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행촌 이암

똥하 2009. 7. 5. 08:55

홍행촌(紅杏村) 이암(李嵒): 본관 고성(固城). 초명 군해(君). 자 고운(古雲). 호 행촌(杏村). 시호 문정(文貞). 1313년(충선왕 5) 문과에 급제, 비서성교감(秘書省校勘)을 시작으로, 여러 관직을 걸쳐 충혜왕 때는 밀직대언 겸 감찰집의(密直代言兼監察執儀)가 되었는데, 1332년 충숙왕이 복위했을 때 유배되었다. 1340년(충혜왕 복위 1)에 충혜왕이 복위, 다시 불러들여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정당문학(政堂文學)·첨의평리(僉議評理) 등을 역임하였다. 1344년(충목왕 즉위) 정사도(鄭思度)와 함께 정방제조(政房提調)에 임명되었는데, 환관 고용보(高龍普)가 인사를 문란하게 하는 것을 탄핵했다가 오히려 밀성(密城)에 유배되었다.

충목왕이 죽은 뒤 충정왕을 왕으로 세우기 위하여 원(元)나라에 갔다와 추성수의동덕찬화공신(推誠守義同德贊化功臣)의 칭호를 받았으며, 찬성사를 거쳐 좌정승이 되었다. 공민왕 즉위 후 철원군(鐵原君)에 봉해졌고 후에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에 제수되었다.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이 개경을 침략하므로 왕의 안동 몽진에 호종하고, 이듬해 좌정승이 되었으나 사퇴하였다. 1363년 시종한 공로로 1등공신으로 철원부원군(鐵原府院君)에 봉해지고, 추성수의동덕찬화 익조공신(翊祚功臣)의 호를 받았다. 묵죽(墨竹)에 뛰어났고, 특히 예(隸)·초(草)서를 잘 써, 조맹부(趙孟)와 쌍벽을 이루었으며, 문수원장경비(文殊院藏經碑)에 글씨가 남아 있다. 1375년(우왕 1) 충정왕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단군세기(檀君世紀) 서(序)]

이 글은 환단고기(桓檀古記) 중 고려 공민왕 12년(1363년) 10월 3일에, 홍행촌(紅杏村) 이암(李嵒)이 지은 [단군세기(檀君世紀) 서(序)]로 몇차례 나누어 연재하려 합니다. 많은 참고 있으시기 바랍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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