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스크랩] 승려는 수행자, 생활인으로 살지 말라/설정스님

똥하 2009. 4. 29. 07:32

   
▲ 설정스님의 주석처인 정혜사.

수덕사 꼭대기. 봄비가 내리는 정혜사에서 만난 방장 설정스님은 단호했다.

 

한국불교는 절체절명의 위기이며,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다 망한다’고 했다.

 

빗줄기에 꽃잎은 떨어져 날렸지만 연두빛 새 잎은 봄비 덕분에 더욱 푸르게 빛났다.

 

먼저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불자들에게 들려줄 덕담을 청했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불자의 자세

부처님오신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불교의 최대 명절이고 부처님 오심을 찬탄하고 봉축하는 동시에 부처님이 살아가셨던 발자취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고 서로에게 다짐하는, 신앙인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는 어떠한가, 제대로 하고 있는가 반성해보고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새로운 수행인으로서의 원력을 세우는 때입니다.

 

세상이 상당히 어려워졌습니다. 동시에 불교계도 상당히 어렵습니다. 경제적인 위기, 또 민초들의 삶이 그만큼 고단해졌습니다. 우리 신앙인으로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현실적인 면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수많은 외침을 받아왔고 많은 시련을 겪어왔습니다.

 

또 불교의 입장에서는 조선왕조 500년 동안 질곡의 세월을 보냈고 일제 36년간 왜정에 의해서 불교가 원래의 모습을 잃었고 크나 큰 시련을 겪었고 해방 후에는 불교의 정화로 갈등하고 시비가 일었습니다. 그래서 불교가 스스로 서지 못하고 발전에 저해가 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불교의 정화를 달성했습니다만, 그 반면에 많은 부작용이 있었고 그 부작용이 지금도 조금씩 잔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를 합니다.

 

이런 어려움을 당했으면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위기는 어떤 면에서는 새로운 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위기는 항상 있는 것이고 또 어떤 곤란한 일들이 닥친다고 짐작을 해야 합니다. 어려울 때 절망하지 않고 부단한 인내로 노력할 때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좋을 때는 어려울 때를 대비하고 어려울 때는 좋을 때가 올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살아가야합니다.

 

설정스님이 덕숭총림 방장에 추대된 것은 3월 9일 임회에서였다. 종법에 따라 4월 2일 별도의 산중총회를 열어 다시 추대했다. 아직 중앙종회의 추대 절차가 남아있다.

 

   

설정스님은 지난 2일 산중총회 자리에서 추대를 수락하며 “방장이 아니라 방장 행자로서, 정진하는 사람으로 또 대중을 위하고 산중을 위하는 그런 마음으로 살겠다”며 “함께 탁마하자”고 했다.

 

덕숭총림 방장에 추대된 후

 

축하받을 일이 아니고 무한한 책임과 의무, 사명감을 느낍니다.

 

큰 돌덩어리를 짊어진 기분입니다. 덕숭산이라는 산이 근대 불교사에서 선종을 중흥했던 곳이고 아울러 경허 만공 수월 해월 한암 혜암 벽초 등 수많은 선사들을 배출한 곳입니다. 저를 방장으로 추대하는 산중총회에서 수락의 뜻을 밝히면서 ‘방장행자로 살겠다’라는 말을 했습니다만, 그것은 제가 만든 말이 아니라 옛 스님들의 말씀입니다.

 

오늘의 한국불교는 위기라는 진단이 안팎에서 들린다. 이에 대한 설정스님의 뜻을 물었다. 스님은 ‘머리만 커지고 팔다리는 허약한’ 기형적인 한국불교를 걱정했다.

 

오늘의 한국불교

한국불교는 머리는 큰데 가슴과 팔다리는 허약합니다. 말로는 수미산을 깨부술 경지지만 실제로 그러한 실천이 가능한지 돌이켜 봐야 합니다. 대승을 지향하면서도 소승보다도 실천이 부족합니다. 대승을 깨친 이만 실천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행일치와 지행합일. 실질 수행이 필요한 것이지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21세기 민중의 지도자가 되고 희망이 되기 위해서는 더 철저한 수행으로 살아야합니다.

 

설정스님은 수덕사를 지켜온 역대 고승의 자취를 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선맥을 잇기 위해서는 미래의 고승들이 있어야 한다. 스님들의 제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설정스님의 제자들

   

어떤 제자는 자랑스럽고 어떤 제자는 부끄럽다고 하는 생각은 없습니다만, 저는 상좌에 대한 애정이 부족한 모양입니다. 제 상좌라고 해도, 다른 스님의 상좌라고 하더라도 똑같이 엄중하게 하고 또 아낍니다. 특별히 저의 상좌라고 더 아끼지도 않습니다. 모두 일불제자이고 소중한 사람입니다. 

 

설정스님은 현재 국제포교의 중심인 서울 화계사 조실도 함께 맡고 있다. 국제포교와 한국불교의 세계화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실까.

 

 

수덕사와 해외포교

한국불교를 세계화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사미율의나 비구계는 물론이고 수계의식조차 영어로 만들어져 있지 않습니다. 이러고서도 국제포교, 세계포교 한다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교재도 만들지 않고 외국인을 포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문신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서구에서는 문화적으로 문신은 흔한 일입니다. 그러나 수차례 지우는 수술을 해도 (문신을 한 외국인 출가자에게) 계를 주지 않습니다. 스님들의 삭발을 해형(解形)이라고 합니다.

 

형상을 무너뜨리는 것인데, 문신의 흔적에 매달려 계를 주지 않는 것은 문제입니다. 수행 공간도 부족하고 지원도 부족합니다. 무상사의 경우 화계사의 지원이 있어 오고가는 비행기 삯 외에는 받지 않습니다. 외국인 스님을 받아들일 준비가 먼저 되어야 합니다.

 

스님과 마주 앉은 한 기자가 물었다. 기자들에게도 한 말씀 해달라.

 

언론의 역할

있는 그대로 진실을 쓰고 바른 의견을 제기하는 언론이 되어야 합니다. 정실에 의해서 기사를 써서는 안됩니다.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해야 합니다. 알고 싶은 이에게 정확하게 알려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다시 한국불교의 오늘로 화제가 돌아왔다. 설정스님의 진단은 냉정했고 그 해법 또한 단호했다. 생활인이 되어버린 승단에서는 불교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요지였다.

 

 

위기의 한국불교

불교계에 시비와 난장판이 주기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저는 불교라는 것은, 스님들이라고 하는 것은 절에 생활하기 위해서 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생활인으로서 절에 살 수는 없습니다. 수행인으로 살아야지 생활인으로 살다보니까 물질적인 것만 추구를 하고 그것의 소중함에 포인트를 투고 그것에 급급하다 보니까 가지각색의 추문과 비리와 주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은 승려 각자가 승관이 확립되어야 합니다. 승관이 확립되지 않고서는 불교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재물이 많고 사찰 경제가 넉넉하다 하더라도 승관이 확립되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서 승권이 쥐어지고 직책이 쥐어진다면 그것은 세속 속물들이 사는 집단이지 수행집단이 사는 곳이 아니다,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선 제일 급선무는 승관이 확립되어야 합니다. 즉 철저한 신심으로, 철저한 원력과 철저한 공심으로 무장한, 또 양심과 인격으로 정리되지 않은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승권이 쥐어지고, 절에 그런 스님네들이 있다면, 그것은 절이 하나의 모리배 집단이지 절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제일 급선무는 스님네가 중으로서의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원력, 신심, 공심. 이것이 철저하게 몸에 밴 사람, 또 그렇게 훈련되고 조직된 사람들로 승단이 구성될 때 비로소 승단의 앞날을 기대할 수 있고, 또 그런 집단만이 민중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것이지, 어떤 속물근성을 가진 소위 모리배 집단에 의해서는 명리를 추구하는 그런 자들에 의해서는 승단이 바로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절에서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남에게 의지하는 것을 줄여야 합니다. 내성을 기르고 자주력을 길러야지 국가의 보조금으로, 신자의 돈으로 사는 것은 안됩니다. 수덕사에서는 가능하다면 하나씩 해 나갈 것입니다. 일을 하는 사람은 절대로 실의와 좌절을 느낄 수 없습니다. 부처님 정신을 따라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설정스님은 지난해 말부터 차기 총무원장 후보로 하마평에 올랐다. 거기에 대한 뜻도 거침없이 풀어놓았다. 출마하실 의향이 있으신 것이냐,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한다. 스님의 대답은 “전혀 없다”였다.

 

총무원장 출마 여부

전혀 없습니다. 생각이 있었다면... 작년 금년 초까지 많은 분들이 권유했습니다. 그래서 농담조로 제가 이야기했습니다. “10년이고 15년이고 승단을 모두 나에게 맡겨라. 그러면 생각해보겠다.”

 

방장 문제도 이렇게 결정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자꾸 말이 많아집니다. “아무개라는 사람이 영순위다, 어디 다니면서 선거운동을 조금씩 하고 있다, 안 나온다고는 하지만 언제 나올지 모른다.” 이런 소리가 다 들리고 해서 우선 이런 생각만이라도 줄여주어야겠다고 생각해 방장 추대를 수락했습니다.

 

아시다시피 5년 동안 서울 총무원에 있었습니다. (설정스님은 94~99년 제11대 중앙종회 의장, 중앙종회의원장을 역임했다) 그때는 원장을 하려고 생각을 했습니다. 원장을 해서 내 나름대로 생각을 가지고 종단을 변화시켜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또 그때 많은 지지자들과 후원자들이 본사단위로 해서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 98년 99년도 제가 죽을병이 들어서 거기에 뛰어들지 못했습니다. 미국 병원에서 CNN으로 조계사를 포클레인으로 찍어내리고, 돌을 던지고 각목을 휘두르는 것을 보고 상당한 자괴심을 느꼈습니다. 자괴심은 두 가지 이유였습니다.

내가 종단에 5년 동안 있으면서 나를 지지했던 사람이 원장에 나가보라 그렇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병 때문에 못나갔고, 부득이했지만 그렇게 됐다고 하는 잘못된 생각을 했고, 종단이 저렇게까지 간다고 하면 앞으로 수십 년간 후퇴하겠구나 하는 안타까움으로 상당히 괴로워했습니다.

 

설정스님은 지난해 말, 그리고 올해 초까지 적지 않은 이들이 찾아와 출마를 권유했다고 밝혔다. 스님은 또 ‘총무원장이 되고 싶던 때가 있었다’고 가감 없이 말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어느새 ‘진정한 수행자로 살겠다’는 서원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좌복 위에서 정진하다 죽겠다

   
▲ 설정스님은 "절에서 농사를 짓자"고 했다. 의존하는 승가이기보다 자주적인 승단을 이루자는 뜻이었다. 정혜사 마당의 텃밭.

그러나 이미 병이 났을 때 나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선가의 중이 됐으면서 수행을 잘 못해서 병이 생겼다. 쓸데없이 총무원에 가서 천방지축으로 뭘 하겠다고 설치고 다녀서 병이 생겼다. 내가 죽지 않고 살면 내가 꼭 진정한 수행자로 삶을 살겠다. 그리고 쉽고 편케는 살지 않겠다’라고 저와 약속했습니다. 절대 쉬운 생활, 편한 생활을 하지 않겠다. 정말 올곧은 수행자로 삶을 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봉암사 선원에 갈 때 제가 51kg으로 갔습니다. 병이 회복이 안 되서 약을 한주먹씩 먹고 그랬습니다. 사실은 그때 죽기를 각오하고, 좌복 위에서 그냥 정진하다 죽겠다 하고 갔는데 3년 후에 몸이 57kg으로 늘어나고 또 상원사에 가서 살 때 몸이 더 회복의 단계까지 갔습니다.

 

여기(수덕사) 와서 10년째 살면서 나 나름대로 진단을 내리면, 이제 내가 제자리에 잘 왔구나, 방황하지 않고 허덕이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그런 상황에 왔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선배 후배되는 많은 분들이 와서 종단이 이렇게 어렵고 힘든데 스님 혼자 편하자고 이렇게 사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편히 살지는 않습니다. 이 부분도 중요합니다. 아까 말했듯이 이 승가가 머리만 컸지 가슴과 발이 없습니다. 머리와 가슴과 발이 균형 잡힌 그런 수행집단을 만들고 싶고 그렇게 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지식이 인덕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불가에서는 승격, 승의 자격을 갖춘 그러한 사람으로 그러한 스님들로 우리 승단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게 제일 급선무입니다. 승격은 인격의 위에 있습니다. 우열을 굳이 가린다면 승격이 더 위에 있습니다. 거기에는 철저한 자기희생과 봉사와 자기를 끝도 없이 내리는 하심, 불교에서 말하는 아상(我相)을 사정없이 내려 팽개치는 그러한 사람들, 그런 아상이 없는 사람들, 하심으로 다져진 사람들로 절집이 만들어졌을 때 우리가 현금에 가지고 있는 어떤 주지 싸움에, 총무원 감투 싸움 등은 자취도 없어질 것입니다.

 

승격이 되지 않는 사람들... 이렇게 얘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할지 모르겠지만, 철저하게 승격을 갖춘다면 그런 시비 갈등은 절집안에서 종식될 것입니다.

법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부정한 일이 일어나도 즉각 처리가 되지 않습니다. 절집안에서는 대중공사를 통해 하루아침에 절에서 쫓겨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초심 재심을 하는 동안 로비를 통해서 살아나기도 합니다. 선거제도도 큰 문제입니다. 개선하지 않으면 망종지도(亡終之道)입니다.

 

설정스님은 지금의 조계종 선거제도를 망종지도라고 칭했다. 삼보정재를 물쓰듯 하는 선거는 종단을 망하게 하고 불교를 망하게 한다는 것이다.

 

 

삼보정재 낭비하면 종단이 박복

   
▲ 능인선원 앞에 선 설정스님.

종회의원 선거에 수천만 원이 들고, 총무원장 선거에 수억, 수십억 원을 씁니다. 국회의원도 100만원 받으면 모가지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절집안에서 어떻게 삼보정재가 좋지 않은 곳에 쓰입니까.

 

서산스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중 된 것이 그게 간단한 일이냐. 먹고 살기 위해서도 아니요, 편안하기 위해서도 아니요, 명예를 위한 것도 아니다. 불조의 혜명을 이어서 도탄에 빠진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출가한 것이다.” 그런데 이게 대체 뭐하는 짓입니까.

 

자기의 명예를 위해서 삼보정재를 사정없이 써댑니다. 이것은 안되는 일입니다. 이것은 종단적으로 박복해지는 일입니다. 이런 병폐를 쓸어버리지 않고서는, 지금 이런 구태의연한 선거 방법에 의해서 계속 나간다는 것은 불교를 스스로 멸망시키는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시정을 해야 합니다. 이런 짓을 반복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정말 병든 수좌들, 돈 없어 공부 못하는 수좌들, 또 신도 자제들 끝도 없이 많은데 어쩌자고 자기의 일신의 명예를 위해서 돈을 물 쓰듯 하면서 그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 지원도 안 해주고 병든 사람들 도와주지도 않습니까. 깨져서 부서지는 절 고치지도 않고 그런 짓을 하는 것은 안됩니다. 

 

설정스님과의 한 시간 남짓한 만남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일이야말로 오늘의 불교를 바로 세워 미래로 이끄는 길임을 강조했다. 잘못된 길을 가는 이들을 성토하는 듯 했지만 스님은 ‘함께 성불해야할 도반’임을 잊지 않았다.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라 하지 않습니까. 함께 부처님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싫은 소리를 많이 해서 아파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신혁진 기자/불교포커스
출처 : 나누는 기쁨 실천회
글쓴이 : 은빛물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