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부는 겨울
새벽 역두에 나가고 싶다
쫒겨난 여자처럼 머리카락을 날리며
긴 코트의 주머니에 두손을 찌르고
느린 걸음으로
역두를 서성이고 싶다
그대여 그런 날 새벽에
우연히 널 만날 수는 없을까
나는 수없이 뒤를 돌아보며 약속없는
너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내가 탈 기차를 보내고
그 다음의 가차를 보내고
시린 가슴으로 떨고 있을 때
두손을 흔들며 달려오는 너를 만날 수는 없을까
새벽 역두에 나가고 싶다
찬비 뿌리는 새벽
우산을 받쳐들고 역두를 서성이면
멀리 보이는 불빛들의 젖은
그림자 일렁이는 무늬속으로
너는 보이고 그리고 없고
그러나 나 결코 떠나지 않으리
너를 기디리며
바람과 함께 흔들리며
비와 함께 떨어지며
너를 기다리며 그렇게
참으로 어리석은 낭만을 믿으며 나는
가을 역두에 서 있고 싶다
늦은 밤 자정인들 어떠랴
촉촉히 젖은 채로
널 우연히 만날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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