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달을 그리지 않고 달을 그리는 법

똥하 2010. 12. 23. 05:45

화가가 달을 그리지 않고 달을 그리는 방법과,

시인이 말하지 않고 말하는 수법 사이에는 공통으로 관류하는 정신이 있다.
구름 속을 지나가는 신룡(神龍)은 머리만 보일 뿐 꼬리는 보이지 않는 법이다.
“한 글자도 나타내지 않았으나 풍류를 다 얻었다(不著一字, 盡得風流)”는 말이 있다.
또 “단지 경물을 묘사할 뿐이나 정의(情意)가 저절로 드러난다(只須述景, 情意自出)”고도 한다.
요컨대 훌륭한 한 편의 시는 시인의 독백으로써가 아니라 대상을 통한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iative)의 원리로써 독자에게 전달된다.

 

즉 시인은 자신의 정서를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 대상 속에 응축시켜 표달해야 한다.
그래서 “산은 끊어져도 봉우리는 이어진다(山斷雲連)”는 말이 나왔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은 구름 위에 삐죽 솟은 봉우리의 끝뿐이다.
그렇다고 구름 아래에 봉우리가 없는가. 다만 가려져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이와 같이 “말은 끊어져도 뜻은 이어진다(辭斷意屬).” 시 속에서 시인이 말하고 있는 것은

구름 위에 솟은 봉우리의 끝뿐이지만,
그것이 결코 전부는 아니다. 시인이 진정으로 하고자 하는 말은 구름 아래 감춰져 있다.

 

정민의 <한시미학산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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