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의 향기

[스크랩] 황진이

똥하 2009. 10. 15. 18:09
 朴淵瀑布   박연폭포
                           黃眞伊(朝鮮)  황진이 1506~1544

 
一派長天噴壑壟   일파장천분학롱   한 줄기 물이 내같이 구렁에 떨어질 때
龍湫百인水叢叢   용추백인수총총   용추의 백인의 물은 용솟음 치네

 
飛泉倒瀉疑銀漢   비천도사의은한   폭포수는 은하수가 쏟아지듯
怒瀑橫垂宛白虹   노폭횡수완백홍   그 폭포 옆에는 흰 무지개 섰구나

 
雹亂霆馳彌洞府   박난정치미동부   물방울이 洞府에 떨어지면
珠聳玉碎徹晴空   주용옥쇄철청공   구슬같이 방울방울 창공에 빛나네

 
遊人莫道廬山勝   유인막도려산승   나그네여, 여산의 폭포만 말하지 말라
須識天磨冠海東   수식천마관해동   이 천마산이야말로 해동의 제일일세

 
     

     奉別蘇判書世讓   봉별소판서세양    소판서 세양을 보내며    

 
月下庭梧盡    월하정오진    달빛어린 뜰에는 오동잎 지고
霜中夜菊黃    상중야국황    서리맞은 들국화 노랗게 피었네

 
樓高天一尺    루고천일척    누대는 높고 높아 하늘에 닿을듯
人醉酒千觴    인취주천상    오가는 술잔은 취해도 끝이 없네

 
流水和琴冷    류수화금랭    흐르는 물소리는 거문고 가락에 싸늘하고
梅花入笛香    매화입적향    매화는 피리곡조에 젖어 향기로와라

 
明朝相別後    명조상별후    내일 아침 눈물지며 이별한 뒤에
情與碧派長    정여벽파장    그리운 정은 강물되어 이어지리라


 

 

           半月    반달 
  
 
誰斷崑崙玉   수단곤륜옥   누가 곤륜산의 玉을 잘라
裁成織女梳   재성직녀소   직녀의 얼레빗을 만들었는가
牽牛一去後   견우일거후   가신 님(牽牛) 그리움에
愁擲碧空虛   수척벽공허   愁心 푸른 허공에 던졌다네

 

 

     靑山裡 碧溪水   청산리 벽계수   푸른산속 푸른 시냇물 
    
 
靑山裡碧溪水      청산리벽계수       청산리  벽계수야
莫誇易移去         막과이이거          수이 감을 자랑마라
一到滄海不復還   일도창해부복환    일도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오니
明月滿空山        명월만공산            명월이 만공산 하니
暫休且去若何      잠휴저거이약하    잠시 쉬어 간들 어떠하리

 

 

푸른산은 나의 뜻이요. 흐르는 물은 님의 정인데
녹수는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리가 있단 말인가
흐르는 물도 푸른 산을 못 잊어 울면서 흐르네.

 

          相思夢   상사몽 
   
 
相思相見只憑夢   상사상견지빙몽   그대 그리는 심정은 간절하나 꿈에서 밖에 볼 수 없어
농訪歡時歡訪농   농방환시환방농   내가 님을 찾아 떠났을 때에 님은 나를 찾아왔네
願使遙遙他夜夢   원사요요타야몽   바라거니 언제일까, 다음날 밤 꿈에는
一時同作路中逢   일시동작로중봉   오가는 그 길에서  우리 함께 만나기를


 

 

          松都   송도     

 
雪中前朝色   설중전조색   눈오는 날은 전조의 모습이요
寒鐘故國聲   한종고국성   차가운 종은 고국의 그 소리다
南樓愁獨立   남루수독립   시름하여 남루에 홀로 섰나니
殘廓暮烟香   잔곽모연향   남은 성터에 저녁 연기 내음이라

 

 


        別金慶元   별김경원 
    

三世金緣成燕尾   삼세금연성연미   삼 세의 굳은 인연 금슬 좋은 짝이 되니
此中生死兩心知   차중생사양심지   이 가운데 생사는 두 마음만 알리로다
楊州芳約吾無負   양주방약오무부   양주의 꽃다운 언약 내 아니 저버렸는데
恐子還如杜牧之   공자환여두목지   도리어   그대가 두목 같을까 두려울 뿐

 
           

 

         滿月臺懷古     만월대회고 
    
 
古寺蕭然傍御溝   고사소연방어구   옛 절 소연하게 어구 곁에 있는데
夕陽喬木使人愁   석양교목사인수   교목에 석양이 비끼면 옛 근심 솟아나네

 
煙霞冷落殘僧夢   연하냉락잔승몽   연하는 남은 승에게 쓸쓸히 보이고
歲月觴嶸破塔頭   세월쟁영파탑두   세월은 빛나 파탑 위에 비치었구나

 
黃鳳羽歸飛鳥雀   황봉우귀비조작   봉황새 어디 가고 잡새들 만 오락가락
杜鵑花落牧羊牛   두견화락목양우   두견화 진 곳에는 소와 양이 풀을 뜯네

 
神松憶得繁華日   신송억득번화일   옛 솔에 번화롭던 그날이 생각나니
豈意如今春似秋   기의여금춘사추   어찌 알았으랴 지금 이 봄이 가을인 듯한 것을


 

 

            小柏舟   소백주   조그만 잣 배
    
 
汎彼中流小柏舟   범피중류소백주      저 강 복판에 떠 있던 조그만 잣나무 배
幾年閑盛碧波頭   기년한성벽파두      몇 해나 이 물가에 한가로이 매였던고
後人若問誰先渡   후인약문수선도      누가 먼저 건넜느냐 사람들이 묻는다면
武兼全萬戶侯       문무겸전만호후      문무를 모두 갖춘 만호후라 하리

 


 

        청산리(靑山裡) 벽계수(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도라오기 어려오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수여 간들 엇더리

 

    - 이 시조는 당대의 이름난 풍류객인 벽계수를 꼬시려고 明月 黃眞伊가 불렀다는 시조이고

     - 여기서 이 시조의 창을 들어면서 황진이의 다음 시조들을 둘러봅시다.

        click=> 청산리 벽계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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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더냐.

      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타야

      보내고 그리는 정(情)은 나도 몰라 하노라.

     

        - 아래는 이 시조의 현대문 풀이 입니다.

        [아하! 내가 한 일이여, 그리워질 줄 몰랐더냐

         있어 달라 했던들 갔으랴만 내 구태여

         보내고 그리워하는 정(情)은 나도 몰라 하노라.]

        - 고려 가요 '가시리'와 소월의 '진달래꽃'과 같은 맥락에 있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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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산(靑山)은 내 뜻이오 녹수(綠水)는 님의 정(情)이

     녹수(綠水) 흘러간들 청산(靑山)이야 변할손가

     녹수(綠水)도 청산(靑山)을 못니져 우러예어 가는고

 

     - 이번에는 자신이 靑山이 되고 그의 정인(情人)은 綠水가 됩니다.

         무슨 여자가 이리도 통이 크나. 아, 무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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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 아니로다

       주야(晝夜)로 흐르나니 옛 물이 이실소냐

      인걸도 물과 같아야 가고 아니 오노매라

 

     - 유명한 어느 큰 스님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진이는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 아니로다'라고 하는군요.

         그녀(女)를 기녀로 데리고 놀던 양반님들 선비님들

         이 시조에 이르러서는 아마 자기자신이 부끄러웠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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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진이(黃眞伊), 妓名: 明月, 조선 중종때 여인.

        아무 꺼리낌 없이 자유분망하게 하고 싶은 짓 다 하고 살다간 여인:

        그 시대에 여인으로써 금강산 구경까지 다하고--

 

        "미모와 가창뿐만 아니라 서사(書史)에도 정통하고 시가에도 능하였으며, 당대의 석학 서경덕(徐敬德)을 사숙하여 거문고와 주효(酒肴)를 가지고 그의 정사를 자주 방문, 당시(唐詩)를 정공(精工)하였다고 한다.
그러한만큼 자존심도 강하여 당시 10년 동안 수도에 정진하여 생불(生佛)이라 불리던 천마산 지족암의 지족선사(知足禪師)를 유혹하여 파계시키기도 하였고, 당대의 대학자 서경덕을 유혹하려 하였으나 실패한 뒤 사제관계를 맺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또한, 박연폭포(朴淵瀑布)·서경덕·황진이를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 하였다고 한다."

 

황진이는 16세기에 활동한 우리 나라의 이름 있는 기생이다. 그녀는 개성에서 살던 황진사의 첩의 딸로 태어났다. 호는 명월이었다.  황진이 그림이 들어간 우표
황진이는 어려서부터 수려한 용모에 서예와 가무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서 그 소문이 각지에 퍼졌고 또 많은 일화도 남겼다.


황진이가 15세 되던 해의 일화이다. 한동네에 살던 총각이 그녀를 짝사랑하던 나머지 상사병에 걸려 죽었는데, 총각의 상여가 황진이의 집대문앞에 이르자 말뚝처림 굳어져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죽은 총각의 친구가 이를 황진이에게 알리자 황진이는 소복단장을 하고 달려나가 자기의 치마를 벗어, 관을 덮어 주었는데 그 제서야 상여가 움직이더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일로 인하여 그녀가 기생이 되었다고도 한다.   

 
황진이는 첩의 딸로서 멸시를 받으며 규방에 묻혀 일생을 헛되이 보내기 보다는 봉건적 윤리의 질곡 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였다. 그 결심을 실천하자면 당시 그의 신분으로서는 불가능하였으므로 오직 길이라면 기생의 인생을 걷는 것이었다.


당시 개성 사람들은 용모와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황진이를 화담 서경덕.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 3절(3가지 뛰어난 것)으로 꼽으며 자랑하였다. 황진이는 주로 남녀간의 애정을 짙은 서정으로 섬세 하면서도 자유분방하게 표현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는데 이 시조는 그러한 대표작의 하나다.


청산은 내 뜻이요 녹수는 님의 정이요  
녹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손가
녹수도 청산 믓잊어 울어예어 가는고


자유분방한 성격의 황진이는 경치 좋은 곳을 유람하기를 좋아했는데 그러한 황진이가 금강산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날 그의 명성을 듣고 있던 서울의 한 젊은이가 개성으로 놀러 왔다. 유람을 좋아한다는 그의 말에 황진이는 금강산을 같이 가자며 말했다.
"이웃나라 사람들도 우리나라에 태어나 금강산을 한번 보는 것이 원이라 하였거든 우린 조선 사람으로서 제나라에 있는 금강산을 못본다면 어찌 수치가 아니겠소. 우연히 당신을 만나고보니 가히 동무하여 유람을 갈 만하오."
젊은이도 선뜻 응해 나섰다.


황진이는 번잡한 행장을 다 버리고 굵은 삼베치마를 입고 망태를 썼으며 손에는 지팡이를 들었다. 동행인 젊은이 또한 무명옷에 삿갓을 쓴 봇짐차림 이었다. 얼핏 보면 허물없는 오누이 같은 그들의 차임새는 까다로운 남녀간의 예의범절을 벗어나 금강산의 경치를 마음껏 즐기려는 여유가 엿보였다. 유람길에 나선 그들은 수 백리 길을 걸어서 금강산에 이르렀다. 과연 소문대로 금강산의 절경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으며, 날마다 희열에 넘쳐 금강산의 명소들을 둘러보며 서로 노래도 부르고 화답시도 지으며 산천경개를 즐기느라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꿈같은 유람에 어느덧 노자도 떨어져 거의 굶다시피하는 지경이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같이 갔던 젊은이와도 헤어지게 되었다. 그러한 지경에도 황진이의 유람은 계속되었다. 여행중에 다친 다리를 이끌고 민가나 절간에서 밥을 빌어 먹으면서도, 금강산의 명소들을 다 돌아보고서야 그곳을 떠났다. 한 여인의 행적으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이 이야기는 황진이의 성품이 가장 잘 나타난 일화이다.


마흔살을 전후로 하여 세상을 떠난 황진이는 살어 생전에 많은 일화와 시를 남겼지만 금강산을 노래한 그의 시가 남아있지 않음이 유감일 따름이다.

출처 : 송당보금자리
글쓴이 : 송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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