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스크랩] 16성, 500성, 1250제대아라한

똥하 2010. 11. 17. 16:58
 

  이상 10대제자에 대한 예경에 이어 예경문은 ‘16명의 아라한[十六聖]’ 내지 ‘500명의 아라한[五百聖]’, 그리고 홀로 도를 닦아 아라한의 경지에 오른 ‘독수성(獨修聖)’에 대한 예경을 행하고 있으며, 마침내는 부처님 재세시 언제나 부처님을 따라다녔던 ‘1,250명의 대아라한’들께 대한 예경을 행하고도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고 있는 아라한이란 무엇인가? 

 

  아라한(阿羅漢)은 산스끄리뜨어 arhan의 음역으로, 응공(應供)‧응(應)‧살적(殺賊)‧불생(不生)‧무생(無生)‧응진(應眞)‧진인(眞人) 등으로 번역된다. 소승불교(小乘佛敎)에서 최고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성자를 지칭하는 말로, 부처님 역시 아라한 중 한 분으로 섬기는 경우가 있었다.

 

  이들 아라한을 칭하는 번역어로서 ‘응(應)’ 내지 ‘응공(應供)’이란 그들의 높은 수행 정도로 인해 중생들의 공양[供]에 마땅히 응할[應] 수 있는 이들임을 뜻한다. 또한 ‘살적(殺賊)’이란 모든 번뇌의 적(賊)을 죽여 없앤다[殺]는 뜻으로, 그러한 그들은 열반의 세계에 들어 또다시 태어남을 겪지 않으리니, 그러한 까닭에 ‘불생(不生)’이며 ‘무생(無生)’이란 용어로 아라한을 달리 칭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아라한들은 우주 세계의 모든 진리[眞]를 터득한 이들[人]로서, 그들을 ‘진인(眞人)’ 또는 ‘응진(應眞)’이라 부르기도 하며, 절에 있는 많은 전각(殿閣) 중 ‘응진전(應眞殿)’이란 이들 아라한들을 모셔 두는 건물을 의미한다.


      ② 16명의 아라한

  이상의 내용을 전제로 ‘16명의 아라한’ 내지 ‘500명의 아라한’, ‘1,250명의 대아라한’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로 하겠는데, 경전 󰡔대아라한난제밀다라소설법주기(大阿羅漢難提蜜多羅所說法住記:일명 󰡔법주기󰡕)󰡕에 서술된 바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즉 부처님께서는 열반에 이르를 즈음 16명의 아라한과 아울러 그들 권속들에게 무상법(無上法)의 진리를 부촉(付囑)하셨으며, 그들 아라한들은 불법의 멸함을 막고 호지(護持)한 채 이후 미륵불께서 세상에 출현하실 때까지 모든 중생들의 복전(福田)이 되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법주기(法住記)󰡕는 아라한들의 명칭 및 그들이 거주하는 곳 등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 그 외의 자료들과 더불어 그들 각각 ‘16명의 아라한’들에 대한 세부적 설명을 행하면 다음과 같다.


   󰊱 빈두로파라타(賓頭盧頗羅墮, Piṇḍolabharadṿāja)

  흰머리에 길다란 눈썹의 형상을 한 부처님 제자로, 빈두로는 그의 이름, 파라타는 그의 성(姓)이다. 발차국(跋蹉國)의 구사미성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부처님께 출가한 그는 부처님 성도 후 6년, 왕사성의 외도들 앞에서 신통을 나타냈다가 부처님의 책망과 꾸지람을 듣고, ‘서구타니주(西瞿陀尼洲)’에 머물며 이후 미륵불 출현시까지 세상에 남아 말세 중생을 제도할 것을 명 받았다. 그의 권속 1,000명의 아라한과 더불어 서구타니주에 머물며 불멸후의 중생을 제도하며, 말세의 공양을 받아 중생들의 대복전이 되어질 것이라는 뜻에서 ‘주세(住世) 아라한’이라 불리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독성(獨聖) 또는 나반존자(那畔尊者)라 불리기도 하는 채 공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 가낙가벌차(迦諾迦伐蹉Kanakavatsa)

    그의 권속 500명의 아라한과 더불어  ‘북방 가습미라국(北方迦濕彌羅國)’에 머물러 불법을 보호‧확산하고 계신 분으로, 왼쪽 어깨에 지팡이를 두고 양손은 결인(結印)을 짓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 가낙가발리타사(迦諾迦跋釐墮闍, Kanakabharadvāja)

  그의 권속 600명의 아라한과 더불어 ‘동승신주(東勝身洲)’에 머물러 불법을 수호하며 중생을 이롭게 하는 성자로서, 오른손에 불자(拂子)를 든 모습으로 그려진다.


  󰊴 소빈타(蘇頻陀, Subinda)

  그의 권속 700명의 아라한과 더불어 ‘북구로주(北俱盧洲)’에 머물며 정법을 수호하고 있는 성자로, 돌 위에 결가부좌를 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돈황의 천불동 계곡 76굴 벽화에 그의 인물 형상이 남아 있다.


   󰊵 낙거라(諾矩羅, Nakula)

 그의 권속 800명의 아라한과 더불어 ‘남섬부주(南贍部洲)’에 머물러 정법을  수호하며 중생을 이롭게 하고 있는 성자로, 돌을 의자삼아 앉아 있는 채, 양손으로는 여의(如意;뼈나 뿔, 대나무‧나무 등으로 사람 손모양을 만들어 가려운 곳을 긁는 도구로, 후대에 이르러 법사가 설법할 때 지니는 법구로 용도가 전환된 것)를 쥐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돈황 천불동 76굴에 그의 형상이 남아 전한다.


   󰊶 발타라(跋陀羅, Bhadra)

  그의 권속 900명의 아라한과 더불어 ‘탐몰라주(耽沒羅洲)’에 머물러 정법을 수호하는 한편 중생을 이롭게 하는 성자로, 바위 위에 가부좌하여 앉아 있는 채 왼손에 염주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역시 돈황 천불동 76굴에 그의 형상이 남아 전한다.


   󰊷 가리가(迦哩迦, Kālika)

  그의 권속 1,000명의 아라한과 함께 ‘승가다주(僧伽茶洲)’에 머물며 정법수호 및 중생을 이롭게 하는 성자로, 바위 위에 안좌해 있는 채 긴 눈썹을 한 인상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 벌사라불다라(伐闍羅弗多羅, Vajraputra)

  그의 권속 1,100명의 아라한과 함께 ‘발자나주(鉢刺拏洲)’에 머물며 정법수호 및 중생을 이롭게 하는 성자로, [중아함경]에 의하면 부처님께서 이미 열반하시고 난 후 아직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부처님 제자 아난다를 위해 가르침을 베풀었으며, 아난다는 그의 가르침에 힘입어 욕심을 여읜 채 아라한과를 증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상반신의 법의를 벗고 바위에 앉아 있으며, 그 왼쪽 옆에는 패엽경(貝葉經)이 함께 그려진다.


   󰊹 술박가(戌搏迦, Jīvaka)

  그의 권속 900명의 아라한과 함께 ‘향취산(香醉山)’ 가운데 머물러 정법수호 및 중생들의 복덕 증장을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 성자로, 바위 위에 앉아 계신 채 왼손에는 불선(拂扇;부채)을, 오른손은 세 손가락을 구부린 모습으로 묘사된다.


  [10] 반탁가(半託迦, Panthaka)

  그의 권속 1,300명의 아라한과 더불어 ‘33천’ 가운데 머물러 정법수호 및 중생들의 복덕 증장을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 성자로, 대로변생(大路邊生)이라 번역되는 그의 이름은 큰길가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붙여진 것이다. 작은 길가에서 태어났다 하여 이름 불리워진 소로변생(小路邊生), 즉 아둔함  가운데서도 열심히 수행하여 성인의 경지에 오른 주다반탁가(注茶半托迦, Cūḍaipanthaka)의 형으로, 중인도 사위성에서 바라문의 아들로 태어나 바라문으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학문을 배우고 크나큰 지혜를 얻어 500명에 달하는 제자들이 그를 찾아 가르침을 배웠다고도 한다. 이후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동생 주다반탁가와 함께 출가하여 부처님 제자가 되었으며, [증일아함경] 설명에 의할 것 같으면 신통력이 자재하여 능히 자신의 몸을 숨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바위 위에 좌구(坐具)를 깔고 결가부좌를 하고 있는 모습으로, 양손에는 경전을 들고 그것을 독경하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11] 라호라(羅怙羅, Rāhula)

  그의 권속 1,100명의 아라한과 더불어 ‘필리양구주(畢利颺瞿洲)’에 머물러 정법수호 및 중생들의 복덕 증장에 힘쓰고 계시는 성자로, 10대제자 중 밀행제일인 라후라(羅睺羅)와 동일 인물로 여겨진다.


   [12] 나가서나(那伽犀那, Nāgasena)

  그의 권속 1,200명의 아라한과 더불어 ‘반도피산(半度波山)’에 머물러 정법수호 및 중생들의 복전이 되고 있는 성자로, 통견(通肩) 법의를 입은 채 바위에 걸터앉아, 입을 벌리고 혀를 약간 내 밀은 모습으로 그려진다.


   [13] 인게타(因揭陀, Aṅgaja)

  그의 권속 1,300명의 아라한과 더불어 ‘광협산(廣脇山)’ 가운데 머물러 정법수호 및 중생들의 복전이 되고 있는 성자로, 왼손에는 경전을 얹고 오른손으로는 구슬을 받들며 그 어깨에는 지팡이를 기댄 채 앉아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14] 벌나바사(伐那婆斯, Vanavās)

  그의 권속 1,400명의 아라한과 더불어 ‘가주산(可住山)’ 가운데 머물러 정법수호 및 중생들의 복전이 되고 있는 성자로, 암굴 내에 결가부좌를 하고 앉은 채 법복으로는 양어깨를 가리고 눈을 감고 선정(禪定)에 들어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15] 아씨다(阿氏多, Ajita)

  영구히 이 세계에 머물러 중생들을 제도하라는 부처님 칙명을 받고, 그의 권속 1,500명의 아라한과 더불어 ‘취봉산(鷲峯山)’ 가운데 주처(住處)를 정한 채 정법수호 및 중생들의 복전이 되고 있는 성자로, 양손으로는 무릎을 포개 안고 입을 연 채 눈은 하늘을 우러러치아가 드러난 형상으로 그려진다.


   [16] 주다반탁가(注茶半托迦, Cūḍapanthaka)

  그의 권속 1,600명의 아라한과 더불어 ‘지축산(持軸山)’ 가운데 머물러 정법수호 및 중생들의 복전이 되고 있는 성자로, 소로변생(小路邊生)이라 번역되는 그의 이름은 작은 길가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붙여진 것이다. 주리반특(周利槃特)이라 불리기도 한다. 16아라한 중 10번째에 해당하는 반탁가(半託迦)의 동생으로, 품성이 우둔하여 하나를 배우면 금방 잊어버리는 까닭에 사람들은 그를 놀려대었으나, 부처님께서 일러준 ‘불진제구(拂塵除垢)’라는 말을 한없이 암송하며 모든 비구들의 신발을 깨끗이 닦는 수행을 하던 중 모든 업장이 소멸하고 활연개오하여 아라한의 과위를 증득하였다. 깨달음이 있은 후 신통력을 구족하여 능히 각종 형상의 이치를 바라볼 수 있었다고 한다. 고목 가운데 앉아 왼손을 드러내 무언가를 가리키는 형상으로 묘사된다.


      ③ 500명의 아라한 및 1,250명의 대아라한

  위에 설명한 ‘16명의 아라한’에 이어 예경문은 ‘500명의 아라한’ 및 ‘1,250명의 대아라한’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그들은 과연 어떤 인물들을 일컫는 것일까?

 

  우선 ‘500명의 아라한’에 대해 말해 보면, 그에는 몇 가지 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법화경(法華經)󰡕 「500제자 수기품」에 기록된 500명의 제자들, 이후 세상에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될 것이라 석가모니부처님으로부터 수기(授記)를 받은 500명의 제자를 ‘500명의 아라한’이라 칭한다는 것이다.

 

  한편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그 해에 부처님 상수제자 마하 가섭(摩訶迦葉)은 왕사성(王舍城) 칠엽굴(七葉窟)에서 깨달음에 이른 500명의 아라한들을 소집한 채 부처님께서 남기신 교설들을 모아 최초 경전결집을 행하였는데, 당시 그곳 왕사성 칠엽굴에 모여 경전결집에 참여한 이들을 ‘500명의 아라한’이라 불러 말하기도 한다.

 

  또한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600년이 지난 후, 인도의 카니시카(Kaniṣka, 迦膩色迦) 왕은 협 존자(脇尊者) 및 세우 존자(世友尊者) 등을 중심으로 500명의 비구들을 불러모아 ‘제4차 경전결집’을 행하여 경‧율‧론 삼장(三藏)을 재해석한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 200권을 집성했던 바, 이때의 경전 결집에 참여한 500명의 스님들을 ‘500명의 아라한’이라 불러 말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잡아함경(雜阿含經)] 및 계율과 관련된 내용을 전하고 있는 󰡔사리불문경(舍利弗問經)󰡕에 의할 것 같으면, 인도 아쇼카 왕의 4대손 불사밀다라(弗沙蜜多羅, Puṣyamitra) 왕은 아쇼카 왕이 쌓은 모든 탑을 허물고 비구들을 죽여 당시의 불교를 소멸시킨 후 ‘500명의 아라한’들을 불러모아 다시금 불법을 중흥시켰다고도 하는 바, 이 모든 항목 가운데 등장하는 ‘500명의 아라한’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예경.

 

  이후 예경문은 ‘1,250명의 대아라한’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들 ‘1,250명의 대아라한’이란 또한 어떤 인물들을 칭하는 것일까?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과거현재인과경(過去現在因果經)󰡕의 내용을 인용해 보기로 한다.


  “야사(耶舍)장자 아들의 친구 50인과, 우루빈라 가섭(優樓頻螺迦葉)과 그의 제자 500인, 나제 가섭(那提迦葉)과 그의 제자 250인, 가야 가섭(伽耶迦葉)과 그의 제자 250인, 사리불(舍利弗)과 그의 동료 100인, 목건련(目犍連)과 그의 동료 100인을 합한 것을 말한다. 이 1,250인은 먼저 외도를 섬겼으나 뒤에 부처님의 교화를 받아 증과(證果)를 얻었다. 이들은 부처님의 은혜를 느껴 법회 때마다 항상 따라다니며 떠나지 않았으므로, 모든 경(經)의 첫머리에 대중을 열거하는데 흔히 1,250인이 나온다.”


  이상의 인용을 통해 우리는 ‘1,250명의 대아라한’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얻을 수 있었는 바, 󰡔법화경󰡕 설명에 의할 것 같으면 이들 ‘1,250명의 대아라한’들 역시 부처님으로부터 수기(受記)를 얻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한편 예경문 가운데 독수성(獨修聖)이란 표현이 등장하고 있는데, 독수성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독수성은 달리 독각(獨覺) 또는 연각(緣覺)이라 불리기도 하며, 산스끄리뜨어 pratyekabuddha의 음역(音譯)으로서 발랄예가불타(鉢剌翳迦佛陀)라 표현되기도 한다. ‘홀로 도를 닦아 아라한의 경지에 오른 성인’, 즉 타인의 가르침에 의하지 않고 자신 스스로의 힘으로 깨달음을 이룬 까닭에 벽지불(辟支佛) 또는 독각(獨覺)이라 불리우며, 12인연의 이치를 깨달아 모든 번뇌에서 벗어났다 하여 연각(緣覺)이라 칭하기도 한다.

 

  이들은 부처님 없는 무불세계(無佛世界)에 태어나 스스로 체득한 진리의 통찰 속에 깨달음에 이르른 성자로서, 부처님 가르침을 받아 깨달음에 이르렀으나 자기 혼자만의 해탈을 구하는 소승(小乘)의 성자 성문(聲聞, śrāvaka)과 함께 ‘깨달음의 고요’ 속에 머물러 진리에 대한 관상(觀賞)을 낙으로 삼고 있는 자들을 말한다.

 

  이들의 이러한 입장을 소승(小乘)이라 말하는 데 비해 대승(大乘) 즉, 대승불교의 핵심은 ‘깨달음의 고요’ 속에만 머뭄이 없이 깨달음의 진리를 뭇 중생들에게 회향(廻向)할 것을 권하고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성문‧연각의 ‘2승’도 아닌, 성문‧연각‧보살의 ‘3승’도 아닌 ‘일불승(一佛乘)’의 진리를 깨우쳐 ‘열려진 진리의 바다’에로 모든 중생들이 다함께 나아갈 수 있기를 대승불교 경전의 핵심 󰡔법화경󰡕은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출처 : 정각스님
글쓴이 : 정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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