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똥하 2009. 4. 26. 18:57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저녁 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 보다는

구름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 보다는

동짓달 스무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이었음 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꿏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어

 

이 세상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없는 사랑말고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세풀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바람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깍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 썰물보다는

물오리떼 쉬어갈  저녁강물이었음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 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 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음 좋겠어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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