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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불교강의-<2> 보르헤스의 불교사상

똥하 2009. 3. 30. 22:32

보르헤스의 불교강의 - <2>보르헤스의 불교사상

 

20세기가 저무는 지금 보르헤스가 인구에 회자되는 이유는 그의 작품이 서구의 지성들에게 끼친 영향력 때문이다. 이성을 중시하는 헤레니즘과 계시를 중시하는 헤브라이즘 사이에서 사상적 변전을 거듭해왔던 서구사상의 흐름이 18세기 이후 계몽주의와 과학주의에 의해 이성 중심의 극단적 지적 편향을 보였을 때, 편협한 이성주의의 한계를 누구보다 먼저 예리하게 지적하고 그 극복 대안을 제시한 사람이 보르헤스이다.

20세기 후반부에 세계 지성계를 리드하는 미셀 푸코, 자크 데리다, 모리스 블랑쇼, 쥬네트 등 프랑스 후기구조주의 철학자들과 평론가들 그리고 존 가드너, 토마스 핀천, 존 바스 등 미국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한결같이 그들의 사상적 원천으로서, 정신적 아버지로서 보르헤스를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보르헤스가 그들에게 끼친 공통된 영향은 그가 보여준 ‘이성주의적 이분법-주체와 객체, 자아와 차아등-의 붕괴’이다. 보르헤스의 이런 사상은 물론 불교사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불교에 대한 보르헤스의 관심은, <알레프>에서 보여준 불타가 깨달음에 도달한 순간에 직관했던 시공을 초월한 세계의 모습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 ‘깨달음의 내용’에 초점을 맞춘다.

불타가 녹야원에서 처음 법륜을 굴렸을 때의 설법이 그 ‘깨달음’의 내용을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고, 집, 멸, 도의 사성제와 그 바탕이 되는 삼법인 즉 제행무상(諸行無常), 일체개고(一切皆苦), 재법무아(諸法無我)이다.

 

석가가 깨달은 내용의 핵심을 전하는 사성제와 삼법인은, 현실의 실상을 직시한 결과로 보게된 인간 존재의 참된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을 구성하는 오온은 실체가 없어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고이며, 고의 원인은 인간의 집착에서 오며, 집착은 인간의 무지에서 온다. 여기서 보르헤스는 서구의 이성주의가 안고 있는 고를 깨닫고 그것이 신, 로고스 혹은 제일원인 같은 ‘근원’과 ‘중심’에 대한 집착에서 온 것이라고 보았다.

보르헤스는 근원과 중심을 추적해 보았다. 그것은 형이하학적, 공간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었다. 우리가 보고 만질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중심은 바티칸에도, 예루살렘에도, 메카에도 없었다. 따라서 형이상학적인 중심을 추구할 수 밖에 없고, 그때 그가 만난 세계의 중심은 ‘한권의 신성한 책’ 혹은 ‘도서관’이었다. 이때부터 보르헤스에게는 ‘도서관’의 이미지가 항상 따라다녔다. 그는 도서관에서 태어나, 도서관에서 살다가, 도서관에서 죽고, 도서관에 묻힌 작가였다.

 

그러나 그는 그가 추구했던 책과 도서관을 영원히 만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담고 있고 모든 것의 근원을 담보하는 한권의 신성한 책을 상정하면, 그 순간 그 책은 이미 다른 ‘책’의 존재를 인정해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즉 어떤 책도 고유의 실체를 가진, 자성을 지닌 책이 될수 없기 때문이었다.

책이 성립하려면, 언어의 체계가 사전에 필요하고, 언어의 체계는 인간의 사회가 형성되어야 하고… 즉 모든 책은 끊임없이 이전의 다른 책의 존재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그가 깨달은 것은 ‘제법무아’였다. 모든 책은 고유한 자성을 가질 수가 없다. 모든 책은 다른 책들과의 인연소기(因緣所起) 관계에 놓여져 있는 것이었다. 중심이 해체되고, 근원이 부정되자, 그의 관심을 끈 것은 텍스트들의 관계성이었다. 이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이론인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이다.

현상적인 모든 사물은 모두 인(직접원인)과 연(간접원인)에 따라 생긴다고 보는 연기론에 텍스트를 대입하면 그대로 상호텍스트성 이론이 되는 것이다. 모든 사상(事象)이 서로 관계되어 성립하는 것처럼, 모든 책은 이전과 이후의 다른 책들과 밀접한 연관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결국 근원적인, 세계의 중심이 되는, 오리지날한 책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중심의 부정은 ‘다원(多元)’을 낳고, 실체의 부정은 ‘상호관계성’을 낳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개념중의 하나인 ‘다원주의’는 이렇게 ‘상호텍스트성’과 동전의 앞뒤면같은 관계를 가진다.

 

한편 한권의 책이 다른 책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성립된다면, 독창적인 작품을 생산하는 작가라는 개념도 의심받게 된다. 과연 그만의 오리지날한 작품을 쓰는 작가가 존재할 수 있는가? 제법무아는 ‘작가’에게도 어김없이 적용되고, 작가도 연기법-상호텍스트성을 벗어날 수 없다.

여기서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의 또 하나의 핵심적인 개념인 ‘작가의 죽음’이 탄생한다. 색과 공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존재의 연기성(空性)을 깨달아 진공정도(眞空正道)의 정관을 얻는다는 용수의 <중론>이 이룩한 ‘부정의 극복을 통한 대긍정’의 가르침대로, 작가의 죽음이라는 부정적 성격은 ‘독자의 탄생’이라는 긍정적 창조를 낳는다. ‘소아(小我·작가)’의 죽음 뒤에 따르는 해방된 ‘대아(大我·독자)의 탄생은 문학행위의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즉 한 텍스트에 대한 모든 권위와 도그마는 사라지고, 모든 텍스트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앞에 그대로 노출되게 된 것이다. 모든 책은 자기만의 완고하고 허위투성이의 자성(유일한 해석)을 버리고, 다른 텍스트들과 대화를 시작하게 된다. 여기서 종교다원주의적 발상이 싹트게 된다.

 

제법무아의 시각에서 세계가 공이라고 하는 사상은, 객관적 현상을 실체로 인정하고 그 드러난 모습에 충실하려는 리얼리즘 문학과는 양립하기가 어렵게 된다. 보르헤스는 리얼리즘 작가들과는 달리 현실을 공(空)으로 보았다. 그는 ‘공’을 서구적인 용어 내에서 ‘환상(幻想)’ 혹은 ‘환영(幻影)’으로 표현했다. 만일 현실 자체가 환영(마야)이라면, 그 현실을 충실하게 그려낸 문학작품은 ‘환상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을 충실히 반영하면 할수록, 그 작품은 더욱 환상적이 된다. 그는 자신의 문학을 ‘환상적 사실주의’라고 부른다. 환상적 사실주의는 ‘색즉시공’의 문학적 표현이기도 하다.

 

제법이 무아라는 것, 제행이 무상이라는 것, 세상의 중심이 없다는 것 등의 생각은 현실에 대한 정직한 직시에서 나온 것들이다. 이것은 결코 부정적인 생각이 아니다. 오히려 무아이기 때문에 모두가 세상의 주인공이 된다. 무상이기 때문에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세계의 중심이 없기 때문에 내가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 보르헤스의 글들은 서구의 많은 지식인들에게 그들에게 부족했던 것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의 씨앗을 제공했다.

 

편역:김홍근<외대강사·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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