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사

[스크랩] 고려 22대 강종 실록

똥하 2008. 11. 19. 20:07

 1. 강종의 황혼녘 짧은 치세

   (1152~1213년, 재위기간 : 1211년 12월~1213년 8월, 1년 8개월)


   강종(康宗)은 명종의 맏아들이자 의정왕후 김씨 소생으로 1152년 4월 을사일에 태어났으며, 초명은 숙(璹), 개명은 정(貞), 이름은 오(祦), 자는 대화(大華)이다. 1173년 4월에 태자로 책봉되었으나 1197년 9월 최충헌에 의해 명종이 쫓겨날 때 강화도에 유배되었다. 그 후 줄곧 강화에서 지내다가 1210년 12월에 개경으로 돌아왔으며, 1211년 정월에 한남공에 봉해졌다가 그해 12월에 최충헌이 희종을 폐위시키고 그를 옹립함에 따라 고려 제22대 왕에 즉위하였다. 이 때 그의 나이 60세였다.

   강종은 어린 시절부터 무신정권의 틈바구니 속에서 목숨의 위협을 느끼며 지냈으며, 태자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무신들의 기세에 눌려 제대로 말 한 마디 못하고 살았다. 그리고 급기야 무신들에 의해 부왕 명종이 강제로 폐위 당함에 따라 14년 동안 강화도에서 유배생활을 해야 했다. 따라서 그에게 왕위가 넘어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희종이 왕권 회복을 위해 최충헌을 제거하려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환갑을 앞둔 나이로 곤룡포를 입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강종은 고령인 데다가 오랜 유배생활로 이미 병든 몸이었기 때문에 왕위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 최충헌이 머무르던 흥녕부를 진강부로 고치고 그에게 무녕무위향리조안공신의 칭호를 주었으며, 국사 전반에 관한 모든 업무를 최충헌이 별감으로 있던 교정도감에 일임하였다.

   그리고 1213년 8월 지병으로 병상에 누웠으며, 그달 정축일에 태자 진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62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임종을 앞두고 그가 내린 조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가 변변치 못한 사람으로 임금의 자리에 오른 지가 이제 몇 년째 되었는데, 박덕하여 중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병으로 위독하게 되었다. 임금의 자리는 잠시도 비울 수 없기에 태자 진의 덕행이 인방의 동의를 얻을 만하고 그의 총명은 아랫사람들을 능히 통솔할 만하므로 그에게 왕위를 주어 중대하고 어려운 일을 맡기노니 여러 백관들은 각기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새 임금에게 복종하라. 나의 죽음 후 능묘 제도는 검박과 절약을 앞세우도록 하며 한 달 입을 상복을 3일 후에 벗게 하라.”

   강종에 대해 사관은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강종이 임금으로 있을 때 일체 정사는 강신(强臣)들의 통제를 받았으며, 갑자기 병에 걸려 국왕으로서의 행복을 누린지가 며칠 되지 않으니 슬픈 일이로다.”

   강종의 능호는 후릉이며, 그 위치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2. 강종의 가족들

   강종은 사평왕후 이씨와 원덕왕후 유씨 2명의 부인을 두었으며, 그들에게서 고종과 수녕궁주를 얻었다.


   사평왕후 이씨(생몰년 미상)

   사평왕후 이씨는 이의방의 딸이다. 강종이 태자로 있을 때 이의방의 권세에 의지하여 1174년 3월에 태자비로 책봉되었다. 하지만 그해 12월에 정중부의 아들 정균에 의해 이의방이 살해되면서 입궁 9개월 만에 대궐에서 쫓겨났다. 그 후 강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후에 추존되었다. 소생으로는 수녕궁주가 있으며, 생몰연대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원덕왕후 유씨(?~1239년)

   원덕왕후 유씨는 종실 신안후 성의 딸이다. 사평왕후 이씨가 대궐에서 쫓겨난 후 태자비에 책봉되어 입궁하였으며, 1212년에 연덕궁주에 봉해졌다. 그리고 아들 고종이 왕위에 오른 후 태후에 봉해졌으며, 1239년에 생을 마감하였다. 소생으로는 고종이 있으며, 능호는 곤릉이다.

출처 : 운현 시조정가교실
글쓴이 : 운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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