가르침의 선상에서 공안을 함께 이해하도록 하여서 근본불교와 선은 다르지 아니한 가르침이니 공안을 모르는 근본불교에서의 깨달음이란 온전한 깨달음이 아니듯이 근본불교의 가르침에서 괴리된 선도 있을 수 없다는 말로 되는 거이지요.간단히 이야기하자면, 공안은 연멸의 목적지를 눈 앞에 두고서 향하도록 하는 게 아니니, 4연멸된 불이의 과보에서 학인에게 보여주는 거일 뿐입니다.4 일체법개시불법이니 예외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불법을 사리로서 꿰뚫고 있다고 하드래도 하나라도 법상이든 비법상이든 남겨져 있을 적에는 공안이란 필히 장애로서 작동하게 마련입니다.  목숨 걸고서 바다와 산과 강 건너 멀리와 부처와 법과 도를 찾는 이에게 자비가 가득한 대선지식이라 알려진 작자가 어찌하여 예컨데, 손가락 하나 달랑 세우는 짓거리를 보였을까요? 뭐하러 주장자 들고 놓고 두들기며 설법을 시작하는 거일까요? 정신 나가게 억! 하며 고함은 뭐하러 쳐될까요? 어찌하여, 길에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말을, 감히 불자로서 스승에 반역하는 말을, 그처럼 태연히 내뱉는 거일까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아니할 적에라면 어찌하면 됩니까? 라고 물으니 놓아버리라하니 달리 무어를 놓아라는 말일까요? 어째서,이렇게 하여도 아니되고 이렇게 하지 아니하여도 아니된다니 정신나간 거아닐까요? 소옥이니 호빵이니 이게 뭐하는 거일까요? 어찌하여 대가리위에 발에 신는 신발을 신고서 나가는 거일까요?어째서 사람에게는 불성이 없드래도 개에게는 불성이 있는 거일까요? 이 게 뭐하는 거일까요? 아무 것도 아닌 거이지요?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별 거 아니라야 좋은 거입니다. 여기에 근거에 입각하여 정해진 정답이 있다고 믿거나 믿도록 하거나 논리에 입각하여 법거량하고자 하는 님은 전부 호로뺑뺑이 당하는 거입니다. 왜냐하면, 연기법도 공안도 마찬가지이니 연멸에서 바라보아야지요. 그래서 님에게 본래대로 소롯이 지금도 갖추어져 있다고 말하는 거이지요.제상비상이어야 비로소 헛소리가 참소리이니 연기법이 바로 공안과 통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이런 저런 근거나 불법의 이치로서 공안을 하나씩 차근차근 파해하고 있을 적에는  역시나 거북이 뒤꽁무니나 쫒고 있는 거입니다. 하물며 법거량한답시며 법상에서 삿대질까지 한다면 광대놀음이네요.    9. 연기법과 견성 팔정도에서 정견은 무어냐 하면, 결국 반야입니다.이 걸 선에서는 직지인심 견성성불이라고 하는 거이니, 식심견성하는 거입니다.  그런데, 간화선으로 수행하는 경우에 견성이란 간화선의 결과라고 알고 있었지요? 그러면 결국 견성은 눈 앞에 목적지로 두고서 수행할 수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원래 견성하는 거는 그러한 게 아닙니다.  단경에서, 어린 신회가 혜능화상에게 "화상 좌선이란 보는 거입니까? 보지 아니하는 거입니까?" 라고 묻습니다. 늙은 혜능이 기특한 신회에게 말하는 장면으로 나오는 대사중에, "너는 항차 자성을 보지도 하니하면서 감히 사람을 놀리느냐?"라고 하십니다.달리 말하자면, 견성하는 거가 바로 수행하는 거이기 때문이에요.견성함으로써 견성하니 견성입니다.이 말은 이해되지 아니할 거이기 때문에, 다시 단경에서 혜능화상이 좌선을 설법한 내용을 인용하겠습니다. "선지식들아, 자성이 자정하는 거로 보아라. 자수자작하는 거는 자성법신이니 자행이 불행이고 자작자성이 불도이니라."이 가르침으로도 와 닿지 아니하였기에 단경의 종류가 그렇게도 많아졌다고 보이네요.마치 연기법을 설해도 알아듣지를 못하니 이런 저런 말씀으로 다시 펼칠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던 거처럼 역시 견성하라는 가르침을 받고나서도 이런 저런 방법으로 수행하는 도리 밖에는 없었네요. 성문이니 연각이란 소승을 말하는 거 아닙니다. 사성제를 설해도 거짓없는 녹음기에 지시 따르는 로보트와 다름이 없으니 성문과 연각이라 이름하는 거이었지요. 견성하라고 설해도 역시 녹음기나 로보트처럼 스승의 말이나 붙들고서 뒷북이나 칠 뿐이니 역시 성문이고 연각이라 하는 거입니다. 사성제를 설하면 도에서 바로 행하려 들고 견성을 설하면 견성한 후에서 시도하려 들어야지요. 오랜 수행을 체계적으로 하여 왔다면 이런 말 듣고서 의심하거나 무시하거나 화까지 내는 거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세존의 연기법만으로 공안에도 통하는 거라 하였고불법에는 돈점이 없으나 사람의 견해에는 돈점이 있다고 하였으나공감하는 님은 참 드뭅니다. 만약에 정법을 논의하고자 한다면 님들이 돈황본단경을 수지할 적에 기꺼이 논의될 거이네요.

 

생을 어머니의 자궁에서 바깥 세상으로 나오는 것으로 알고 계신가요? 무명은 억겁의 전생에서 쌓인 업이라 생각하시나요?

 

육근,육경, 육식의 삼사화합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이 중 하나라도 모르신다면 모두를 모르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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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개념이자 중요한 개념이 바로

5온, 12처, 18계 입니다.

일단 세친의 아비달마구사론에 보면

5온은 오직 유위법만을 설하고 있으며 심소법에 어리석은 자를 위하여,

또한 짧은 법문만으로도 제도가 가능한 상근기들을 위해서 설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12처는 색법에 우매한 자들을 위해 설하였다고 하며

이는 또한 중근기를 위한 설법이었다고 합니다.

마지막 18계는 심법과 색법에 모두 어리석어

실아에 대한 집착을 갖는 자들을 위해 설하였다고 합니다.

즉 세상에 대한 설명을 위해 건립한 개념들이기 때문에,

또한 모든 것이 연기에 의해 일어났다 살아질 뿐

어떠한 실체가 상주불변하는 것이 아님을 설한 것이기 때문에 공하다고 하는 겁니다

 

 우리들이  '나' 라고 알고 있는 것의 실상은 물질의 무더기와 느낌의 무더기와 지각의 무더기와 의지작용의 무더기와 대상을 아는 마음의 무더기일 뿐,  우리가  관념적으로 알고 있는 '나'는 없습니다. 

 

이 오온은 조건에 의해 생긴 그 순간만의 다섯 무더기이지, 이 오온안에 내가 있다거나 , 나의 자아(영혼)가 있다거나, 이 오온이 나의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오직 일어날 조건에 의해 일어났다가 사라질 조건에 의해 사라짐으로, 어떤 변하지 않는 실체(나를 포함한)가 없는 공(空. 無我)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지금 창 밖에 눈이 펑펑 오고 있습니다. 이런 자연현상을 지금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은 착각입니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한 번 통찰해 봅시다

 

예를 들면 지금 창 밖에 눈이 펑펑 오고 있습니다. 이런 자연현상을 지금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은 착각입니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한 번 통찰해 봅시다.

 

눈(안근)이 있고 밖에 눈이오는 현상이 있고 - 색온.

눈 내리는 것을 보는 안식이 있고 - 식온

눈이 오니 연말 기분이 나서 좋다는 느낌이 있고  - 수온

과거에 이렇게 눈이 오는 날  친구와 눈을 밟던 기억이 떠올라 -  상온

그 친구가 그리워지고 보고 싶다. 전화를 해야지  - 행온 

지금 눈에 대해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그 친구가  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 전화를 하려는 행위를 아는 마음 - 식온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순간  가스 불에 올려 놓은 찌게가 끓어넘치는 소리를 듣고, 그것을 아는 마음이 일어나고,  큰일났네 하고 뛰어가는  행동을 하는 이 순간의 새로운 오온이 있습니다.  눈을 감상하던 직전의 오온은 새로운 조건에 의해 사라지고 새로운 조건에 걸맞는 새로운 오온이 일어났을 뿐입니다. 이런 행동을 하도록 시키는 어떤 실체는 없습니다.   원인에 의한 결과만 있을 뿐입니다.

 

이렇듯 오온은 감각기관(6내처)이 밖의 대상(6외처)를 만나면 즉시 수온, 상온, 행온이 작용하여 오온을 이끌고 가는 식온이 일어나서 새로운 오온을 만듭니다.

 

만일 그 때 창 밖을 보지 않았으면 눈에 대해 감상을 일으키는 오온은 일어나지 못합니다. 그 순간의 조건에 의해 눈을 감상하는 마음이 있었을 뿐 내가 일으킨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눈을 감상하는 오온은 그 순간 일어났다. 찌게 끓어넘치는 소리에 의해 사라지고 다시 찌게에 대응하는 오온이 일어난 것입니다. 또 즉시 이 마음도 사라지고 눈을 감상하느라  찌게를 태워먹었다고 후회하는 마음이 조건에 의해 그 다음 오온으로 일어납니다.

 

이렇게 오온 12처 18계는 매 순간 조건에 의해 일어나고 사라질 뿐 어떤 실체(나, 창조주, 신, 부처님)가 있어서, 조정을 하거나  일어나게도 하고 사라지게도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실체 없음이며 공하다는 이유입니다.

 

5온 12처 18계는  현재 이 순간의 물질과 정신을 표현하는 다른 말들입니다. 우리들이 흔히  몸과 마음이라고 알고 있는 것의 이 순간의 실재입니다.  이 순간을 궁극적 진리의 입장에서 있는 그대로 통찰하면 이들은 모두 조건에 의해 생멸할 뿐 실체가 없는 ,  찰나의 생명을 가지고 다음 찰나의 원인이 되면서 준비시키고 사라지는 무상한 것이고, 괴로움 이며, 실체가 없는 무아(공)입니다.

 

실체가 없어서 공한 것이지 이런 현상들은  찰나 생멸하면서 흐르고 있는 실재(빠라마타. 궁극적 진리)입니다...^^

[출처]불교에서 오온 12처 18계가 왜 공한가에 대한 서술을 부탁드립니다|작성자자비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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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온을 발견하신 분은 무상정등각자 고따마 부처님이시지요.

 

중생은 오온의 무더기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냥 내가 있다고만 압니다.

 

오직 부처님, 붓다, 최상의 깨달음을 얻으신 붓다의 통찰지혜로만

몸과 마음을 색 수 상 행 식으로 분해해서 있는 그대로 보실 수 있고,

그들의 성품 무상, 고, 무아를 통찰하시고 ,

그 내용을 중생들에게 밝히셔서 모든 중생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열수 있답니다.

 

'나'는 단순히 다섯가지 무더기의 모임이 흘러가는 것일 뿐

실제로 '나' 가 아니기 때문에, 실재하지 않는 관념의 '나'를 위해

욕심과 성냄을 일으켜 괴롭지 말라는 뜻이 들어있답니다.

 

나, 개아,  사람, 강아지, 여자, 남자는 실재(實在)가 아니고

세간의 의사소통을 위해 붙여진 이름(관념)일뿐이니

그 이름(관념)에 속지말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발견하신 것은

이 세상에는 항상하는 그런 실체는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있다는 생각으로 말하고 행동한다면 그것이 바로 전도몽상이랍니다.

 

불교 수행은 '나 '없음, 무아를 알아서  전도몽상을 여위어서 집착이 끊어져 ,

그래서 구경열반을 실현하는 그 길을 가르쳐주는 종교이지요...

 

질문자께서도

직접 현재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서 

직접 오온의 성품을 느껴보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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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계에 관하여 ]

 

6근(六根)이란 대상을 받아들이는 여섯 감각기관을 뜻합니다.

  :   눈(眼), 귀(耳), 코(鼻), 혀(舌), 피부(身), 마음(意)

 

6경(六境)이란 이 이 감각기관이 감지할 수 있는 각각의 대상들입니다.

  :  형상(色), 소리(聲), 냄새(香), 맛(味), 닿는 느낌(觸), 생각할수 있는 대상(法)

 

6식(六識)이란 감각기관(6근)과 그 대상(6경)이 만날때, 그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

 

 

 하나의 대상을 우리가 인지하려면 세가지 요소가 갖추어 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 중 하나만 빠져도 안됩니다. 

 

예를 들어

 

1) 봉사는 사과가 저 앞에 있어도 그것을 볼수 있는 눈이 없어 사과가 있는 줄 모릅니다.

    ( 6근이라는 조건이 만족하지 않는 경우 )

2) 눈이 있어도 온통 암흑이면 저기에 사과가 있어도 보이지 않습니다. 

    ( 6경이라는 조건이 만족하지 않는 경우 )

3) 카메라는 눈에 해당되는 렌즈도 있고 피사체인 사과도 있는데, 제 스스로는 그것이 사과인줄 모릅니다.  ( 6식이라는 조건이 만족하지 않는 경우 )

 

이해 되시죠?

 

이렇게 6근, 6경, 6식을 합해 18계라 하며, 이것이 우리가 아는 세상의 모든것입니다.

 

[ 오온에 대하여 ]

 

오온이란 다음의 5가지를 말합니다.

 

1) 색(色 ; 형상) - 보이거나 만질 수 있는 모든 대상을 뜻하는데, 좁게는 "몸"을 가리킵니다.

넓게는 '대상'을 뜻합니다.

 

2) 수(受 ; 느낌) - 지,수,화,풍의 16가지 느낌을 뜻합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거칠거나 부드럽거나(地), 굳거나 끈적하거나(水), 따뜻하거나 차갑거나(火), 지탱하거나 움직이거나(風) 하는 느낌을 뜻합니다.  

 

3) 상(想 ; 생각) - 인식 혹은 표상하는 것입니다.

 

4) 행(行 ; 의도 등) - 행의 어원은 범어 샹카라( sankhara )에서 나옵니다. 이 행은 크게 세가지로 구분되어 사용되어지는데, "오온"에서의 행은 감각접촉, 의도, 주의, 집중, 의욕, 유익한(善) 심리현상들, 해로운(不善) 심리현상들을 모두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이 경우의 행은 ‘심리현상들’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 '행'을 보통 가장 많이 헷갈려 합니다.

 

5) 식(識) - 대상을 아는 것을 뜻합니다.

 

단, 여기서 알아두셔야 할 것은, 대상을 아는것인 식이 일어날 때는 반드시 수,상, 행이 동시에 함께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님은 '나'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육체와 영혼, 혹은 몸과 마음이겠습니다.   저 책상다리를 '나'라고 생각치는 않습니다.

 

여기서 "몸"이 바로 오온 중의 '색' 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세분해보면,  느끼고(수), 그것을 인식하고(상), 좋아하거나 싫어하며(행), 이러한 것들이 있구나 ... 라고 아는(식) 것의 집합체가 바로 마음인 것입니다.

 

 

[ 질문에 대하여 ]

 

이제 주신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 '육근이 단순한 감각기관(예:눈동자)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작용(예:보는작용, 듣는작용 등 감각기관+정신작용)을 의미한다고 할 때 ]

 

이 부분은 틀렸습니다.  육근은 단순히 대상을 감지하기 위해 생겨있는 감각기관일 뿐입니다.  시체도 육근중 오근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체가, 자기가 시체인줄 안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그래서 바르게 말하게되면, 육근은 오온 중에서 색(色)입니다.

 

[ '육근'이 단순한 감각기관(예:눈동자)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작용(예:보는작용, 듣는작용 등 감각기관+정신작용)을 의미한다고 할 때(최봉수 교수),  결국 육근은 '나(假我)'이다. ]

 

"작용" 즉 보는작용, 듣는작용 등 감각기관 + 정신작용 이란 부분을 잘 살펴 보십시오.

 

앞서 말한것 처럼 "육근"은 오온의 "색"입니다.

그리고 뒤에 나오는 "정신작용"은 "나머지 4온인 수,상,행,식"의 집합을 뜻합니다.

그래서 교수님이 말씀하신 저 말을 다시 말해보면 이런 말이 됩니다.

 

[ 색에다가 수상행식을 더하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나'가 된다 ]

 

즉, 오온의 집합체가 나라는 소리입니다.

 

 

[ 참고하여 ]

 

육근 중 눈과 안식과 色이 만나 대상인 사과를 봅니다.

이 때, 우리는 "사과를 보는 내가 있다" 혹은 "내가 사과를 본다"라고 느낍니다.

 

육근 중 귀와 이식과 聲이 만나 음악을 듣습니다.

이 때, 우리는 "음악을 듣는 내가 있다" 혹은 "내가 음악을 듣는다" 라고 느낍니다.

 

육근 중 코와 비식과 냄새가 만나, 똥냄새를 맡습니다.

이 때, 우리는 "똥 냄새를 맡는 내가 있다" 혹은 "내가 똥 냄새를 맡는다"라 느낍니다.

 

육근 중 혀와 설식과  맛(味)이 만나, 소금이 짠걸 압니다.

이 때, 우리는 "짠걸 아는 내가 있다" 혹은 "나는 소금이 짜다는걸 안다"라 느낍니다.

 

육근 중 피부와 신식과 느낌이 만나, 통증을 느낍니다.

이 때, 우리는 "아픔을 느끼는 내가 있다" 혹은 "내가 아프다"라고 느낍니다.

 

육근 중 마음과 의식과 수학문제가 만나, 열심히 씨름하며 숙제를 풉니다.

이 때, 우리는 "생각을 하는 내가있다" 혹은 "내가 생각한다"라고 느낍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 '나"라는 것은 앞서의 18계와 같은 원리로, 오온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내가 아닙니다.  다만 그것들이 한데모여 서로 뒤섞여 식별할 수 없을때 '나'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이것이 '자아'이고 '유아'입니다.

 

그러나, 하나하나 뜯어봐서 그 하나하나가 '나'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다고 해서 이 '나'라는 느낌이 사라지는게 아닙니다.  의식적으로만 알아서는 안됩니다. 인간의 가장 깊은 무의식 뿌리끝까지를 완전히 밝혀서 무의식에 박혀있는 '나'라는 것이 뿌리뽑혀 질 때만이 진정으로 '무아'를 체험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이하 질문과 상관 없으므로 줄이며, 답을 한마디로 축약해 드립니다.

 

18계 어디서나 오온이 발견됩니다. 또 오온을 관찰할 때 역시 18계가 있습니다.  오온 하나하나 속에는 또 오온이 있습니다.  그 오온을 보면 또 18계가 있습니다.  

(출처 : ''육근'과 '오온'의 상호관계는 어떻게 되나요?' - 네이버 지식iN)

[출처]오온 18계|작성자mam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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